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승현 변호사(사무금융노조 법률원)

법조에 발을 들여 놓기 전. 드라마와 영화 속 법정 모습이 얼마나 현실 재판과 유리돼 있는지 모르던 시절 들었던 이야기 중 아직까지도 가장 공감이 되고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민사재판실무 수업 중 담당교수의 “민사재판은 거짓말 대잔치다. 대한민국에서 오고가는 거짓말을 집약해서 모아 놓은 것을 민사재판이라고 보면 된다”는 말이었다. 그 교수의 말은 증거를 통한 사실 확정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었지만 실무에 나오기 전까지 “거짓말 대잔치”라는 말이 얼마나 현실에 부합하는 말인지 공감하지는 못했다.

‘사실확인서’는 말 그대로 사실을 확인한다는 의미의 문서다. 노동자 징계사건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문서이기도 하다. 징계 대상자가 자신의 징계사유를 인정하고 확인하는 문서이기도 하고, 제3자가 징계 대상자의 징계사유를 대신 확인해 주는 문서이기도 하지만 결코 자신의 이름에 걸맞게 ‘사실’을 확인해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대부분의 거짓말 대잔치에서 주인공역을 자처한다.

이를테면 이렇다. 평온하던 사업장에 본사 윤리경영팀·감사팀·인사팀 등 이름도 멋들어진 부서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찾아와 직상 관리자·동료들과 면담을 진행한다. 무슨 일인지 잘 모르겠지만 면담을 마치고 돌아온 동료들은 나를 피하는 눈치다. 맨 마지막으로 면담실에 들어간 내겐 내가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일들에 대한 추궁이 기다리고 있다. “A업무는 지침상 A+로 처리해야 하는데 B로 처리해서 지침을 위반하셨네요. C업무 진행할 때 관리자 승인이나 지시를 받지도 않고 무단으로 처리해서 손해가 발생한 게 맞죠?”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고 기억에도 없지만 아무리 부인해도 면담이 아닌 취조를 하고 있는 그들은 내 말을 들을 생각이 없다. 그리고 절친했던 동료와 관리자의 서명이 기재된 사실확인서를 보여 주며 다들 잘못을 인정했으니 나도 그만 부인하고 모두 인정한다는 취지의 사실확인서를 작성하라고 어른다. 백이면 백 빠지지 않는 그 말과 함께. “이 건은 누구를 징계하려고 하는 게 아니에요. 부서의 업무방식을 건전하게 개선하기 위해서 하는 겁니다. 지금 인정하는 게 본인에게도 좋습니다.”

다 거짓말이다. 강압과 회유에 못 이겨 하지도 않은 일을 또는 잘못이 있다고 볼 수도 없는 일을 잘못이 있는 것처럼 사실확인서를 작성했거나, 아니면 끝까지 버텨서 이를 작성하지 않았거나 두 가지 모든 상황에서 징계를 피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특히 그 노동자가 노조위원장이거나 간부라면 어김없이 사실확인서를 통해 죄를 인정한 사람들 가운데 가장 무겁게 징계를 받는다. 그리고 이를 다투는 소송에서는 강압과 회유에 의해 징구된 ‘사실이 아닌’ 사실확인서들이 가장 유력한 증거로 제출되고, 징계의 덫에 걸린 노동자는 사실확인서를 작성했으면 자신의 말을 번복하는, 사실확인서를 작성하지 않았으면 남들은 다 인정하는 잘못을 혼자 인정하지 않는 비겁하고 반성하지 않는 사람이 돼 중한 징계를 할 수 밖에 없었다는 뻔뻔한 사용자의 주장을 들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때부터는 반대되는 증언을 확보하거나 다른 객관적인 물증을 찾아내는 수밖에는 없지만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상담을 하던 노동자들 중에는 자신을 해고한 회사보다 전혀 사실이 아닌 확인서를 작성해 준 동료가 더 싫다며 가끔 무고로 고소할 수 없냐고 묻기도 하지만 무고죄는 “공무소 또는 공무원에 대해 허위의 사실을 신고한 자”에게 성립하는 범죄로 ‘허위사실확인서’를 작성하기만 한 사람을 이로 처벌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자가 증인으로 법원에 출석해 허위 증언을 하는 경우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그렇지만 허위사실이라는 점을 입증하기란 쉬운 것이 아니어서 설혹 간교한 방법으로 위증의 벌을 피하게 되는 경우라도 허위의 사실에 대한 확인서 작성을 강요하는 사용자나 아무런 죄의식 없이 허위의 사실확인서에 자신의 가벼운 이름을 기재하는 자들이 자신이 한 행동과 똑같은 방법으로 인생의 가장 혹독한 시련에 처해지길 언제나 바라고 있다.

자신의 거짓말을 그럴듯한 변명으로 포장하고 아무렇지 않은 듯 일상을 살아가고 있을 거짓말쟁이들에게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이 거짓말을 하는 남자친구에게 일갈한 말을 전해 주고 싶다.

“거짓말에 하얀색이 어디 있어. 네 맘대로 하양이래. 개구라는 다 시커멓지. 다 개더럽지. 다 개소리지. 다 개수작이지. 개소리하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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