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운동 혁신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현 정세에서 노동조합운동 혁신을 논의하려면 한 가지 문제를 짚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동조합 대표성을 어떻게 높이는 가의 문제다. 여기서 대표성은 양적 측면과 질적 측면을 갖는다. 대표성의 대표적인 양적 측면은 노조 조직률이다. 감옥에 갇힌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의 염원은 노조 조직률 30%다. 그는 “대한민국을 바꾸는 가장 강력한 힘”으로 조직률 30%를 강조했다. 노동조합운동의 대표성을 높이려면 양적으로는 노조 조직률을 올려야 한다.

질적 측면은 대표성이라는 말 자체에서 그 이해의 출발점을 찾을 수 있다. ‘대표’의 대를 큰 대(大)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노사관계의 사를 회사(社)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듯이. 그런데 ‘대표’의 대는 대신할 대(代)다. ‘표(表)’는 말하는 것, 즉 발언이다. 다시 말해 대표성이란 노동자들이 말하는 것을 그 노동자들을 대신해 노동조합이 조직적으로 사용자나 정부에게 변호해 주는 것을 말한다. 이런 점에서 대표는 대변(代辯)과 상통한다.

한국 노동조합은 10% 조직노동의 목소리를 넘어 전체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는가. 이 문제가 지적된 지는 오래다. 90% 미조직 노동자들을 위한 전략과 전술을 제대로 마련하고 있는가 하는 자성의 목소리도 크다. 노동조합운동이 90% 미조직 노동자들을 위한 실질적인 전략과 전술을 마련하고 있지 못한 현실을 ‘노동회의소’ 같은 비현실적 아이디어가 파고드는 실정이다.

질적 측면의 대표성은 노동조합으로 단결한 노동자들의 권리와 이해를 어떻게 대변하는가의 문제와 직결돼 있다. 여기서 단체교섭의 실천적 중요성이 등장한다. 노동조합이 여타의 대중 결사체와 다른 점은 단체교섭을 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단체’는 많은 이들이 오해하듯이 노동자와 사용자를 말하는 게 아니다. ‘단체’에는 사용자의 것이라고는 머리카락 하나 들어 있지 않다. 즉 단체교섭에서 ‘단체’란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단결한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그 내용에서는 노동조합 조직을 일컫는다. 단체교섭의 결과인 단체협약으로 노동자 권리를 보장하고 이익을 개선할 때라야 노동조합의 대표성은 질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다. 이른바 양의 질로의 전환인 것이다. 이런 연유로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은 불가분의 관계, 내용과 형식,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단체교섭은 여러 수준에서 이뤄지는데, 공장·기업·지역·업종·산업·중앙 수준이 그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공장 혹은 기업 수준의 단체교섭이 주류를 이룬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노동조합 대표성의 질적 측면을 결정하는 단체협약 적용률이 노조 조직률과 동일하다. 90%의 미조직 노동자들이 단체협약의 보호막 밖에 내동댕이쳐져 있는 것이다. 세상물정 모르는 이들은 근로기준법 등 법률로 보호하면 되지 않느냐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역사적·국제적 비교연구 결과물을 종합해 보면 법 집행(law enforcement) 수준은 노조 조직률과 단체협약 적용률의 수준과 정비례한다. 이런 점에서 노동조합은 법·제도 개선에 앞장서야 함과 동시에 노조 조직 확장과 단체교섭 확대에 주력해야 한다.

기업 울타리를 넘은 단체교섭으로는 지역교섭·업종교섭·산별교섭이 있으며, 그 주체는 산별노조들이다. 기업별 노조주의를 유지하는 한 단체교섭 확대는 불가능하며 이는 족쇄가 돼 조직률 확장을 억누른다. 무늬만 산별이라는 비아냥도 있지만, 산별노조 건설운동은 결단코 멈춰선 안 된다. 산별교섭이야말로 산업 수준의 노사관계 형성을 통해 노동조합운동의 대표성을 높이는 전제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단체교섭과 관련해 노총(총연맹)은 무엇을 할 것인가. 지금은 많이 약화됐지만 북유럽 국가에서는 노총들이 전국 중앙 수준에서 중앙사용자단체 및 정부와 중앙협약을 체결하기도 한다. 임금과 노동조건 등의 합의는 단체협약으로 부를 수 있겠지만, 법·제도 등 정책 개선을 둘러싼 정보교환과 협의, 그리고 합의는 사회적 대화(social dialogue)라고도 부른다.

지금 한국의 상황에서 노동조합운동의 대표성은 단체교섭과 노사관계의 측면에서 기업의 울타리 안에 갇혀 있으면서, 산업과 전국 중앙 수준으로 확대되지 못하고 있다. 노동조합운동의 혁신은 국가권력과 자본의 담합 속에 반세기 이상 유지돼 온 기업별 노조주의와 기업별 노사관계를 산별노조와 산업별 노사관계로 혁신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노총 수준에서는 노사 양자 혹은 노정 양자, 또한 노사정 삼자의 사회적 대화라는 메커니즘을 통해 법·제도 개선과 정책 결정의 과정에서 노동자와 조합원의 목소리를 내는 것에 다름 아니다.

한마디로 노사정위원회라는 쟁점들이 맞부딪히는 운동장에서 정보를 얻어 내고 정책을 협의하고 그 결정에 참여하는 역할을 노총들이 해 줘야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지역·업종·산별 수준에서 노사관계를 형성하고 단체교섭을 추진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 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사회적 교섭’의 한 축으로서 사회적 대화 전략·전술을 시급히 정립하고 '정보-협의-결정'이라는 3단계 중 정보와 협의 단계부터 경험을 축적하고 실력을 쌓아 나가야 한다. 이를 통해 정책 결정의 참여로 나아가기 위한 정치적 환경을 조성하고 조직적 역량을 비축해야 한다. 기업 수준에서는 ‘노동자 경영참가’를 추진하고, 산업과 중앙 수준에서는 ‘노동자 정책참가’를 활성화해야 하는 것이다. 질적인 대표성을 높이려는 이러한 노력들이 전제되지 않을 때 30% 조직률이라는 양적 목표 달성은 머나먼 목표로 남을 수밖에 없다.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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