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영 기자
“돈 때문에 참 힘들어요. 저금을 해야 하는데 여유가 없어요. 한 달에 110만원 벌면서 국민연금 7만원씩은 못 내겠더라고요. 건강보험료도 8만~9만원 하잖아요. (미래가) 불안해요. 모아 둔 돈은 없는데 월급은 줄어 가고….”

조아무개(46)씨는 13년차 학습지 방문교사다. 한 달 꼬박 일하면 110만원을 손에 쥔다. 특수고용 노동자라서 고용보험을 적용받지 못한다. 조씨 같은 여성 비정규 노동자는 한국 사회 경제적·사회적 불평등체계의 최저점에서 저임금과 고용불안을 감수해야 한다. 남성 정규직·남성 비정규직·여성 정규직·여성 비정규직의 4개 집단 중 여성 비정규직의 임금수준이 가장 낮다.

“당장 수입 필요해 비정규직이 됐다”

여성 비정규 노동자의 비합리적인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논의 자리가 마련됐다. 서울노동권익센터가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센터 교육실에서 ‘서울 여성 비정규 노동자 지원을 위한 정책방안 연구 최종발표 토론회’를 열었다.

권혜원 동덕여대 교수(경영학)는 이날 토론회에 앞서 서울지역 여성 비정규 노동자 356명을 대상으로 노동실태를 조사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서울지역 여성 비정규 노동자의 49.4%가 3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한다. 직종은 서비스(34.8%)·판매(28.1%)·사무(17.4%)·단순노무(8.4%)·전문(6.7%)·관리(3.4%)·기능원 및 관련 기능종사자(1.1%) 순으로 나타났다.

고용형태는 기간제가 36.2%로 가장 많았다. 시간제는 31.2%로 뒤를 이었다. 특수고용직(18.8%)·용역직(5.3%)·한시직(3.9%)·파견직(2.2%)·일용직(2.2%) 순이었다. 비정규직으로 일하게 된 이유로 67.7%가 “당장 수입이 필요해서”라고 답했다. “원하는 정규직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서”라고 답한 비율은 52.5%다. 22.8%는 “전공 경력에 부합하는 일자리가 없어서”라고 응답했다. “일하기 원하는 직종이기 때문”이라고 답한 비율은 30.6%였다. 여성 비정규 노동자들이 비자발적으로 비정규직 고용형태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는 방증이다.

여성 비정규 노동자들은 우리나라 전체 노동자 월평균 급여의 51.5%에 불과한 임금을 받고 있다. 월평균 세전 급여액은 167만원이고 세후 급여액은 156만원이다. 올해 5월 기준 전체 노동자의 1인당 월평균 임금총액은 324만4천원이다. 심지어 전체 응답자의 38%는 최저임금 미만 임금을 받고 있었다. 이들의 월평균 급여는 84만1천원에 그쳤다.

권혜원 교수는 “저임금-고용불안정-낮은 사회보험과 기업복지 혜택을 특징으로 하는 비정규 일자리에 여성고용이 집중돼 여성 비정규 노동자들이 더욱 취약한 임금과 노동조건 속에 놓이게 됐다”며 “서울시 여성 비정규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전반적으로 열악하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고 지적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실현 위한 기구 필요”

토론회 참석자들은 서울시에 여성 비정규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정책을 제안했다. 권 교수는 서울시에 성평등 임금공시제 도입을 주문했다. 권 교수에 따르면 프랑스는 2001년 남녀 경력평등법을 제정했다. 50인 이상 사업장에서는 임금협상에 앞서 매년 남녀 노동자의 임금을 조사하고 그 결과를 공개해야 한다. 독일도 올해 7월부터 임금공개법을 시행했다. 200인 이상 사업장 노동자들은 동일직무를 맡은 동료직원의 임금정보를 요청할 수 있다. 권 교수는 “동일가치 노동을 하는 노동자에게 같은 임금을 지불하고 있는지 증명하도록 해서 차별을 시정하고 임금격차를 해소하고 있다”며 “서울시 산하 공공기관에서 이와 같은 임금공시제도를 추진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경아 한림대 교수(사회학)는 비정규직 차별해소를 위한 고용평등기구 설치를 제안했다. 신 교수는 “여성 비정규 노동자들은 성별·고용형태별·지위별·연령별 권위구조와 본사(원청)-협력회사(하청)라는 외부화 구조 속에서 교차적·복합적·중층적 차별의 대상이 됐다”며 “차별구조를 규명하고 그것을 시정하는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시 차원에서라도 복합적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고용평등기구를 인권위원회 산하에 설치해 노동조건 조사와 현실 규명, 정책대안과 실현을 위한 노력을 계속해 가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황현숙 서울여성노동자회 부회장은 “서울시 여성일자리 정책은 여성가족정책실 여성정책과에서, 일반 노동정책은 일자리노동정책관 노동정책과에서 담당한다”며 “여성정책과 일자리사업은 경력단절여성 교육과 재취업·창업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여성 비정규 노동자 정책과 그 사업을 담당할 별도 부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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