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머뭇거리는 사이 또 버스가 대형 교통사고를 냈다. 이번엔 충남 천안시 천안~논산 간 고속도로에서 일어났다. 지난 2일 오후 4시쯤 이 고속도로를 달리던 고속버스가 승용차를 들이받아 8중 추돌사고를 냈다. 승용차에 탔던 40대 부부는 숨졌고 고속버스 기사와 다른 승용차 운전자도 다쳤다.

숨진 부부는 고교 1학년인 아들과 초등학교 6학년 딸을 뒀다. 남겨진 10대 오누이는 부모의 죽음으로 졸지에 고아가 됐다. 한 집안이 풍비박산 난 거다.(동아일보 9월6일자 12면 <“부모님 앗아 간 졸음버스 … 어른들 무책임” 16세 상주 통곡>)

올해 7월 경부고속도로에서 수도권 광역버스가 추돌해 사망사고를 내자 갓 임명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다시는 졸음운전 사고로 안타까운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겠다”고 했다.

마을버스와 농어촌버스, 준공영제 미실시 지역 시내버스·시외버스 기사들은 살인적 노동시간에 시달린다. 버스 기사들 중에 고속버스와 준공영제 실시지역 시내버스 기사들이 그나마 낫다. 그래서 고속버스는 버스 기사들이 서로 가고 싶어 할 만큼 상대적으로 노동조건이 좋다고 알려졌다. 그런데 이번엔 고속버스가 사고를 냈다.

고속버스와 준공영제하의 시내버스가 마냥 좋은 일자리는 아니다. 상대적으로 좀 나을 뿐이지 장시간 노동은 여기도 여전하다.

국토부는 사고가 나자 부랴부랴 “모든 고속버스 업체를 상대로 특별교통안전점검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하고, 전방충돌경고장치와 차로이탈경고장치를 장착하겠다고 밝혔다. 두 달 전 광역버스 사고 때 나온 대책과 똑같다.

문제는 안전대책이 아니다. 하루 16시간 이상 일하는 버스 기사들에게 노동조건은 그대도 놔둔 채 안전점검만 강화한다고 사고가 줄어들진 않는다.

몇 년 전부터 잇따르는 버스 교통사고 참사로 시민들은 버스 기사들의 장시간 노동에 대해 상당 부분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런 만큼 이번 기회에 근로기준법 59조에 따른 근로시간 특혜조항에 묶여 무한대의 노동을 강요당해 온 교통부문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을 손봐야 한다.

지난 7월 광역버스 사고 직후 국토부가 대책을 내놓으면서 안전대책 시행 대상에서 고속버스를 제외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고속버스 업체는 안전관리 여건이 좋을 것으로 생각해 점검 대상에 포함하지 않았다”고 했다. 땜질식 처방은 이제 그만하자.

잇따르는 버스 사고에 국토부는 올해 2월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여객자동차법) 시행령을 개정해 운전노동자의 휴게시간을 강화했다. 노선버스 1회 운행이 끝나면 10분 이상 쉬고, 2시간 이상 걸리는 노선이면 15분 이상 쉬고, 4시간 이상 걸리는 노선엔 30분 이상 쉬도록 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버스 노동자들이 지난달 29일 서울시청 별관에서 서울시 규탄집회를 열었다. 서울시가 시행한 지 몇 달도 안 된 운전기사 휴게시간 규정이 불합리하다며 국토부에 축소를 건의하고 협의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서울시는 1회 운행시간이 1시간 미만인 마을버스에는 휴게시간을 10분이 아닌, 5분으로 줄이자고 건의해 현재 국토부가 검토에 들어갔다. 마을버스의 경우 재정이 매우 열악하고 당장 현장에 적용하는 데 혼선이 있다는 이유다.

서울시가 제대로 관리·감독도 해 보지 않고 이제 막 제도화된 운수종사자 휴게시간을 줄이자고 건의하자 버스 노동자들은 분노하고 있다. 얼마나 더 많은 사고가 나야 정부와 지자체가 정신을 차릴지 모르겠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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