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노총은 6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노동자 대투쟁 30주년 기념토론회를 개최했다. 제정남 기자
민주노총에 따르면 1987년 6월29일부터 10월31일까지 전국에서 발생한 쟁의행위는 3천311건이다. 이전 2천658개였던 노조수는 3개월이 지나는 사이 6천142개로 늘어났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이 작성한 '한국의 노동조합 조직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1986년 104만명이던 노조 조합원은 이듬해에는 127만명, 1988년에는 171만명, 1989년에는 193만명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1989년 노조 조직률은 18.6%를 기록했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이 만든 노동운동 황금기다. 30년이 지난 지금의 현실은 어떨까.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15년 노조 조직률은 10.2%(193만8천명)에 불과하다. 30년 사이 거의 반토막이 됐다. 조직 대상 노동자는 2배가량 늘어났는데도 이들을 노조로 끌어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노동운동 내부의 갈등도 심각하다. 산별노조에 가입하겠다는 비정규직을 정규직이 막아서고, 한 노조로 묶여 있던 비정규직을 정규직이 노조 밖으로 몰아낸다. 지도부와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노조를 갈아타거나 탈퇴하는 노조가 생기고, 조직 대상이 중복되는 산별노조끼리 갈등하기도 한다.

"민주노총에 인간해방·노동해방 구호 사라져"

민주노총이 6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연 '노동자 대투쟁 30주년 기념토론회'에서는 이 같은 오늘날 노동운동의 모습을 자성하고 개혁해야 한다는 주문이 쏟아졌다. 토론회 1부에서는 전문가들이 87년 이후 한국 사회 변화상을 점검했다. 2부는 노동운동 전·현직 활동가들이 민주노조운동 발전방향을 모색하는 자리로 꾸며졌다.

2부 첫 발제자로 나선 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는 민주노총이 전태일 정신·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정신을 온전히 승계하지 못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그는 "전태일은 자본주의 질서와 그 원리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사상, 즉 프롤레타리아 휴머니즘인 인간해방 사상에 입각해 자본주의 사회구조에 맞서 투쟁하다 산화했다"며 "지금 민주노총은 인간해방이라는 구호는 물론이고 전노협 시대에 가장 널리 외쳤던 노동해방이라는 구호조차 실종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계급적 자주성과 변혁성을 회복할 수 있다면 민주노조운동의 공동체적인 성격과 전투성·연대성도 복원할 수 있을 것"이라며 "조합주의·기업별노조·경제적 노조운동을 극복하고 계급적 노조운동·산별노조운동·정치적 노조운동을 할 수 있도록 민주노총 정체성을 크게 바꿔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대표는 70년대 노동운동에 투신해 90년부터 95년까지 전노협 지도위원을 맡았다.

"혁신 주도해야 할 비정규직마저 조직확대 연연"

전노협 마지막 위원장인 양규헌 노동자역사 한내 대표의 진단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노동자는 하나라는 계급성은 물론 연대투쟁의 뜨거움도 보이지 않고, 고용형태가 다르다는 이유로 같은 현장 노동자가 하나의 조합원이 될 수 없는 오늘이 조직노동의 현주소"라며 "자본의 본질과 노동자계급의 처지는 30년 전과 다르지 않은데 우리는 민주노조운동의 정신을 망각해 버렸다"고 평가했다. 양 대표는 "자본의 통제 전략에 따라 발생한 미조직 노동자를 조직화하고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와 이주노동자를 차별 없이 대등한 관계로 발전시켜 내는 것이 민주노조운동의 일차적 과제"라며 "자주성과 민주성, 계급성과 투쟁성, 그리고 노동해방성을 다시 되살려 내는 것이 87년 대투쟁의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천연옥 민주노총 부산본부 비정규위원회 위원장은 "다수 정규직은 비정규직을 차별하면서 자본의 분할전략에 포섭돼 있고, 민주노총을 혁신해야 할 주체인 비정규직 운동은 성과주의에 매몰돼 조직확대에 연연하면서 변혁적인 정치사상은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라며 "노동운동을 전투적으로 재편하고 혁신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라는 착취제도를 철폐하는 것을 비정규운동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김공회 경상대 교수(경제학)·장귀연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정책위원·김영선 노동시간센터 연구위원·김혁 민주노총 사무부총장이 발제자로 참여했다. 이희우 공무원노조 정책연구원장·이호동 전해투 지도위원·강웅표 금속노조 경남지부 교육부장·김기범 사무금융연맹 부위원장·백석근 건설산업연맹 위원장·이상무 전 공공운수노조 위원장·김상구 금속노조 위원장·임순광 비정규교수노조 위원장·이선규 서비스연맹 부위원장·김태영 민주노총 경북본부장·권택흥 대구본부장·김창곤 인천본부장이 토론자로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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