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호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 국장

중세 교회는 고리대금업자를 끔찍이 싫어했다. “고리대금업자는 돈을 빌려주는 시점과 이자를 붙여서 되돌려 받는 시점 사이에 흘러간 시간을 파는 자다. 그러나 시간은 오직 하느님에게 속한 것이므로 그들은 하느님의 재산을 훔친 도둑이다”는 것이 교회가 내린 고리대금업자에 대한 정의다. 노동을 하지 않은 채(!) 생산할 수 없는 돈을 빌려주며 그 대가로 ‘이자’를 받는 것은 결국 하느님의 관할 영역인 시간을 팔아 돈을 버는 것이므로 괘씸하다는 이야기다.

만약 중세 교회 성직자들이 2017년 대한민국을 들여다본다면 땅을 치고 한탄했을 것이다. ‘하느님이 주신 1주일을 어떻게 자기들 맘대로 5일이라고 해석한단 말인가?’ 하고.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하기 위해 6일의 노동을 마치고 하루를 쉰 뒤 이를 기념하기 위해 7일을 한 주로 만들었거늘 어찌 시간을 자기들 마음대로 재단하겠다는 것인지, 통탄할 일이다. 아, 오해하지 마시길. 나는 한국창조과학회와는 무관할뿐더러 창조론 신봉자도 물론 아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노동시간단축에 관한 합의가 불발됐다. 생각해 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두 번째로 긴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은 논의가 아닌 실천의 문제이며, 정치가 아닌 행정의 영역에서 풀어야 한다. 물론 법 개정을 통해 제도화하는 것이 안정적이긴 하겠지만 합의되지 않는 논의를 정치 영역에 계속 맡기는 것은 부지하세월일 뿐이다.

그렇다고 풀 수 없는 문제는 아니다. 사실 장시간 노동의 핵심적인 원인은 ‘근로기준법이 정의하는 1주는 7일이 아니라 5일’이라는 신성모독 주장을 하는 고용노동부에 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노동자들은 1주(7일) 동안 최대 68시간의 노동을 하게 된다. 하기에 이제라도 지침을 폐기한다면 OECD 노동시간 지표에서 십수 년째 수위를 다투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다.

대법원 판단이 남아 있지만 법원 역시 여러 소송에서 ‘평일이나 휴일 구분 없이 주당 최대 근로시간은 52시간’이라고 판시하고 있다.

정치권과 사용자쪽 앓는 소리는 사태 원인을 무시한 채 결과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돌리고 있다. 이들은 행정해석을 바꾸게 되면 지금까지 68시간으로 알고 사업해 온 기업들이 본의 아니게 ‘불법’을 저지르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대부분이 중소·영세 사업장일 것이라는 협박 아닌 협박을 한다. 주 40시간 노동제를 도입한 지 벌써 13년이 됐다. 5인 이상 20인 미만 사업장에 40시간 노동제를 도입한 지도 6년이 흘렀다. 법도 아닌 행정해석을 가지고 장시간 노동을 방치(를 빙자한 조장을)해 오다가 이제 와서 ‘경제의 충격이 크다’느니 하는 것은 좀 낯간지럽지 않나. 게다가 항상 그래 왔듯이 작은 사업장들은 순서를 기다렸다가 한참 뒤에나 노동시간을 줄이라 하는 것은 엉뚱한 곳에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다.

야당과 사용자들은 임금을 노동시간단축 논의테이블에 올리려고 하는데, 그러지 말길 바란다. 휴일에 연장노동을 하게 되면 당연히 연장근로수당·휴일근로수당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법에 다 나와 있는 내용이다.

“일자리 중심의 소득주도 성장이 옳은 방향이다. 근본적으로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고용률을 높여 소비확대와 기업의 투자 증대로 이어지게 하고….”

이 말은 끔찍하게도(!) 2년 전 지금은 구속된 전 정권의 대통령이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회동한 자리에서 한 말이다. 노동자를 사지로 몰아넣은 정권의 우두머리가 펼친 유체이탈 화법의 정수였다.

문재인 정부가 보란 듯이 제대로 된 소득주도 성장을 펼쳐 주기를 바란다. 장시간 노동에서 벗어나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는 ‘사람 중심’의 소득주도 성장은 노동시간단축에서 시작된다.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 국장 (labor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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