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침반은 여행을 떠나기 전에 준비해야 할까, 아니면 여행을 마친 다음에 준비해야 할까. 물론 여행을 떠나기 전에 준비해야 한다. 여행의 동선을 짜기 위해 동서남북 방향을 가늠하기 위해서다. 목적지에 도착해 여행이 끝난 다음에 나침반으로 방향을 가늠하는 사람은 없다. 마찬가지로 의사 처방전은 약사가 약을 조제하기 전에 만들어진다. 약사가 약을 조제한 후에 만들어지는 처방전은 무용지물이다.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 문제도 마찬가지다. 국내법을 다 고쳐야 ILO 협약을 비준할 수 있다는 주장, 즉 ‘선입법-후비준’론은 여행을 마친 다음에야 나침반을 구해 방향을 제대로 잡고 왔는지 확인하자는 이야기와 다를 바 없다. 약사가 조제한 약이 환자 손에 넘겨진 다음에야 의사에게 처방전을 받아 조제된 약이 처방전에 맞게 만들어졌는지 확인하자는 말처럼 터무니없는 것이다. 1991년 ILO 가입 이후 30년 가까이 국내법을 고치지 않았다면 국내법을 고칠 의지가 아예 없다고 보는 게 맞다. 강산이 세 번 바뀌는 세월을 허송해 놓고는 한다는 소리가 국내법을 고쳐야 ILO 기본협약을 비준할 수 있다는 망언이다. 결국 ILO 협약을 비준하지 말고 국내법도 개정하지 말자는 속내를 ‘선입법’을 핑계 삼아 내지르는 것이다. 무슨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비준을 저지하고 노동법 개선을 막아 보려는 깽판에 다름 아니다.

ILO 기본협약은 별 게 아니다. 결사의 자유를 명시한 87호 협약과 단체교섭권을 명시한 98호 협약은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명시한 대한민국 헌법과 일맥상통한다. 1948년 7월 제헌헌법이 만들어진 이후 70년 동안 노동 3권은 유명무실한 상태로 남아 있다. 하위 법령에서 노동 3권을 부정·왜곡·훼손해 왔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이 보장한 노조할 자유, 교섭할 자유, 파업할 자유는 껍데기만 남아 대한민국은 노조하기 힘들고 교섭하기 힘들고 파업하기는 하늘에 별 따기만큼 힘든 노동 후진국으로 전락했다.

국내법을 고쳐야 ILO 협약을 비준할 수 있다는 주장은 국내법을 고친 다음에야 헌법에 노동 3권 조항을 명시할 수 있다는 주장만큼이나 황당한 것이다. 다른 식으로 말하면, 하위 법령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 헌법의 노동 3권 조항을 위배하는 만큼 헌법에 명시된 노동 3권 조항을 삭제하자는 주장과 같은 것이다. 헌법은 하위 법령이 나아갈 나침반이자 처방전 역할을 한다. 국내법은 헌법이 제시한 방향을 따라가야 하나, 위헌적 상황이 70년이나 지속돼 왔다. 헌법에 맞게 국내법을 바꾸면 될 일인데, 파시즘 사상을 가진 우익 관료들은 극우 세력과 결탁해 반세기 넘게 ‘자유’민주주의에 저항해 왔다. 이들은 ILO 기본협약 비준을 공약한 정권이 들어서자, 이제는 교활하게 ‘선입법-후비준’론을 내세우면서 자유민주적 개혁에 저항하고 있다.

결사의 자유는 사회권적 개혁이 아니라 자유권적 개혁이다. 민주주의의 초보인 자유주의적 개혁인 것이다. 결사의 자유 협약을 비준할 수 없다는 이야기는 자유민주주의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과 같다. 자유민주주의의 부정은 극우 파시즘의 긍정에 다름 아니며, 대한민국 헌정질서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헌법은 결사의 자유를 허용함과 동시에 노동자들에게 단결권을 부여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노동자들은 결사의 자유를 부정당해 왔다. 이러한 위헌적 상태와 반자유주의적 상황을 종식시키기 위한 돌파구가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을 보장하는 ILO 기본협약 비준이다.

짧게는 87년 헌법 체제의 완성, 길게는 48년 제헌헌법 복원과도 연관돼 있는 ILO 협약 비준은 하위 법령의 위헌성이라는 역사적 장애물을 고려할 때 입법적 과정의 완성이 아니라 정치적 의지의 표명이 우선할 수밖에 없다. 사실관계는 명확하다. 하위 법령을 다 만들고 나서 헌법을 만들지 않듯이, 국내법을 다 손본 다음 ILO 협약을 비준하는 게 아닌 것이다.

ILO 헌장 역시 각 회원국이 자율적으로 비준 문제를 처리하도록 여유를 둔다. 국가를 대표하는 자(대통령, 총리 혹은 장관)가 비준서를 ILO에 보냄으로써 비준 절차가 개시된다. 회원국의 비준 의지를 존중하면서 ILO는 입법과 관련한 ‘기술적’ 지원을 제공하며, 국내적으로는 노사정 3자의 사회적 대화와 의회 입법 과정을 거쳐 법률을 개선하면 비준이 완성된다. 한마디로 비준은 일회성 행위가 아니라 정부의 비준 선언으로 개시되는 일련의 정치적·법률적 여행이다. 해당 협약은 이 여행에서 나침반 역할을 하는 것이고, 이 치료에서 처방전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 안의 극우 관료들은 ‘선입법-후비준’의 사기극 시나리오에 이어 또 다른 사기극 시나리오를 퍼트리고 있다. ILO 기본협약 비준 문제를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서 사회적 대화 의제로 다뤄야 한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결사의 자유 등 노동기본권 보장은 사회적 대화를 갖기 위한 전제조건이지, 사후 결과가 아니다. 98년 이후 노사정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가장 큰 이유는 결사의 자유를 비롯한 노동기본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현 시기는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을 거치면서 파시즘 체제를 복원하려 했던 극우 세력이 촛불혁명으로 축출된 후 ILO 기본협약 비준을 공약한 자유민주 세력이 정권을 잡은 비상한 상황이다.

문재인 정권이 노사정위를 통해 노사정 3자의 사회적 대화를 복원시키려 한다면 그 첫 단추는 ILO 기본협약을 즉각 비준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비준 이후 입법적 완성 과정은 노사정위에서의 사회적 대화와 국회에서의 법률적 논의를 통해 풀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