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아라사테’를 찍고 자가용으로 곧장 3시간을 달려왔다. 도착한 곳은 스페인 바스크지방 작은 마을 ‘몬드라곤’이다. "Dragon"라고 불리는 것으로 볼 때 우리말로 의역하면 ‘용산(龍山)’ 정도가 되지 않을까. 이곳이 바로 노동조합 운동의 본산으로 불리는 곳이다.

도시라고 하기에는 작은 마을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듯하다. 3만명이 안 되는 인구라고 한다. 하지만 광장을 중심으로 하는 고풍스런 풍광은 스페인의 여느 마을과도 견줄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광장을 지나 종착지 언덕배기에 위치한 몬드라곤 본사에 도착했다. 세계적인 기업이라고 해서 거대한 건물을 기대했건만, 그저 소박하다고나 해야 할까. 여기가 ‘협동조합’의 발상지라고 하니 이해가 될 만도 했다. 협동조합의 이념에 충실한 모습이지 않을까 짐작할 따름이다.

그 누구의 초대도 없었지만 당당히 본부 건물에 들어섰다. 호세 신부가 그야말로 아주 소박한 모습으로 앉아 있다. “협동조합을 일군 선구자”라는 책들의 소개가 무색할 정도다. 우리나라에 익숙한 재벌 창업주와 비교될 만하다. 이 또한 협동조합 정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작은 탄성이 절로 나온다.

호세 신부에게서 비롯된 몬드라곤 협동조합의 시작은 미미했지만 오늘의 결과는 엄청나다. 1956년 석유난로 생산에서 시작된 것이 지금은 위기의 자본주의를 바로잡는 대안적 가치로 인정받고 있다. 이곳 바스크지역은 물론 유럽과 아메리카에 이르는 지역에서 전기·전자·금융 등 100여개가 넘는 사업 분야를 협동조합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야말로 명실상부한 세계적인 기업이다.

협동조합은 독일식 노동자 경영참가와 함께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논의되고 있다. 이는 주주와 채권이 회사의 최종 책임을 지는 현재의 흔한 기업 모습은 아니다. 소위 주주자본주의는, 즉 기업이 주주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작동한 결과가 오늘의 노동자 빈곤 및 자본과 노동의 분절을 가져 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물론 이러한 진단이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부적절하다는 유의미한 반론도 있다. 턱없이 부족한 필자의 지식으로 대학자들의 이론적 분석에 토를 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그저 노동자의 삶이, 지난 한 세대 동안 더욱더 가파르게 악화되는 지금, 이름을 무엇이라 부르든 그 대안이 필요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노동조합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 특히 노동자에게 인간다운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희망 사다리라면 우리 모두가 반겨 발전시켜야 하지 않겠나.

우리에게도 협동조합을 할 수 있는 제도적 기본은 있다. 바로 협동조합 기본법(2012년 1월 제정)이다. 2011년 협동조합 기본법이 만들어지면서 공익목적의 사회적 협동조합은 물론 노동자가 조합원 신분으로 회사 주인으로서 운영에 참여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제도가 도입됐지만 사실 우리 주위에 협동조합이 흔하지는 않다. 가장 흔한 것이 생산자 협동조합, 서울우유 정도가 아닐까 한다.

보다 본격적이고 우리가 목표로 하는 노동자가 직접 회사를 운영하는 방식은 크게 활성화되지 못한 게 사실이다. 2000년대 초 이른바 협동조합 운동이 일었던 과정까지 감안한다면, 현재의 모습은 애초 입법자가 기대했던 것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짐작건대 정부가 법 집행에 소극적이었던 것이 큰 원인이 아닐까. 협동조합이 무엇인지 몰랐거나, 그렇지 않길 바라지만 이른바 자본이 그 대척점에 있는 협동조합 영역까지 파고들지 않았나 하는 짐작이 든다.

이제는 협동조합을 보다 적극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시대를 맞이했다. 자본을 중심으로 하는 성장의 한계를 극복하고 인간의 존엄성이 존중받는 일자리 창출이 절실한 때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협동조합이 가능하도록 신속한 제도적 뒷받침이 요구된다. 고작 일반법 하나로는 어림없다. 벌써부터 협동조합 기본법을 악용하는 부작용도 확인된다. 일부 지역적 사례이기는 하지만 노동조합을 무력화하는 데 혈안이 된 협동조합택시가 등장했다. 노동조합 파괴는 따져 볼 문제로 미루더라도 조합원 사이 출자의무를 위반하거나 주주평등을 원칙으로 한 민주적 운영이 아니라 실질적인 사장이 회사운영을 지배하고 있다. 택시사업의 업태에 맞는 협동조합 설립에 필요한 제도가 턱없이 부족한 결과다.

짧았지만, 몬드라곤에서 분명히 확인한 협동조합의 정신은 이러했다. 'Humanity at work(인간적인 노동)!' 1인1표에 따른 조합의 민주적 운영, 조합원(노동자)의 경영참여, 임금의 평등화, 지역사회발전 기여 등을 대내외적인 목표로 삼고 있었다. 노동자가 주인인 진정한 협동조합의 모습이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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