▲ 정하림 연세의료원 간호사

장시간 노동은 노동자 건강의 적이다. 야간 노동은 세계보건기구(WHO)가 규정한 2급 발암물질이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노동시간이 길다. 일하다 쓰러지고 죽는 과로사회다. 과로사회 밑바닥에는 근로기준법의 노동시간 제한을 받지 않는 특례업종이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특례업종을 26개에서 10개로 줄이고 노동시간을 단축하기 위한 논의를 하고 있지만 속도는 게걸음이다. 한국노총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우정·자동차·의료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전해 왔다. 4회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간호사 근무시간은 근로기준법에 따라 8시간이다. 하지만 인수인계를 필수적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업무 시작시간 기준 30분 전에 인계를 시작한다. 예를 들어 밤(Night) 근무 시작시간은 밤 10시인데(3교대 근무시간은 병원마다 다르다) 인수인계를 오후 9시30분에 시작한다. 인수인계는 밤 10시에서 10시10분 사이에 끝난다. 인계를 마치고 마무리 정리를 하고 나서야 전 근무자는 손을 뗀다.

사실 인수인계시간 30분은 신규 간호사들에게는(간혹 경력자에게도) 굉장히 부족한 시간이다. 보통 인수인계시간에는 환자의 과거 병력과 입원 사유, 검사와 진단 결과, 현재 어떤 약물을 쓰고 있는지를 전달한다. 항생제(하루에 최소 두 가지, 많으면 7~8가지 종류를 투여한다)를 얼마나 쓰는지, 매일 최소 한 번 많게는 10번 이상 진행되는 혈액검사 결과도 전해야 한다. 일일이 인수인계하자면 끝도 없이 많다. 환자에게 문제가 될 만한 ‘모든 것’을 인수인계시간에 주고받는다.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간호사 한 명이 한 명의 환자만을 간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력자들은 이런 모든 것들의 상관관계를 하나의 흐름으로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전달도 간단하고 빠르다. 그런데 신규 간호사들은 연결관계를 파악하지 못하고, 따로따로 놓여 있는 개별 항목처럼 바라보기 때문에 암기로 받아들인다. 당연히 업무를 하나하나 외우는 게 버겁다. 중요한 것과 아닌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전달하려다 보니 벅차고 힘들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장시간 노동으로 이어진다. 경력자가 "환자 파악이 하나도 안 돼 있다"며 신규 간호사를 혼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선배 간호사에게 ‘탈탈 털린 후’ 모르는 부분을 찾아보고, 인수인계하면서 놓쳤던 일을 찾아내거나 밀렸던 본인의 일을 정리하다 보면 초과근무가 생기는 건 당연지사다. 신규 간호사들에게 인수인계시간은 두려운 시간이다. 인계를 하면서 퇴근시간이 늦어지고 ‘털리는 게’ 싫어서 환자 파악이라는 명목으로 출근시간보다 1~2시간 일찍 출근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간호기록 또한 초과근무의 주범이다. 간호기록은 직접 간호하는 부분이 아니다. 기록을 소홀히 한다고 해서 환자한테 직접적으로 해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수가를 산정하는 근거 또는 증거가 되며, 교대근무 특성상 인수인계를 하면서 놓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이런 경우에 다시 찾아볼 수 있는 ‘유일한’ 기록물이 된다. 요즘에는 법적인 증거로 사용되기도 해서 중요해지는 추세다.

그럼에도 현실은 기록과 관련한 초과근무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 아마 8시간을 근무하는 교대제 병원노동자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장시간 노동에 노출돼 있지만 우리는 특례업종에 속해 있다는 이유로 ‘과로 노동’을 한다. 장시간 노동이 일상화하면서 환자들에게 피해가 갈까 노심초사한다. 열악한 병원 노동환경 개선이 환자와 병원노동자를 동시에 지키는 일이지 않을까.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