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케이블방송업계가 위기다. 거대 자본력과 마케팅 채널을 가진 인터넷 통신사업자들이 유·무선 통신상품과 IPTV를 결합판매하면서 케이블방송 경쟁력이 약화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티브로드와 딜라이브(옛 씨앤앰)는 케이블방송업계 경쟁사다. 가입자수 기준 케이블방송 시장점유율 2위와 3위 기업이다.

그런데 업계 위기 상황에서 노동자들을 대하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지난달 말 협력업체 기사 일부를 직접고용하겠다고 발표한 딜라이브 행보가 눈에 띈다. 인터넷 통신업체인 SK브로드밴드도 5월 비정규직 기사 5천200명을 채용하겠다고 했지만 직접고용이 아니라 자회사를 통한 고용이다.

티브로드 노사관계는 악화 일로에 있다. 티브로드 원·하청 노조는 비정규직 문제 등으로 회사와 대립을 겪으며 이달 15일부터 노숙농성을 하고 있다. 어디에서 이런 차이가 발생했을까.

◇직접고용 vs 간접고용=임정균(41)씨는 14년째 딜라이브 설치업무를 하다 지난해 9월1일 본사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임씨는 "딜라이브가 우리 회사라는 사실을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딜라이브는 지난해 협력업체 기사 120명을 처음으로 직접고용했다. 올해도 150명을 ‘본사 정규직’으로 직접고용한다.

티브로드와 딜라이브는 설치·수리·철거업무를 외주화해 왔다. 협력업체와는 1~2년에 한 번씩 재계약을 맺는다. 원청이 제시한 영업과 CS지표를 얼마나 이행했는지에 따라 재계약 여부가 결정된다. '원청→협력업체→하청노동자'로 책임이 전가되는 과정에서 기사들은 지표 압박에 시달렸다.

협력업체가 교체되는 과정에서 임금체불도 자주 발생했다. 일부 협력업체 사장들은 재계약이 되지 않으면 퇴직금을 주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체당금으로 체불 퇴직금의 일부만 받을 수 있었다. 그마저도 체당금이 나올 때까지는 빚을 내거나 대출을 받아 생활을 유지했던 기사들이 적지 않다. 고용불안과 실적 위주 수당체계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임씨 같은 딜라이브 정규직 전환자들은 이런 문제에서 벗어났다. 지표 압박이 여전하긴 하지만 정도가 다소 완화됐다. 급여 구성도 실적이 아니라 통상급 위주로 바뀌었다. 딜라이브 협력업체 설치기사는 기본급에 설치 건수에 따른 실적급을 받는다. 수리·철거기사만 고정급 형태로 급여를 받는다.

임씨는 “협력업체 소속일 때는 중간착취 구조 때문에 협력업체의 ‘노동자 쥐어짜기’에 시달렸다”며 “원청이 고용을 책임지는 만큼 직원 복지가 향상되고 고용불안도 해소돼 예전보다 훨씬 즐겁게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규직이 되면서 자부심을 느끼는 만큼 고객에게 하나라도 더 잘해 주려고 노력한다”며 “케이블방송이 하향산업이긴 하지만 해지하려고 마음먹었던 고객들 중 새로운 서비스를 경험하고 나서부터 마음을 돌리기도 한다”고 전했다. 딜라이브 관계자는 “정규직 전환에 따른 성과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있지는 않다”면서도 “직원들이 자기 직무에 더 책임감을 가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정규직화를 했다”고 설명했다.

◇하후상박 임금체계 vs 성과연봉제=딜라이브의 새로운 실험이 가능했던 것은 회사 경영진의 고심과 함께 지부 전략이 한몫했다.

희망연대노조 씨앤앰지부는 2010년 노조 결성 때부터 비정규직과의 연대, 내부 직원 임금격차 축소를 활동의 기본 방향으로 잡았다. 지부는 원청과의 교섭에서 한 해 사용할 임금인상 총액이 정해지면 그 안에서 우선 사용처를 정한다. 이때 지부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하후상박 임금을 최우선으로 꼽는다.

실제로 2014년 협력업체에서 노조 조합원 109명이 고용승계되지 않자 이들의 복직을 위해 임금인상 폭을 4%대로 낮췄다. 2010년부터 2013년까지 4년간 임금인상 폭은 10%대였다.

올해 협상에서도 임금인상률은 2.8%로 낮았다. 대신 직접고용을 우선순위에 뒀다. 저임금 노동자를 위해 최저 통상시급을 9천원으로 일괄적용하고 감정수당을 도입하는 등 저임금 노동자 임금인상에 초점을 맞췄다.

김진억 희망연대노조 나눔연대국장은 “씨앤앰지부는 내부 임금격차를 줄여 상향평준화를 하는 방식으로 교섭을 하고 있다”며 “전체 임금을 올리되 임금이 적은 사람들의 인상 폭을 더 확대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부가 더불어 사는 삶, 낮은 곳을 향하는 삶을 실천하자는 전략을 세웠고 회사가 이에 호응해 협력업체 직원들을 정규직화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티브로드는 정반대 분위기다. 티브로드 원·하청이 올해 교섭에서 평가·실적에 따른 급여체계 확대를 주장하면서 분란이 일고 있다. 김 국장은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방식"이라고 비판했다.

티브로드는 지난해 말 정규직 직원들을 대상으로 평가등급제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노조 반발로 아직 시행되지 않고 있다. 회사 방안대로라면 최하위 등급인 D등급을 받는 노동자가 30%까지 늘어난다. 현재 D등급에는 전체 인원의 5%가 배정된다.

협력사협의회도 노조 케이블방송비정규직티브로드지부와의 교섭에서 기술업무 직원들의 임금체계를 성과연동형으로 바꾸겠다고 예고했다. 티브로드 비정규직 업무는 기술업무와 영업업무로 나뉜다. 영업업무 직원은 실적급 중심 급여를 받지만 기술업무 직원은 기본급 중심 급여를 받는다.

노조 관계자는 “딜라이브가 하후상박·상향평준화로 노동조건을 맞춰 가고 있다면 티브로드는 상후하박 쪽으로 노동자 임금 전반을 하락시키고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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