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에서 현대라이프생명 전속 재무설계사(FP)로 일하는 이아무개씨는 이달 초 황당한 일을 겪었다. 수년 동안 아침마다 출근했던 사무실 출입구가 쇠사슬로 꽁꽁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수소문 끝에 회사가 개인영업점포를 한꺼번에 폐쇄한 사실을 알게 됐다. 현대라이프생명은 올해 6월부터 개인영업점포 폐쇄를 시작해 이달 들어 전국 75개 모든 지점을 없앴다.

이씨는 “회사가 일방적으로 보험설계사들에게 불리한 영업정책을 도입하면서 회사를 먹여 살린 우리에게는 단 한마디도 상의하지 않았다”며 “보험설계사들을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불합리하고 부당한 일들이 현장에서 횡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씨는 현재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사무실 일방폐쇄·임금 반토막에도 속수무책"

사무금융연맹·보험인권리연대노조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이정미 정의당 의원이 18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보험설계사를 비롯한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 3권 보장을 촉구했다. 보험업이 국내에서 영업을 시작한 지 100여년 흘렀지만 업무 일선 설계사들은 ‘노조할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억울함을 호소하며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례가 잇따르는 실정이다.

2012년 3월 알리안츠생명(현 ABL생명)에서 일하던 조아무개씨는 자신이 살던 아파트에서 투신해 숨졌다. 회사가 교육한 대로 판매한 보험상품에 막대한 손실이 생겼는데, 그 책임을 자신이 떠안아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 피해를 본 보험설계사 수백명은 아직도 회사와 소송 중이다.

이달 5일에도 보험설계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푸르덴셜생명 보험설계사로 20년가량 일하며 지점장까지 맡았던 양아무개씨가 서울 역삼동 푸르덴셜타워 옥상에서 몸을 던졌다. 양씨는 사건이 일어나기 얼마 전 회사에서 해촉됐다.

그는 회사에 내용증명을 보내 “신규로 설계한 보험을 상위관리자가 연이어 승인거부를 하는 바람에 부당하게 해촉됐다”고 주장했지만 회사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했다.

오세중 보험인권리연대노조 위원장은 “올해 초에도 KB손해보험에 다니던 설계사가 노조를 찾아와 ‘부당한 해촉을 당했다. 회사 앞에서 분신하겠다’고 했는데 겨우 달래 극단적인 행동을 말린 적 있다”며 “보험설계사들이 인권 사각지대에서 사회의 어떠한 보호도 받지 못하고 온갖 피해를 당하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대선공약 이행하면 문제해결"

노조는 △무분별한 보험설계사 모집을 통한 지인·친인척 계약 강요 △사고 다발시 고객 보험료 인상과 보험설계사 수수료 인하 △일방적인 영업정책 변경과 수수료 지연지급을 보험사 부당행위로 꼽았다.

현대라이프 사례가 대표적이다. 현대라이프는 전국 개인영업 점포를 한꺼번에 폐쇄한 데 이어 다음달부터 보험설계사들에게 지급하던 수수료를 50%로 줄인다. 또 설계사 보험계약 수수료를 3년이 경과한 시점에 지급하는 ‘수수료 이연제’를 실시하고 있다.

노조에 따르면 전국 보험설계사 규모는 40만명에 달한다. 이직률이 매우 높다. 1년 안에 일을 그만두는 이들이 60%나 된다. 현대라이프만 해도 회사 지점 폐쇄와 수수료 후려치기가 이어지자 올해 초 2천200여명이던 보험설계사가 600여명으로 줄었다. 하루아침에 재택근무를 하게 된 이씨는 “설계사들이 일방적인 수수료 후려치기의 부당함을 얘기하자, 회사가 설계사들에게 ‘싫으면 나가라’는 투의 문자 답장을 보내왔다”며 “설계사들이 격앙된 상태”라고 전했다.

이정미 의원은 “전체 노동자 10명 중 1명인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노동법 보호를 받지 못해 회사 말 한마디에 삶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며 “이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것이 대한민국 비정규직 문제해결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문재인 정부는 대선공약인 특수고용직 노동자성 인정 약속을 조속히 이행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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