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노동자는 투쟁하는 인간이다’고 선언하겠다고 오늘은 이런 제목으로 끄적거리는 것이 아니다. 우리 노동자는 투쟁하는 인간은 고사하고 계약하는 인간으로서 지위도 보장받지 못했다고, 고작해야 권력과 자본의 보호대상에 불과한 노동하는 인간일 뿐이라고 나는 말해 왔다. 인간의 역사에서 일하는 사람의 지위는 노동하는 인간, 계약하는 인간, 투쟁하는 인간으로 나뉘고 오늘 우리 노동자의 지위는 노동하는 인간에 머물고 있다고 말해 왔다. 그랬던 내가 ‘투쟁하는 인간-노동자’라는 제목의 칼럼을 쓰고 있다. 제목만 읽고 오해하는 이들을 위해서 미리 말해 둬야겠다. 이 나라에서 노동자가 투쟁하는 인간의 지위에 있다고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노동자에게 투쟁하는 인간의 지위가 보장돼야 한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지난주 방한한 가이 라이더 국제노동기구(ILO) 사무총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만나 ILO 핵심협약 비준 등에 관해 의견을 나눴다고 보도됐다. ILO 핵심협약 비준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일 뿐만 아니라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에도 포함돼 있다. ILO 사무총장을 만나서 “문 대통령이 ILO 핵심협약 비준 의지를 보여 줬”고, 이에 “ILO는 한국의 비준을 위해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했다(매일노동뉴스 2017년 9월7일). 그러니 우리 노동자도 조만간 투쟁하는 인간의 지위를 보장받을 수 있겠다며 나는 이렇게 제목을 달아 글을 쓰겠다고 하는 것이다.


2. 우리나라는 ILO 핵심협약 8개 중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87호)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원칙 적용에 관한 협약(98호) △강제노동에 관한 협약(29호) △강제노동 폐지에 관한 협약(105호)을 비준하지 않았다. 정부는 1991년 ILO 가입,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1998년 ILO 고위급 대표단 방한, 2006년과 2008년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 출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한EU FTA를 체결하면서 이런 핵심협약에 대한 비준을 번번이 약속했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는 ILO가 1993년부터 지속적으로 제도개선을 권고해 오고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87호 협약(1948년)은 모든 노동자가 노조를 설립하고 가입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사전 인가 없이’ 노조를 설립하고 스스로 규약을 마련해 자유롭게 활동하며, 행정당국에 의해 해산되거나 활동정지를 당하지 않도록 보장하고 있다. 98호 협약(1949년)은 노조활동을 이유로 한 해고 등 사용자의 반노조 행위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를 보장하도록 하고 있다. 29호 협약(1930년)은 처벌의 위협 아래서 강요된 혹은 비자발적으로 제공된 모든 노동을 금지하고, 105호 협약(1957년)은 강제노동의 즉각적이고 완전한 폐지를 위해 효과적인 조치를 취할 국가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이 4개 핵심협약을 모두 비준하지 않은 나라는 한국을 포함해서 중국·마셜제도·팔라우·통가·투발루 등 6개국에 불과하다고, 협약 비준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면 소개돼 왔다. 만약 이 협약을 비준하게 되면 노동자들은 해직자·5급 이상 공무원·특수고용 노동자 등의 노조 가입 및 활동이 보장되고, 사전 인가 없이 노조를 설립하고 가입돼 설립신고 반려로 문제되고 있는 공무원노조, 법외노조를 통보받은 전교조 등도 법상 노조로서 활동이 보장되고, 소수노조의 교섭과 쟁의를 제한하는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도 바뀌며, 고용을 지키는 파업, 잘못된 정부정책에 관한 파업 등도 합법으로 보장되고, 쟁의행위에 업무방해 혐의 적용도 금지되며, 공익근무요원·산업기술요원 대체복무제도 등은 강제노동 등에 관한 협약 위반으로 문제돼 개폐돼야 한다고 보고 협약 비준을 주장해 왔다[민주노총 유인물 ‘노조할 수 있는 나라, ILO 핵심협약 비준부터!’(2017년 9월6일) 등 참조]. 위 ILO 핵심협약은 모든 노동자가 자유롭게 노조를 설립하고 가입해서 교섭과 파업 등 쟁의 등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그것을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로 비준한 나라에서 보장하는 것이다. 만약 국가법으로 파업을 처벌하게 되면 이는 위 결사의 자유 등에 관한 협약 위반뿐만 아니라 강제노동에 해당해 이에 관한 협약 위반에도 해당하고, 따라서 노동자의 파업을 제한·금지하면서 그 주체·목적·절차·수단과 방법 등을 문제 삼아 처벌하는 이 나라의 노조법제는 살아남을 수 없다. 노조법 등에 의해서 제한·금지돼 온 노동기본권 행사가 보장될 것이라서 우리 노동자들은 핵심협약 비준에 관해서 ILO에 가입하던 날부터 20여년 동안 외쳐 왔던 것이다. 사용자 자본과 권력에 맞서 자신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서 투쟁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민주노총 등 이 나라 노조들은 협약 비준을 요구해 왔던 것이다.


3. 그런데 이상하다. 위 ILO 핵심협약들의 비준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정책공약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이 발간한 19대 대통령선거 정책공약집 <나라를 나라답게>에 ‘노동존중 사회 실현’ 공약 중 “ILO 핵심협약 비준으로 국가 위상에 걸맞은 노동기본권 보장을 이루겠”다고 밝히고 있다(87면). 위 87호·98호·29호·105호를 구체적으로 적시하고서 이를 비준하고, 그 비준에 따른 국내법을 개정하겠다고 공약하고 있다. 뭐 노동을 존중하지 않는 이 나라에서 노동존중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너무도 당연한 공약인 건데 뭐가 이상하다는 것이냐고 내게 물을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이 나라, 즉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할 일에 관해서 공약한 것이다. 선거 공약으로 핵심협약 비준을 말한 것인데 그래서 이상하다. 이 나라에서 노동자는 노조법 등 법령과 그 집행에 의해서 노조할 자유, 노동기본권 행사가 제한·금지되고 있다. 그러니 노동기본권을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도록 법령을 개·폐하고 집행하면 되는 것이다. 이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노동존중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서 마땅히 할 일인 것이다. 굳이 “국가 위상에 걸맞은 노동기본권 보장을 이뤄 내겠다”며 협약 비준을 말할 것도 없이, 즉 협약 비준으로 우회할 것도 없이 대한민국 헌법을 준수해야 할 대통령으로서 헌법이 규정한 노동기본권을 우리 노동자가 행사할 수 있도록 노조법 등 법령의 개·폐를 추진하고 집행하면 될 일이다. 이렇게 이상하다고 말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닌데도 끄적거려 놓고 보니 괜한 트집을 잡은 것처럼 나는 찜찜하다. 뭐가 됐든 노동존중 사회를 실현하면 될 일인데 내게 괜한 시시비비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노조법·공무원노조법·교원노조법 등 노동법 개·폐를 구체적으로 공약하면 발생할지도 모를 논란을 피하고, 불과 6개 나라에서만 비준하지 않는 핵심협약을 비준해서 “노동기본권 보장을 이루겠”다는 식으로 공약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4. 분명히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이 공약한 대로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ILO 사무총장 앞에서 밝힌 것이라고 해도 나는 문재인 대통령의 협약 비준에 관한 의지를 조금도 의심치 않는다. 설사 그것이 입법사항에 관한 조약에 해당해서 국회 동의가 있어야 한다고 해도(헌법 60조1항)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는 분명하다고 믿는다. 지금까지 이 나라의 권력은 의지가 없었다. 헌법이 노동기본권에 관해 규정하고 있음에도 이를 준수해야 할 대통령은 이를 제한·금지하는 법령을 개·폐할 의지는 물론이고, 노동기본권 보장에 관한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고자 하는 의지도 없었다. 촛불혁명을 계승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는 믿는다. 그러니 공약한 대로 이행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우리 노동자도 투쟁하는 인간으로서 지위를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런데 협약 비준을 위해서 국내 노동법 정비에 관한 말이 나오고 있다. 지난 5일 청와대는 비준 시기를 2019년으로 삼고 노사정 대화를 해서 비준과 관련된 법·제도 개선을 논의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됐다. 문 대통령과 라이더 사무총장은 국제 노동기준에 맞게 국내 노동법을 정비하는 문제는 다양한 이견이 존재하는 만큼 사회적 대화를 통해 양보·타협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고 했다. 지난 정부의 고용노동부가 법·제도를 먼저 정비하고 핵심협약을 비준할 수 있다는 ‘선 입법, 후 비준’을 내세워 왔고, 이로 인해서 협약 비준은 추진될 수 없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그러한 입장은 아니라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를 거치고서 비준하겠다는 ‘선 사회적 대화, 후 비준’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보인다.


5. 그런데 투쟁하는 노동자는 없다. 노동기본권 보장의 대상이 되는 노동자는 보호 대상인 노동하는 인간도 아니고, 계약하는 인간도 아니고, 투쟁하는 인간인 것이다.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서 사용자 자본과 권력을 상대로 투쟁하는 인간으로 노동자의 지위를 보장하는 일이다. 그런데 그것이 노동자에게 이 세상에 없던 새로운 권리를 보장해 주는 일이 결코 아니다. 무언가 먼저 정비하고서 추진해야 할 일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국회의 법 개정이든 노사정위의 사회적 대화든 먼저 해야 할 일로 여기는 한 이 나라에서 투쟁하는 인간으로 노동자의 지위는 확보되기 어렵다. 무엇보다도 투쟁하는 인간의 지위는 단순히 국회의 법 개정이나 노사정위 의결로 노동자의 것으로 오는 것이 아니다. 그걸 위한 노동자들의 요구와 행동으로 쟁취돼야 하고, 그래야 노동자 자신의 것으로 지켜질 수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 나라에서 투쟁하는 인간의 지위를 보장받지 못한 것은 우리 노동운동이 그걸 쟁취하기 위해서 우리 노동자들을 투쟁하는 인간으로 세워 내지 못해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니 정부의 협약 비준을 기다리는 것만으로 우리 노동자의 것으로 확보될 것이라고 기다리고 있을 일이 아닌 것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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