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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대투쟁 30주년과 자본주의에 도전하는 노동운동
   
▲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여러 점에서 1987년과 비교되는 2017년이다. 노사관계 분석의 세계적 석학인 리처드 하이만은 노동조합 역사와 변화를 ‘불변의 삼각구도’라는 틀로 분석한다. 이 틀을 이용해 87년 이후 한국 노동운동을 분석해 보자.

노조는 기본적으로 노동시장에서 단결과 파업을 통해 피고용자의 이익을 방어한다. 그런데 노조의 단결과 파업은 사실 일반 시장에서는 독점행위로 규제될 행동들이다. 이 권리들이 노동‘시장’에서 허용되는 건 사회(민족공동체)가 이를 시민의 헌법적 권리로 특별하게 규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조는 공동체에서 인정받는 사회적 조직이 아니고서는 존재 자체가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또한 노조는 역사적으로 계급적 지향으로 스스로의 정당성을 확보했다. 대부분 국가에서 노조는 국가와 자본의 엄청난 폭력을 견뎌 내며 조직됐는데, 그 ‘계급적’ 폭력 속에 조합원들은 노조의 대의로서 반자본주의적 지향을 자연스레 받아들였다.

노조는 이렇게 시장의 행위자이자, 사회통합의 매개자이자, 자본주의체제에 도전하는 정치 세력으로 활동한다. 그런데 하이만의 조사에 따르면 노조가 안정성을 확보하려면, 이 셋 중 적어도 두 가지를 갖춰야 한다. 사회적 운동이나 계급적 지향 없이 시장에서만 활동하는 노조는 불안정하다. 실리만 추구하는 미국 노조들이 대표적이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시장에서 활동하지 않고 오직 계급투쟁이나 사회운동만 하는 노조는 특수한 정세가 아니고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높은 조직률을 갖춘 노조들은 대체로 시장의 행위자이자 사회적 통합의 매개자(독일)로, 또는 시장의 행위자면서 동시에 분명한 계급적 정치세력(이탈리아)으로 활동했다. 노조가 정세의 중요한 변수가 되려면 시장·사회·계급 중 하나만 갖춰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87년 이후 노동운동은 시장에서 시작해 부단히도 사회와 계급으로 나가려 노력했다. 하지만 정권과 자본은 반대로 시장 밖으로 분출하는 노동운동을 시장 안으로 욱여넣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체제를 기반으로 한 수출재벌 주도의 경제성장 전략과 반공주의를 사상으로 삼은 지배계급의 통치 전략이 그 배경이었다. 그리고 우리 노동운동은 결국 이 힘을 이겨 내지 못했다.

노동자 대투쟁 이후 이뤄진 노동법 개정에서 전두환 정권은 노조 설립절차를 다소 완화했지만 3자 개입금지와 노조의 정치활동 금지만큼은 양보하지 않았다. 동시에 정권은 노조 내 '빨갱이'를 색출한다며 노조의 정치화·사회화를 철저히 억압했다. 재벌과 정권은 현대그룹 노조들의 전투성과 연대성을 뽑아 내기 위해 갖은 공작을 벌였고, 이를 끝까지 거부한 현대엔진이나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에게는 말 그대로 ‘계급전쟁’을 선포했다.

재벌 하청이나 지불능력이 크지 않은 중소 제조업 노동자들은 민주노조 시작과 함께 사회적 변화에 상당한 힘을 쏟았다. 이들은 조건상 시장 교섭력과 함께 사회적·산업적 변화에도 관심이 많았다. 오랫동안 지역과 현장에서 활동해 온 반자본주의 지향의 정치조직들은 민주노조가 계급적 지향을 강화할 수 있도록 개입했다. 하지만 이들이 중심이 된 전노협은 90년 출범과 함께 무자비한 탄압을 받고 결국 깃발을 내려야 했다. 전노협에 대한 정권의 탄압은 노조를 시장에 가둬 두려는 자본의 일관된 전략이었다.

90년 이후에도 민주노조운동은 끊임없이 사회와 계급으로 진출하려 했으나 실패를 거듭했다. 김영삼 정권은 군부정권과 마찬가지로 노동운동이 ‘사회’로 진출하는 것을 막았다. 정권과 여당은 95년까지 군부 시절 노동법을 그대로 유지하다 노동시장 유연화를 목적으로 노동법 개정을 시도했다. 문민정부에서도 지배계급은 민주노조를 배제 대상으로만 여긴 것이다.

한편 민주노조의 계급적 지향은 역사적으로 붕괴했다. 소련 사회주의권이 몰락하고, 신자유주의·시장근본주의 사상이 세계를 휩쓸며 반자본주의적 세계관은 노동자 계급 스스로에게도 설득력을 잃었다. 자본주의 비판의 과학이었던 마르크스주의는 ‘포스트’로 시작하는 서구 담론에 그 자리를 내주며 노동운동과 융합할 계기를 더 이상 찾지 못했다. 계급적 지향은 전투주의라는 투쟁 문화로만 남았다.

95년 건설된 민주노총은 96~97년 총파업을 조직하며 사회로 나갈 절호의 찬스를 잡았다. 그러나 90년대 거품성장이 외환위기로 꺼지면서 민주노조운동은 사회로의 진출은커녕 시장에서의 교섭력마저 상당 부분 잃고 말았다. 민주노총의 야심찬 프로젝트였던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산별노조 역시 우여곡절을 겪으며 사회로 나가는 다리를 놓는 데 실패했다.

결국 시장, 그것도 노조를 감당할 만한 시장(대기업과 공공부문)에서만 노조가 생존한 결과가 오늘날의 민주노조운동이다. 앞서 말했듯 시장·사회·계급 중 한 요소에만 의존하는 노조는 불안정하다. 노조할 권리가 확대되지 못하고, 노동운동이 자꾸 위축되는 것은 결국 이런 불안정성 때문이라 할 것이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교훈은 바로 이것이다. 민주노조가 지속가능한 사회조직이자 세상을 변화시키는 변수가 되려면, 시장에서 사회와 계급으로 다시 분출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껏 지배계급이 민주노조운동의 분출을 막았던 배경, 재벌체제와 냉전체제(오늘날 의미는 미국 주도 금융과 군사 세계화)를 변화시키기 위한 운동을 조직하는 것이며,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오늘날 자본주의체제에 도전하는 운동을 만드는 것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적자라 할 금속노조는 현재 선거 중이다. 민주노조가 사회와 계급으로 뻗어 나갈 방법을 찾는 선거가 되길 희망한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jwhan77@gmail.com)

한지원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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