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삼성전자 LCD공장 노동자에게 발병한 희귀질환인 다발성 경화증을 산업재해로 인정했다. 삼성전자 반도체·LCD에서 일하다 병에 걸린 노동자가 대법원에서 산재를 인정받은 첫 사례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29일 삼성전자 천안 LCD공장에서 일하다 다발성 경화증이 발병한 이아무개(33)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산재요양 불승인 처분 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씨는 고등학교 3학년 재학 중이던 2002년 11월 삼성전자 LCD 천안공장에 입사해 2007년 2월 퇴사할 때까지 모듈공정 중 LCD 패널 검사작업을 했다. LCD 패널을 눈 가까이에 들고 육안으로 색상과 패턴에 불량이 없는지 확인하는 작업이다. 이 과정에서 이씨는 '이소프로필알코올'이라는 화학물질에 노출됐다.

1년 정도 근무한 시점인 2003년 10월부터 오른쪽 눈과 팔·다리 신경기능에 이상 증상이 발생했고, 증상이 심해져 2007년 2월15일 퇴사했다. 퇴사 후 이듬해 9월 다발성 경화증 확진을 받은 이씨는 2010년 7월 업무상재해라며 공단에 산재요양을 신청했다.

당시 공단에서 역학조사를 의뢰받은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해당 공정에서 유기용제를 사용하는 작업을 할 때 노동자에게 미치는 노출 정도나 인접 세부공정에서 발생해 전파되는 유해화학물질 노출 정도를 조사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현재 스트레스와 다발성 경화증에 대한 업무 관련성을 판단할 만한 충분한 의학적 검토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업무 관련성이 높다고 보기 어렵다"는 보고서를 제출했고, 공단은 이를 기초로 요양불승인 처분을 내렸다.

이씨가 제기한 소송에서 1·2심은 "원고가 주장하는 작업환경상 개별 위험요인들이 위험·노출 정도가 높지 않아, 원고의 업무와 다발성 경화증 발병·악화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원고가 입사 전 별다른 병력이나 가족력이 없는데도 삼성전자 LCD 공장에서 근무하던 중 우리나라 평균 발병연령인 38세보다 훨씬 빠른 21세 무렵 다발성 경화증이 발병했다"고 밝혔다. 특히 "공단이 의뢰한 역학조사 방식 자체에 한계가 있고, 사업주와 관련 행정청이 해당 공정에서 취급하는 유해화학물질 정보가 영업비밀이라며 공개를 거부해 원고의 입장이 곤란해진 특별한 사정이 인정된다"며 "이는 근로자에게 유리한 간접사실로 고려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상시적으로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되는 근로자에게 현대의학으로 정확히 알 수 없는 희귀질환이 발병해도 전향적으로 업무 연계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본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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