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도형 변호사(법무법인 원)

대상판결 : 서울중앙지법 2017.8.10. 선고 2015가단5093293 판결


1. 사건의 개요

이 사건 망인은 피고(한국타이어 주식회사)에 입사해 대전공장 가류공정에서 브라다 및 몰드(금형) 교체 업무를 담당했는데, 고무흄 등 유해물질 증독으로 발병한 것으로 밝혀진 전이성 폐암(이하 ‘이 사건 질병’이라고 함) 진단을 받고, 근로복지공단에서 업무상재해로 인정받아 요양을 받던 중 사망했다.

이에 망인의 유족들은, 피고는 근로자들이 인체 발암 가능성이 있는 고무흄 등의 유해물질과 고열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채로 근무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근로자들의 건강관리 등을 소홀히 하면서 건강장해를 예방하기 위해 필요한 안전보건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않음으로써 망인을 포함한 근로자들에 대한 안전배려의무(안전보호의무)를 위반했고, 위와 같은 피고의 안전배려의무 위반과 망인의 고무흄 중독에 의한 폐암 발병과의 사이에는 상당인과관계가 있으므로, 피고는 망인의 유족들에게 망인 및 유족들이 입은 손해를 배상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하면서, 이 사건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2. 판결의 요지

1심 법원은 피고는 망인이 피고의 대전공장에서 근무함에 있어 물적 환경을 정비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않아 망인으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발암성 내지 유해성 분진에 노출되도록 함으로써, 자신의 귀책사유로 망인에 대한 안전배려의무를 위반했다고 인정했다. 그리고 망인은 피고의 대전공장에서 근무하는 동안 피고의 안전배려의무 위반으로 인해 고무흄에 노출됐고, 이로 인해 이 사건 질병이 발병했거나 적어도 그 발병이 촉진됐다고 추단할 수 있으며, 망인은 이 사건 질병으로 사망했으므로, 피고의 안전배려의무 위반과 망인의 사망 사이에는 상당인과관계가 있고, 따라서 피고는 망인의 공동상속인들인 원고들에게 망인에 대한 안전배려의무 위반으로 인해 망인이 사망함에 따른 망인과 원고들이 입은 손해를 배상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망인 외에 폐암으로 사망한 피고의 근로자는 2006년 5월께부터 2007년 9월께까지 사이에 2명에 불과한 점에 비추어 보면, 망인의 경우 오로지 고무흄에 의해 폐암이 발병했다기보다는 장기간 작업장에서 고무흄에 노출된 사정이 망인의 체질 등 기타 요인과 함께 작용해 폐암을 발병하게 했거나 발병을 촉진한 하나의 원인에 불과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한 점, 망인이 수행한 작업의 특성상 망인은 고무흄 등 분진에 노출될 수밖에 없으므로 망인으로서는 피고의 안전배려의무와 별도로 분진에 노출되지 않도록 스스로 주의를 기울여야 할 책임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점, 그럼에도 망인을 비롯한 피고의 근로자들은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을 하기도 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의 사정을 종합해, 피고의 책임 비율을 50%로 제한했다.

3. 판결에 대한 평가

이 사건 판결은 업무상질병으로 사망한 근로자에 대해 사용자의 불법행위 책임을 물어 손해배상의무를 인정한 것이 아니라, 근로계약에 수반되는 사용자의 신의칙상 부수의무인 안전배려의무(사용자는 근로자가 근로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생명·신체·건강을 해지치는 일이 없도록 물적 환경을 정비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강구해야 할 보호의무) 위반에 따른 채무불이행책임을 물어 손해배상의무를 인정했다.

안전배려의무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묻는 경우에는 근로자쪽에서는 사용자가 부담하는 안전배려의무의 구체적 내용을 특정하고, 업무상재해가 그러한 안전배려의무의 범위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이에 대해 사용자가 책임을 면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귀책사유가 없다는 사실(안전배려의무에 따른 제반 조치를 모두 이행했다는 점, 재해 발생에 대한 예측가능성이 없었다는 점, 근로자 자신의 귀책사유 또는 불가항력에 의해 재해가 발생했다는 점 등)을 증명해야 한다. 따라서 사용자의 위법행위 사실과 그에 대한 고의·과실 및 위법행위와 재해 사이의 인과관계 등 불법행위 성립요건 모두에 대해 근로자가 증명해야 하는 불법행위책임보다는 근로자쪽 증명 부담이 수월한 측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민변 노동위원회 편저 <근로기준법(신판)> 여림출판(2014), 977쪽].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이 사건 판결은 산재 손해배상 사건에서 매우 의미가 있는 판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피고의 안전배려의무 위반을 인정하는 과정에서, 역학조사 기간에 실시한 피고의 대전공장 가류공정에서의 고무흄 노출 측정 결과 그 정도가 노출 기준을 초과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으나, 사전 예고된 역학조사 기간에 측정된 결과만으로 역학조사 이전 기간에도 기준치를 초과하지 않았다고 추정할 수 없으며, 역학조사를 앞두고 작업환경을 개선한 상태에서 측정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므로, 역학조사를 기준으로 가류공정의 고무흄 노출 정도가 낮았다고 판단할 수 없다고 한 이유 설시 부분이 돋보인다.

또한 망인과 함께 근무했던 다른 근로자들에게는 이 사건 질병이 호발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개인의 면역력이나 신체조건에 따라 발병 여부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므로, 그와 같은 사정만을 들어 피고의 안전배려의무 위반과 망인의 이 사건 질병의 발병 및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가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해 사용자의 안전배려의무 위반에 대한 귀책사유가 없다는 피고의 주장을 배척한 부분은 다른 산재 손해배상 사건에서도 인과관계 증명에 그대로 원용할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의미 있는 판시 사항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업무상사고가 아니라 업무상질병으로 사망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 근로자 본인의 과실 비율을 50%나 인정했고,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재보험급여를 지급하면서 적용한 평균임금을 적용하지 않고 회사에서 망인에게 지급한 급여 중 특별상여금과 연월차휴가수당을 제외한 임금액을 기초로 일실수입을 산정해 피해 근로자의 통상의 생활임금에 못 미치는 금액을 일실수입으로 인정함으로써 손해배상 금액이 많이 감축된 것에 대해서는 이 사건 망인의 유족들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남는 판결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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