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전태일 동상은 청계천 6가 버들다리(동상이 세워진 뒤에 전태일다리와 병기해 부르기로 했다) 중간에 있습니다. 2005년 전태일 열사 35주기를 맞아 노동자들이 주축이 돼 전태일 정신을 이어 가기 위해 세웠습니다. 좌대도 없이 다리도 잘린 채 토시를 낀 봉제노동자의 작업복 차림으로, 한 손은 하늘로 한 손은 땅으로 향하며 슬픈 듯 그러면서도 어떤 의지에 불타는 표정으로, 흘러가는 청계천을 바라보며 서 있습니다. 평소에는 동상 주변에 짐을 나르기 위해 기다리는 오토바이나 자전거들이 어지럽게 서 있고 지친 노동자들이 동상에 기대 앉아 맛있게 담배를 피우기도 하고 쉬기도 합니다. 이렇게 누구나 와서 눈높이를 같이하며, 어울려 함께 만지기도 하고 사진도 찍고 놀기도 합니다. 이런 동상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작가 임옥상의 민중적 관점의 상상력이 빛나고 있지요.

다리 바닥에는 참여자들의 자기 느낌과 소망을 담은 벽돌 크기의 동판을 깔았는데 다리 위에서부터 평화시장 앞 인도에까지 무려 3천800여장이나 됩니다. 당시 대통령이던 노무현을 비롯해 현장 노동자까지 공평하게 모두 한 장씩 차지하고 있습니다.

전태일이 바라보고 있는 청계천은 서울 도심을 가로지르는 개천입니다. 한양 도성이 만들어질 때부터, 사용하고 버린 생활용수가 모여 흘러가도록 만든 인공 하수천으로 보면 되겠지요. 옛날부터 이런 개천가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살았습니다. 집이 없어 판자나 가마니 등으로 움막을 지어 겨우 비바람을 피하곤 했지요.

6·25전쟁이 정전 상태가 되며, 북쪽에서 밀려 내려온 피난민들이 대거 청계천 주변으로 몰려오는 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돈은 없지만 생활력이 강한 이들은 그곳에서 재봉틀 한두 대를 놓고 간단한 옷가지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번창해 시장을 형성하기도 했습니다. 평화시장도 바로 이렇게 해서 생겨난 것이지요. 평화시장 건물은 청계천 6가에서 동대문 운동장에 이르는 청계천 가에 세운 두 개 동으로 된 건물로, 600미터가 넘는 우리나라 최대 시장 건물이었습니다. 당시는 붉은 벽돌집이었는데 2·3층은 소규모 봉제공장이 밀집해 있었고, 1층은 상가로 2·3층에서 만든 제품을 전국을 상대로 팔았답니다. 한창 번창할 때는 평화시장에만도 800여개 공장에 2만여명의 봉제노동자들이 밤을 새워 일했다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당시 시다는 하루 일당이 커피 한 잔값 정도였는데, 하루 14시간 이상 중노동에 시달렸다 합니다. 그나마도 공장의 공간을 늘리느라 다락방 형태로 쪼개서, 몸 놀리기조차 어려운 상태에서 각종 직업병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이렇게 평화시장이 좁아지자, 이들은 평화시장 뒤편에 통일상가나 동화시장 등도 만들어 전국에서 가장 큰 각종 옷의 생산·유통단지를 만든 것입니다. 그래도 북에서 전쟁에 쫓겨 내려온 이들의 한이 이름이 돼 평화·통일·동화 등으로 부르게 됐겠지요.

전태일이 청계천 평화시장으로 들어온 것은 이 무렵이었습니다. 1964년 봄, 그의 나이 열여섯 살이었지요. 시다로 시작한 그의 월급은 하루 14시간 이상 노동에 1천500원이었습니다. 그리고 6년 만인 70년 11월13일 그의 나이 스물둘에 평화시장 앞에서 근로기준법전을 끌어안고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고 외치며 분신 항거했습니다.

47년이 지난 9월5일 전태일 다리에 귀한 손님이 왔습니다. 국제노동기구(ILO) 사무총장 가이 라이더였습니다. 그는 전태일 동상 앞에 마흔일곱 송이 장미꽃 다발을 박원순 서울시장과 함께 바쳤습니다. 그리고 그가 12년 전 국제자유노련 사무총장 시절 전태일 기념 동판을 제작할 때 참여하면서 보내 준 글귀가 새겨진 동판을 찾아봤습니다. 전태일 동상 오른손쪽에 있었습니다. 가이 라이더의 서명이 들어 있는 동판은 그동안 무수한 사람들에게 밟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영문으로 이렇게 새겨져 있었지요. 안내를 맡은 나는 가이 라이더에게 이 글귀를 보낼 때의 마음으로 큰소리로 읽어 보라 했습니다. 노동자 출신 총장답게 그는 주저 없이 읽어 나갔지요. “전태일의 희생은 우리에게 큰 깨달음을 줍니다. 우리는 모든 곳에서 그의 삶을 이어받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약속합니다.”

나는 전태일 정신이 다른 나라 노동자들에게도 이어지도록 그의 손을 꼭 잡아 줬습니다.

전태일재단 이사장 (president11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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