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부결됐다. 기간제 교사 정규직화는 진즉에 물 건너갔다. 일말의 기대를 걸었던 강사 직군 무기계약직 전환마저 무산됐다. 씁쓸하고 침울했다. 영어회화전문강사는 대전고등법원 승소 판결과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성명이 있었음에도 도리 없었다. 유치원 돌봄교실 강사와 유치원 방과후과정 강사는 대부분 무기계약직 전환이 된 직종이었으므로 남은 기간제 강사의 무기계약직 전환을 확인한 것에 불과했다. 결국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한 문재인 정부 최초의 정규직 전환 심의위원회 결과는 정규직 제로화에 가까웠다.

각각 1천통이 넘는 메일폭탄과 문자폭탄에 시달리면서 절감했다. 이래서 사회적 합의가 필수구나. 공론의 장에서 검증되고 토론을 거쳐 조율되고 숙의 과정을 거쳐 합의되지 않으면 교육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불가능하겠구나 뼈아프게 각성했다. 비정규직인 기간제 교사와 강사는 물론 현직 정교사와 발령대기교사, 임용고시생과 교육대·사범대 학생들, 학부모까지 절실하지 않은 당사자가 없었다. 한강으로 뛰어들겠다는 격정적인 호소부터 공교육을 망친다는 날 선 비난까지 전달하고 싶은 주장과 의견이 차고 넘쳤다.

가장 충격적인 장면 하나. 교육부 정규직 전환 심의위원회 7차 회의를 하루 앞둔 8일 전국중등예비교사들의 외침 기자회견에서 임용고시생들이 강사들을 신규교사 TO와 공교육 질을 갉아먹는 쥐로 묘사하는 퍼포먼스를 했다. 많은 강사와 기간제 교사들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가장 반교육적인 비난과 조롱을 하면서 공교육을 지키는 교사가 되고자 하는 이율배반을 목도하며 비감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정규직화 반대 50만 서명을 학교현장에서도 강행해 갈등을 증폭시켰다. 정규직 전환을 둘러싸고 교육공동체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출구 없는 회로 같은 적대적 대립 속에서 정규직 교사 일자리를 향한 무한질주가 모든 교육적 가치를 압도했다.

교육과 노동은 양립할 수 없는가. 교육공동체 성원 대다수가 노동자이므로 노동권 보장은 당연한 권리다. 정부 교육정책 실패로 양산된 교육부문 비정규 노동자들이 고용안정과 공정한 처우를 요구하는 것은 정당하다. 교육이라는 미명 아래 노동권을 제약하고 부당한 차별을 온존시킨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반교육적인 처사 아닌가. 교육과 노동을 양립시킬 방도를 찾아야 한다. 노동인권 사각지대로 내몰린 수십만 비정규 노동자들의 권익을 제고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선 교육현장은 무한경쟁을 내면화한 교사와 학생들을 양산하는 반교육적 집단으로 변질될 수밖에 없다.

정규직 교사 중심의 강고한 기득권 구조를 혁파해야 한다. 더불어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양극화한 이중노동시장 구조도 혁파해야 한다. 교육고용구조 양극화와 한국 사회 노동시장구조 양극화는 동전의 양면이다. 특권적 지위의 정규직 일자리를 얻기 위한 비정상적인 과열경쟁은 상생의 대안을 내팽개치고 각자도생 정글윤리만을 각인시킨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중소기업에 취업해도 교사나 공무원에게 꿀리지 않는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해당사자 간 비타협으로 일관할 수밖에 없는 현재 구조에선 어떤 해법도 내오기 어렵다. 참교육과 민주노조를 표방한 전교조마저 현장교사들의 압도적 압력에 정규직화를 반대하고 말았다. 이런 조건에서 어떤 합리적 대안 도출이 가능하겠는가. 정부 탓만 해선 난망해진다.

정부가 성급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절반이 밀집한 학교비정규직 문제는 충분한 토론과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찬찬히 진행했어야 할 사안이었다. 국민 모두가 전문가연하는 교육부문인 만큼 합리적 공론은 고사하고 걸핏하면 소모적 논란으로 비화하기 십상이었다. 사면초가인 지금이야말로 숙의민주주의가 절실하다. 이참에 학교부문에 양산된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국민대토론회를 제안한다. 한 번 실패를 밑거름 삼아 전화위복 계기를 만들어야 할 때다. 수장이 바뀐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의 전향적인 역할이 요구되기도 한다.

하염없이 눈물 흘리는 학교비정규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희망을 싹 틔워야 할 교육현장에서 절망이 양산돼 왔다는 사실 앞에 참담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아이들이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 난감했다. 기간제 교사와 강사(이번 심의대상에서 아예 배제된 방과후강사를 포함해), 현직교사와 발령대기교사, 임용고시생, 교육대 및 사범대생, 학부모까지 이해당사자와 함께 정부와 전문가가 참여하는 국민대토론회에서 쟁점과 이견을 낱낱이 검증하고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대안을 강구해야 한다. 다른 길은 없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namsin196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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