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정규직 전환 심의위원회가 지난 12일 대부분의 비정규 교사·강사를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뒷말이 무성하다. 노동계는 반발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주창한 ‘비정규직 제로시대’가 소리만 요란한 빈 수레가 되는 건 아닌지 걱정하는 눈치다. 논란을 즐기는 쪽도 있다. 비정규직 정책에 반대했던 야당은 현장 혼란을 가중한다고 틈새를 벌리려 힘을 쓴다. 문재인 정부 비정규직 정책 제대로 가고 있나.

100일 새 기쁨의 눈물이 배신의 눈물로 바뀌었다
이윤재 학교비정규직노조 정책국장

이윤재 학교비정규직노조 정책국장

“축하한다는 문자를 100개 넘게 받았어요. 믿어도 되겠죠?” 문재인 대통령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약속한 날, 강사 조합원들에게서 받은 문자메시지 내용이다. 10년을 고용불안에 시달렸던 영어회화전문강사·스포츠강사를 비롯한 비정규 노동자들은 기쁨과 기대의 눈물을 흘렸다. 그로부터 100여일 뒤 기쁨의 눈물은 배신감과 치욕의 눈물로 바뀌었다.

지난날의 교육적폐를 청산하기 위해 당사자들과 토론하고 조율해야 할 정부는 학교 구성원들을 싸움터로 몰아넣고 결국 지난 11일 정규직 전환 심의위원회 뒤로 숨어 버렸다. 지난 100여일 동안 교육현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교무실에서는 비정규 교사·강사 앞에서 ‘정규직반대 서명용지’가 돌아다녔다. 어느 초등학교 체육수업시간에 스포츠강사는 아이들에게 ‘담임 선생님이 체육쌤 정규직되는 거 반대한다는 동의서를 부모님께 받아 오래요. 어떻게 해야 돼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건강한 인성과 체력·학력 증진을 강조하는 전인교육을 하겠다면서도 함께 학생들을 키워 내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고통은 ‘교육은 노동과 다르다’며 외면됐다.

진정 교육과 노동은 양립 불가능한 가치인가? 오히려 이번 학교비정규직 정규직화 갈등으로 인해 선명하게 드러났다. 교육이라는 미명 아래 비정규 노동자들의 희생을 합리화하고, 매년 비굴한 계약직의 삶을 던져 주며 노동인권을 짓밟는 행위야말로 비교육적인 모습이 아니던가.

무한경쟁 속에서 힘들게 대학교 졸업장을 따도 졸업생의 절반은 비정규직 일자리를 얻게 되는 헬조선의 노동제도야말로 비교육적인 시스템 아닌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학교에서부터 비정규직을 없애, 우리 사회의 모범적인 일자리로 만드는 투쟁이야말로 가장 교육적인 투쟁이라 믿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전원 정규직 전환 로드맵 내야
이양진 민주일반연맹 공동위원장

이양진 민주일반연맹 공동위원장

노동운동은 인간해방·노동해방에서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노동자들은 자본과 정권의 갈라치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노동운동의 가치를 잃었다. 비정규직은 넘쳐 났고 ‘비정규직 철폐하고 인간답게 살아 보자’고 외쳤지만 비정규 노동자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졌다. 과거 자본과 노동자가 대립했다면 이제는 노동자 안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갈등하고 있다. 드라마에서 보듯 비정규직은 정당한 자기 목소리를 내고도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무릎 꿇고 사과하는 일이 우리의 현실이다.

촛불혁명으로 당선된 문재인 정부가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다고 했을 때 환영했다. 비정규 노동자들은 희망의 끈을 부여잡았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비정규 교사의 정규직 전환 계획이 백지화됐다. 고용불안과 저임금·열악한 노동조건에 시달리며 을 중에 을로 살아온 비정규 노동자들을 정부가 두 번 죽이는 결과를 낳았다. 어려운 환경에서 묵묵히 견뎌 온 비정규 교사들의 신성한 가치가 임용고시라는 시험만능주의에 비참히 짓밟힌 것이다.

이번 교육부 정규직 전환 심의위원회 결론은 결국 다른 비정규 노동자 정규직 전환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상시·지속업무임에도 비정규 교사의 경우처럼 사회적 형평성이나 양성·선발체제 등을 문제 삼아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앞당기기 위해서라도 비정규직 전원 정규직 전환 로드맵을 내놔야 한다. 노동계는 초심으로 돌아가 인간해방·노동해방의 정신을 되살려야 한다. 정규직 노동자라 해도 인간해방·노동해방 쟁취가 어려운 현실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통해 하나의 힘으로 노조운동의 가치를 되찾아야 한다.

 

정부 획일적 판단 어려워, 이해관계자 모여 숙의 필요
류경희 고용노동부 공공노사정책관

류경희 고용노동부 공공노사정책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쉽지만은 않은 과제다. 정부가 처음 정규직화를 추진한다고 했을 때 아무런 마찰 없이 손쉽게 진행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을 것이다. 정부도 많은 어려움을 예상했다. 다만 부작용과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 우선 기관별로는 노조가 참여하는 정규직 전환 심의위원회를 구성하고 해당 조직 구성원을 포함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해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지역과 중앙에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지원하는 컨설팅팀을 구성해 노조 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의 조언을 듣고 있다. 정부부처합동 비정규직 태스크포스에도 양대 노총 관계자와 전문가들이 참여해 함께 정규직 전환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그럼에도 기간제 교사같이 갈등이 있고 논쟁적인 사안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정부가 무언가 정해 주길 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정부가 획일적인 기준을 제시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개별 사안마다 정부가 가부를 결정한다면 혼란만 가중할 것이다. 이해당사자들이 모여 숙고해 결정하는 방법이 최선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정규직 전환 대상이 되는 직종과 전환되지 못한 직종은 결과적으로 나뉠 것이다. 누군가는 기쁘겠지만 또 누군가는 아파할 수도 있다. 단기적으로는 갈등이 심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가 감내해야 할 몫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논의하는 과정을 끊임없이 이어 나간다면 장기적으로 우리 사회가 보다 나은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부는 예정대로 이달 말까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잠정 규모와 전환 절차를 담은 로드맵을 발표할 것이다. 정규직 전환이라는 큰 방향을 제시하면서 각 기관이 보다 빠르게 정규직 전환을 마칠 수 있도록 독려해 나가겠다.


흐트러진 정규직 전환 의지, 다시 세워라
박준형 공공운수노조 정책기획실장

박준형 공공운수노조 정책기획실장

‘국정과제 1호’로 불리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에 대한 애초 기대에 물음표가 더해지고 있다. 학교비정규직 강사직종에서 ‘정규직 전환 제로’ 결정에 이어 13일 경제부총리는 국회에서 비정규직을 인정한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현장에서는 공공기관 사용자들의 눈치 보기, 시간 끌기가 만연하다. 실태조사(8월9일까지), 1차 로드맵 보고(8월25일까지) 일정이 모두 지연되고 있다. 노동부는 바삐 움직이지만 기획재정부·행정안전부 등 공공기관에 실질적 영향력이 있는 관리부처 관료들은 소극적이다. 단적으로 지난해 성과연봉제·쉬운 해고 추진 과정에서는 매일 공공기관을 독려하고, 1천600억원 인센티브까지 살포했던 기재부는 공식적인 점검 조치도 하나 없고 전환 예산 반영에도 소극적이다. 현장에서부터 과연 정책이 제대로 추진될까 걱정이 커지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가이드라인 자체의 한계로 수년간 근무한 노동자가 전환 예외가 되거나, 오히려 계약만료로 해고되는 사례도 보고된다. 비정규 노동자, 노조와 협의를 회피하는 등 ‘노조 혐오’도 여전하다. 차제에 가이드라인 추진 체계를 다시 점검하고 부족한 내용이 있다면 과감히 보완하자. 특히 현장 사정을 아는 공공부문 노조와 긴밀한 협의로 문제를 개선하자. 노동부만이 아니라 기재부·행안부 등 부처도 책임 있게 협의에 나오고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비정규직 제로”는 반드시 성공하고 민간까지 확산해야 하는 정책이다. 정부 고위급에서부터 추진 의지를 다시 밝히고 각 부처, 현장 공무원과 공공기관을 독려해야 한다.

 

농협비정규직 문제 국가인권위 권고에도 방치
백정현 사무금융노조 선전홍보국장

백정현 사무금융노조 선전홍보국장

당연한 얘기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비정규직 제로시대 선언은 정부가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대원칙에도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부당하게 강요된 차별을 인정하고 반성하며, 궁극적으로 이를 철폐하겠다는 선언이다. 민간영역의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역시 다르지 않다. 노사가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는 대원칙을 확인하고, 이를 위반한 과거의 차별에 대해 반성하고, 노사가 함께 정규직 전환 로드맵을 정함이 상식이다. 그러나 우리는 대통령 발언이 나오기 무섭게 “비정규직 0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며 숫자 경쟁에 나섰던 기업들을 기억한다. 선심이라도 쓰는 양 정규직 전환소식을 보도자료로 뿌렸던 이들에게 비정규직 제로시대에 대한 일말의 공감이 있었을까?

그 속내를 보여 주는 전형적인 기업이 바로 농협중앙회다. 농협중앙회는 중앙회와 계열사 소속 비정규직 5천200여명의 정규직 전환계획을 발표하면서 중식비·업무활동비·복지연금·토요일 무급휴일 변경 등에서 심각한 차별을 받고 있는 1만8천여 지역 농·축협 비정규 노동자들을 전환 대상에서 빼 버렸다. 향후 계획도 없다. 농협중앙회는 2013년 국가인권위원회에 이어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도 지역 농·축협 비정규직 차별 실태가 지적되자 이를 해소하겠다는 말로 위기를 모면했다. 정부는 상식을 비웃고 거부하는 자들에게 어떤 법적 강제가 필요한지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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