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현철 금속노조 경기금속지역지회 수석부지회장

시그네틱스 노동자들이 세 번째 해고 관련 선고를 앞두고 있다. "해고무효확인" 딱딱한 이 여섯 글자에 얼마나 많은 사연과 시간을 담고 있는가. 모든 사람의 시간이 똑같이 흐르지는 않는다. 해고된 이후 더디고 더딘 시간을 견뎌 낸 그녀들이다. 해고와 복직을 반복했던 그녀들은 어떤 심정으로 법정에 서게 될까.

영풍자본은 왜 그들을 세 번이나 해고했을까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영풍자본은 요즘 유행하는 말로 ‘적폐’ 세력이다. 아니 적폐 덩어리다. 영풍이 어떤 자본인가. 시그네틱스 노동자들에게 첫 번째 해고를 통보한 2001년 3조원 수준이던 자산총액(공정자산)이 두 번째 해고를 단행한 2011년에는 7조8천억원 수준으로 3배 증가했고, 세 번째 정리해고를 실시한 지난해에는 10조6천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우리나라 재계 순위 26위다. 국내 23개, 해외 26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겉으로는 사회적 책임 운운하며 영풍문고 등의 문화재단 사업을 진행하지만, 겉과 속이 다르다.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사회적 책임’이라는 말이 무색하다. 그 말을 입에 올리는 적반하장이 역겨울 정도다.

두꺼운 화장을 한 꺼풀 벗겨 내면 ‘무노조 경영’과 ‘생산직 정규직 제로공장’이라는 탐욕 덩어리를 마주하게 된다.

정규직 제로공장

영풍이 거느린 반도체회사는 시그네틱스·영풍전자㈜·㈜인터플렉스·㈜코리아써키트·㈜테라닉스 등이다. 이 많은 반도체공장에 생산직 정규직은 한 명도 없다.

영풍 계열사 사내하도급 실태를 보면 시그네틱스는 4곳, 인터플렉스는 23곳, 코리아써키트는 18곳, 테라닉스는 3곳, 영풍전자는 21곳으로 모든 생산은 이들 사내하도급 업체들이 담당한다. 게다가 불법으로 의심되는 파견노동자도 170여명 사용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영풍 계열사의 소사장제도(사내하도급) 역사는 오래됐다. 1990년대 후반부터 준비해 2000년대 초에 전 계열사에 안착시켰다. 노조도 없으니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물량 유동성에 대응하고 인건비 비중을 낮추기 위한 조처라는 게 회사쪽 설명이다. 노동자 입장에서는 노동 3권마저 빼앗겨 ‘주면 주는 대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노예 수준의 껍데기 노동자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라인반장 등을 소사장(하도급대표)으로 세웠다. 자본 없는 사장이 수십명 생겨났다. 사장이 비정규직인 소사장제도는 위장도급이다. 하지만 정부(고용노동부)는 수수방관하고, 법원은 자본의 편이었다. 영풍자본은 이 꿀 떨어지는 제도를 계속 유지하고 싶었다. 하지만 눈엣가시가 ‘금속노조 시그네틱스분회’ 조합원들이었다.

노동조합을 없애라?

영풍자본이 시그네틱스를 인수한 이후 시그네틱스 조합원들은 원치 않게 ‘한국 노동운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됐다. 16년간 세 번의 해고를 당했다. 2001년 전원 징계해고, 2011년 전원 정리해고, 2016년 전원 정리해고. 두 번의 해고가 부당하다는 판결을 받았음에도, 사업부를 분리해 마치 적자인 양 포장해 기어이 세 번째 해고를 했다. 노조 혐오증에 시달리는 대표적인 ‘대한민국자본’이라 해야 할 것이다.

무노조 경영 효과는 즉각적이다. 시그네틱스 생산직 여성의 연평균 임금은 2000년 1천619만원(평균근속 8.5년)에서 2014년 1천759만원(평균근속 25.5년)으로 제자리걸음이다. 14년간 140만원 올랐다. 8.6% 인상이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 노동자 평균 임금인상률(명목임금상승률)이 81%다. 소비자물가 인상률은 43.1%다. 경제는 64.2% 성장했다.

"이게 나라냐?" 촛불항쟁의 외침은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노동자 삶을 파괴하는 비정규직을 없애라"는 요구를 담고 있다. 노동권 보장이라는 헌법정신 구현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노조를 탄압하고,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영풍자본은 적폐 덩어리다. 그 적폐세력에 맞서 싸워 온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20대에 입사해 50대가 돼서도 싸워야 했던 그녀들의 이야기 말이다. 지면이 부족해 그 많은 사연을 담지 못해 못내 아쉽다. 9월1일, 그녀들의 ‘시간의 속력’이 보통사람과 같아지기를 기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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