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지영 변호사(법무법인 덕수)

2003년 1월9일 새벽 두산중공업 노동자광장에서 한 노동자가 분신했다. 배달호 열사. 두산중공업은 불법파업을 이유로 2002년 6~7월 노동조합과 조합원들을 상대로 65억원의 손해배상액을 청구했다. 임금이 모두 가압류됐던 그가 2002년 6월부터 12월까지 급여로 받은 돈은 고작 8만3천원. 그해 10월 한진중공업의 김주익·곽재규 열사마저 "손배·가압류 철폐"를 외치며 목숨을 끊었다.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2017년은 어떤가. 9월11일 월요일 대법원 앞에서는 2010년 현대차비정규직지회의 ‘불법파견 정규직화 요구 파업’을 지원했던 노조활동가 및 노동자 4명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현대자동차에 20억원의 손해배상을 하라는 2심 판결에 불복해 부산고등법원에 상고장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인지대만 1천500만원이 드는 상고심. 노동자와 시민 모금으로 겨우 상고할 수 있었다. 올해 초 90억원의 손해배상을 당한 5명 노동자들은 1억원의 상고심 인지대를 감당할 수 없어 상고를 포기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3조는 “사용자는 이 법에 의한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인하여 손해를 입은 경우에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에 대하여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하여 사용자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법원은 이를 ‘정당한’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에 국한된다고 해석한다. 법원이 파업 정당성 여부를 판단해 정당성 없는 쟁의행위는 불법행위가 되면서 사용자의 무차별적 손해배상청구를 인용하는 것이다. 2심은 판결문에서 노동자들의 공장점거와 가동중단은 폭력이 수반된 정당성 없는 쟁의행위라고 했다. 노동자들은 20억원이라는 돈이 수십년치 연봉에 해당하는 거액으로 현대차의 손해배상 청구가 비정규 노동자들의 요구를 탄압하는 권리남용이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일축했다.

파업이란 본질적으로 노동자들이 생산을 중단해 손해에 직면한 사용자들과 협상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 아닌가. 비정규 노동자 점거파업 원인은 불법파견(사내하청)을 자행한 현대차에게 있다. 2002년 3월 현대차 사내하청업체인 예성기업에 입사한 최병승씨는 노조활동을 이유로 해고된 뒤 2010년 7월 대법원으로부터 불법파견임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현대차의 재상고로 2012년 2월에야 최종판결을 받았고, 중앙노동위원회는 최병승씨의 원직복직을 결정했다. 현대차는 여기에도 불복해 중앙노동위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최병승씨는 그해 10월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사회적 쟁점이 되자 현대차는 11월 최병승씨만 신규채용 하겠다고 통보했다. 이후 현대차 사내하청업체 노동자들이 각 지역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냈고, 노동위는 759명 불법파견을 인정하고 구제명령을 내렸다. 현대차는 이 명령마저 이행하지 않고 35억5천700만원에 이르는 이행강제금만 납부했다.

이렇듯 현대차는 대법원 판결과 중앙노동위 결정, 노동위 명령을 이행하지 않고, 비정규 노동자의 교섭요구를 계속 거부해 왔다. 현대차의 부당노동행위에 맞서 노동자가 할 수 있는 것이 공장 점거파업 말고 달리 무엇이 있었겠는가. 법원은 파업 원인이 누구에게 있는지 외면하고 있다.

현대차만이 아니다. 사용자 부당노동행위에 맞서 파업을 한 노동자들은 해고·구속에 이어 손해배상과 가압류 폭탄을 맞는다. 노동자는 해고당하고 구속돼도 버티며 투쟁한다. 그런데 손배 가압류에 걸리면 가정이 파탄 난다. 다른 조합원들에게 파업 한 번 했다가는 이렇게 된다는 본보기가 된다. 1989년 9월 통일중공업이 ‘노동쟁의를 이유로 한 손해배상’을 처음 청구한 이후 현재 사용자의 손배 가압류는 가장 악랄한 노동탄압 수단이 되고 있다. 손배 가압류 철폐를 위해 만들어진 단체 ‘손잡고’에 따르면 2017년 상반기 손배 가압류 규모는 24개 사업장, 65건, 손배청구액 1천867억원, 가압류 180억원에 이른다. 양상도 일반 조합원 개인과 연대활동가에 대한 청구, 모욕과 명예훼손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전세보증금 가압류 등 악랄해지고 있다.

파업을 했다는 이유로 노동자가 구속되고, 몇 십억원에 달하는 민사책임을 지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영국은 태프베일 철도회사 노조파업에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으나, 영국 노동당이 민사상 면책을 법으로 규정하고 손해를 제한한 입법을 한 때가 1906년의 일이다. 그로부터 111년이 지난 2017년 대한민국 법원은 파업한 비정규 노동자를 향해 사내유보금 112조원, 당기순이익만 5억원에 이르는 회사에 20억원의 손해배상을 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노동자는 법을 지키지 않는 사용자에게 파업도,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판결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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