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혜정 기자

업종을 불문하고 파견노동자들을 조직화하기란 쉽지 않다. 한 현장에서 오래 일하지 않고, 임금을 조금이라도 더 주는 곳으로 끊임없이 이동하기 때문이다. 오래 다닐 회사가 아니라서 동료들과 관계를 형성하지 않는다. 자신이 노동자라는 정체성도 별로 없다. 최근에는 우버택시나 배달대행업처럼 스마트폰 앱이나 SNS를 매개로 노동이 거래되는 새로운 고용형태인 '플랫폼 노동'이 등장하면서 노동의 개별화·파편화가 심화하고 있다.

저임금·장시간·불안정 노동에 시달리는 파견노동자들이 조직화돼 노동기본권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지난 2일 오후 서울 광화문 변호사회관 조영래홀에서 열린 '파견법 폐기·간접고용 철폐 2017 파견노동포럼'에서 논의된 핵심 주제다.

파견노동포럼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와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네트워크(비없세)·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민변 노동위원회·민주주의법학연구회를 비롯한 8개 노동·법률단체가 주최했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열린 행사다.

김혜진 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는 "지난해 1회 포럼에서 파견법 폐기투쟁을 현실 운동 목표로 가져오자는 제기를 했다면, 올해는 파견법 폐기투쟁 주체 형성을 위한 조직화를 구체적으로 논의하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파견노동자 특성에 맞는 조직화 방안 모색하자"

세 부분으로 진행된 이날 포럼에서 "파견노동자, 단결하다"라는 제목으로 열린 마지막 세션 '조직화 경로 찾기'에서 김철식 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정책위원장은 파견노동자들의 특징에 맞는 조직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 정책위원장은 "파견노동자들의 특징은 근속기간이 짧고 사업장 내에서 동료관계나 유대관계를 찾지 않지 않기 때문에 전통적인 조직화 방식인 사업장 단위 조직화는 유의미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제조업 파견노동자들은 사업장 이동이 빈번하지만 공단을 떠나지 않고, 서비스업종은 직장은 바꾸지만 파견으로 수행되는 자신의 직종·업종을 떠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지역·업종 단위 조직화 방법을 고민해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2금융권 콜센터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조직화 사업을 하는 정현철 사무금융노조 미조직비정규국장은 "콜센터가 고립된 노동형태인 데다 이직률이 높아 기업별·집단별 조직화에 한계가 있다"며 "개별노동자들이 임금체불이나 부당대우, 산업재해 문제로 상담을 요청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을 개별적으로 노조에 가입시키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월시화공단을 거점으로 노동자 권리찾기 운동을 하고 있는 '반월시화공단 노동자 권리찾기 모임 월담'은 사업장별 노조를 만들기 어려운 공단 특수성을 고려해 공단 전체를 아우르는 '지역노조' 방식의 조직화를 모색 중이다. 예컨대 지역에서 노동자들이 함께 지역임금표준을 요구하는 식으로 노동조건을 개선하자는 것이다. 이미숙 활동가는 "개별로 움직이고 동료관계를 쉽게 형성하지 않는 제조업 파견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함께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게 현시점에서 고민이자 과제"라고 말했다.

'인천지역 노동자 권리찾기 사업단'에서 활동 중인 이대우 금속노조 인천지부 수석부지부장은 "파견노동자들이 스스로 모이는 방식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수석부지부장은 "파견노동자들은 온·오프라인상에서 회사 정보나 일자리 동향, 관리자 성향, 동반취업 여부까지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집단적으로 사업장을 이동하기도 한다"며 "이들이 어떻게 모이고, 무엇에 관심을 갖는지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혜정 기자


노조하는 모임? 직장 바꾸는 모임!

비정규·미조직 노동자들이 스스로 권리를 찾는 것을 지원하고 엄호하는 사회적 운동이 필요하다는 제안도 나왔다. 오진호 비없세 집행위원은 "지난해 말 광장 촛불혁명 이후 일상을 바꾸고 일터를 바꾸고자 하는 욕망이 커지고 있다"며 "정부도 노조 조직률 제고를 얘기하는 열려진 공간에서 '내 삶도 바뀔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과 '노조하면 인생이 망한다'는 두려움 사이에서 망설이는 이들을 모아 낼 그릇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노조로 접근하는 문턱을 낮추고 이들을 집단화하는 방법으로 '온라인 플랫폼'을 제안했다.

직장을 바꾸고 싶은 이들이 온라인상에 모여 직장 문제를 토로하고, 법률가 활동가와 상담을 통해 해결방안을 모색하고, 고용노동부나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하는 등 집단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모임을 만들자는 것이다. 문제 해결 과정을 언론이나 온라인 홍보를 통해 사회적으로 공유하면 또 다른 노동자들이 재유입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오 집행위원은 "업종별 공통의제를 만들어 가면서 사회적 영향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며 "비없세에서 논의를 구체화해 조만간 이런 온라인 모임을 만들자는 제안을 사회적으로 공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규직노조 태도·인식 바뀌어야"

플로어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비정규직에 대한 정규직노조의 방어적·적대적 태도와 인식 전환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정찬호 광주시비정규직지원센터 대외협력국장은 "광주지역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전단지를 돌리면 민주노총이나 금속노조인 줄 알고 받지도 않다가 센터에서 나왔다고 하면 그제서야 발걸음을 멈춘다"고 토로했다.

정 국장은 "노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라도 대기업 정규직노조들이 자신들만을 위한 임금협상을 하지 말고, 하청노동자들을 위한 활동을 해야 한다"며 "기아차노조가 회사에는 하청에 내려보내는 단가를 올리라고 요구하고, 하청업체에는 그 돈이 하청노동자들의 인건비로 잘 쓰여지는지 관리·감독을 하겠다고 하면, 아마 하청노동자들의 폭발적인 지지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욱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해 금속노조 내부 문제점이 임계치에 달하고 있다"고 전했다. 금속노조가 전국자동차판매노동자연대노조의 금속노조 가입신청을 거부한 것이나 노조 기아차지부가 총투표로 비정규 조합원들을 노조에서 내보낸 것을 지적한 것이다.

김 변호사는 "내부적인 개선 노력도 필요하지만 외부적인 충격이 필요한 때"라며 "민주노총이나 주변 노동단체들이 논쟁을 회피하는 경향이 있는데, 조직 내에서 말하지 않는 부분을 공론화시켜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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