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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적폐
▲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적폐청산으로 뜨겁다. 적폐청산을 위한 문재인 정부 의지는 뜨겁다. 이제 본격적으로 적폐청산을 위해 나아가고 있다고 보인다. 노동 분야도 예외일 수 없다. 겨우내 촛불집회 광장과 거리에서 울려 퍼진 박근혜 정권 적폐 중에는 노동 분야가 적지 않았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이 나라 노동운동, 노동자들은 박근혜 심판과 함께 노동적폐 청산을 외쳤다. 촛불대선을 통해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승리라며 촛불혁명을 완성하겠다고 적폐청산을 말해 왔다. 무엇보다도 노동적폐 청산을 앞세워 추진했어야 했다.

하지만 2017년 여름이 다 지나가도록 노동 분야에서의 적폐청산으로 이 나라는 뜨겁지 않았다. MBC 등 사용자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특별근로감독 실시, 최저임금 인상 등의 소식만 간간이 들려왔다. 노동 분야에서 적폐 청산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지난 24일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이 민주노총을 방문했다. 고용노동부 내에 ‘노동적폐 청산을 위한 개혁위원회’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에 최종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은 “빠른 속도로 노동적폐 청산과 개혁 행보를 해 주길 바란다”고 화답했다고 한다. 모처럼 정권의 장관과 민주노총 대표가 화기애애한 만남을 가졌던 모양이다. 이제 노동 분야에서도 적폐청산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인가.

2. 김영주 장관의 민주노총 방문에 관한 언론 기사에서는 “노동 분야의 대표적인 적폐로는 박근혜 정부가 강행한 양대 지침(저성과자 해고·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과 단체협약 시정지시, 사업장 내 부당노동행위와 미온적인 근로감독행정 등이 꼽힌다”고 덧붙이고 있었다. 이것들이 청산할 대표적인 노동적폐라고 한다면 앞으로도 이 나라에서 노정관계는 화기애애할 수 있겠다. 아무리 투쟁적인 민주노총이라도 권력이 이러한 노동적폐 청산을 앞장서는 데 대해 각을 세우고 비난하며 투쟁할 수는 없는 노릇일 테니 말이다. 저성과자 해고·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에 관한 양대 지침이야 박근혜 정권의 노동부 지침이니 문재인 정부에서 개폐하면 그만인 것이고, 부당한 단체협약 시정지시도 더는 하지 않는 것으로 추진하면 되는 것이며, 부당노동행위 근절과 적극적인 근로감독행정 실시는 당연히 노동부가 법에 따라 노동행정을 하면 되는 일이다. 노동부 내에 ‘노동적폐 청산을 위한 개혁위원회’를 설치하고서 할 일도 아니다. 잘못된 노동행정을 바로잡기 위한 장관의 의지만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이런 일이라면 문재인 정부의 장관이 추진하고 한국경총 등 사용자단체나 사용자들이 비난하면 민주노총·한국노총 등 노동조합이 비난을 비판하면서 노동부를 적극 지지하면 될 일이다. 아마도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과제 중 노동적폐 청산이 가장 쉽게 완수할 수 있을 것이다. 박근혜 정권 심판을 위한 촛불집회에서 그랬던 것처럼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은 노동적폐 청산에서도 민주노총 등 노동운동과 함께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촛불대선에서 했던 노동공약(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록 공약과 더불어민주당 발간 정책공약집 참조)과 취임 이후 문재인 대통령 발언을 통해서 보면 노동적폐는 이 정도로 그치지 않는다. 공공부문 중심 일자리 창출 공약에서 간접고용을 직접고용으로 전환하는 등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밝혔고, 법정근로시간 1주 52시간을 준수하고 노동시간 특례업종 및 제외업종을 축소해 실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최저임금을 2020년까지 1만원으로 인상하고 비정규직 격차해소로 질 좋은 일자리로의 전환을 위해 비정규직 차별금지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단결권 등 노동기본권에 관한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공약하고, 특수고용 노동자·실직자·구직자 등의 노동기본권 보장에 관해 밝혔다. 이 같은 문재인 대통령의 노동공약은 당연히 그 전제로서 노동적폐를 파악하고서 이를 청산하기 위한 것이다.

3. 이러한 노동적폐는 당연히 청산해야 한다. 이를 위한 권력행사에 이 나라 노동운동은 지지해야 마땅하다. 노동자권리를 저해하고, 노동기본권 행사를 제한·금지해 온 노동적폐를 청산하는 데 필요하다면 함께 논의하고 협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뿐이라면 노동운동은 이 나라에서 설 자리가 없다. 노동적폐를 청산하는 권력을 지지해서 박수 치는 자리가 이 나라에서 노동운동의 자리는 결코 아니다. 촛불집회에서, 광화문광장에서 박근혜 퇴진을 외치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노래했을지라도 문재인 정권은 노동운동의 권력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의 노동적폐 청산에 그저 박수 치고 환호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 바라보는 노동적폐를 넘어 이 나라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 그리고 노동기본권 향상을 위해 보다 높은 곳에서 청산해야 할 노동적폐를 끊임없이 들춰 내야 한다. 오늘 이 나라 노동운동이 문재인 정부의 노동적폐 청산을 위한 일에 화기애애하게 화답하고 있다면, 그건 자신이 해야 할 일과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잊어버려서일지 모른다. 거대했던 촛불집회의 환호에서 벗어나지 못해서일 수도 있다.

4. 공공부문이든 심지어 민간부문이든 오늘 이 나라에서 문제 되고 있는 비정규직 고용은 안 된다고 노동운동은 말해야 한다. 사용 중인 비정규직은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정규직으로 가능한 일은 정규직을 고용하도록 해야 한다. 고용보장 등 노동자권리를 위한 노동운동은 노동자가 원치 않는 비정규직 사용을 노동적폐라 규정하고 청산을 외쳐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문제에 관한 인식과 해결방안에 대해서는 비정규직 철폐라는 근본적인 요구를 끊임없이 제기해야 한다.

노동시간단축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수단이 아니다. 일자리가 넘쳐나도 장시간 노동은 제한해야 한다고 노동운동은 말해야 한다. 이미 근기법은 1주 40시간을 초과해서는 안 된다고 법정근로시간을 규정하고 있다. 노동운동은 마땅히 법정근로시간 내에서 이 나라 노동자들이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법정근로시간 등 근로기준법상 노동제를 무용한 것으로 만드는 노동시간 특례업종 및 제외업종에 관한 규정은 폐지해야 하고, 주휴일 등 휴일근로를 1주간의 근로에서 제외하는 행정해석에서 벗어나 근로기준법에 따라 노동행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을 내세워 1주 40시간이 법정근로시간으로서 의의를 훼손하는 걸 방치해서는 안 된다. 이른바 주 52시간 법정근로시간 운운하는 말은 법정근로시간제에 무지한 말이고, 무엇보다 이 나라 노동자에게서 1주 40시간의 노동제를 빼앗는 말이다.

사회통념상 합리성 운운하며 저성과자 해고와 성과연봉제·임금피크제 등 임금체계 개편에 관한 취업규칙 변경 완화에 관한 노동부 지침 폐기를 넘어 취업규칙제도 자체의 폐기를 노동운동은 말해야 한다. 이미 수년 전부터 수도 없이 토론회 발표와 칼럼 등에서 말해 왔듯이 나는 이 나라 근기법의 취업규칙은 법도 아니고 계약도 아니라고 단언한다. 법도, 계약도 아닌 그 어떤 것도 이 세상에서는 사람에게 의무를 선언할 수 없다.

특수고용 노동자·실직자·구직자, 나아가 교원·공무원 등 특별한 노동자에게 노동조합 설립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이 나라에서 ILO 핵심협약 비준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노동자 일반에게 단결의 자유, 교섭과 투쟁의 자유가 보장되는 노동기본권을 위해 29호(강제노동)·87호(단결)·98호(교섭)·105호(강제노동 철폐) 등 ILO 핵심협약 비준 추진을 지지하는 것이다.

이렇게 살펴보니 분명해진다. 무엇을 노동적폐로 인식할 것인가에 따라 그가 서 있는 자리와 그가 하는 일에 대해 평가할 수 있다. 노동자권리 타령으로 사는 내게도 이 나라에서 노동적폐에 관해 말해 보라고 한다면 뭐라고 말할 것인가.

앞에서 언급했던 취업규칙제도를 먼저 꼽겠다. 사용자가 노동자 근로조건 등에 관한 기준 준칙을 제정·변경할 수 있는 권한을 전제로 하는 취업규칙제도는 노동자(대표)와 사용자 사이의 합의로 그 기준을 정하는 제도가 아닌 한 법적으로 용납돼서는 안 되는 것이다.

노동시간제도에서는 법정근로시간제를 꼽겠다. 근기법 50조는 1일 8시간, 1주 40시간을 초과해서는 일할 수 없도록 법정근로시간제를 규정하고 있으니 근로계약·단체협약·취업규칙·관행 등으로도 이를 초과하는 노동은 용인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연장근로에 관한 53조 등 근기법을 해석해야 한다.

임금제도에서는 통상임금제도가 대표적인 노동적폐다. 노동자 초과근로의 대가를 법정(소정)근로의 대가 임금에 가산임금을 지급하도록 한 근기법 56조의 취지에 부합하게 법정(소정)근로에 지급하기로 정한 임금 모두를 통상임금으로 파악해야 하고, 법 개정은 이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이 나라에서 노동적폐 중 으뜸은 노동기본권의 제한·금지다. 노동조합을 할 자유, 단체교섭과 단체행동을 할 자유를 제한·금지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등 법률은 전면적으로 개폐돼야 한다. 특수고용직·실직자·교원·공무원 등 특별한 노동자에 대해서만 아니라 노동자 일반에 대해서 이 나라 법률은 노동기본권 행사를 광범위하게 제한·금지하고 있다. 노동기본권 행사의 보장이 아닌, 그 제한과 금지를 위해 법률이 존재한다. 이 나라 노동자에게 노동기본권 행사를 보장하기 위해서라면 부당노동행위에 관한 조항 몇 개만 개선해서 남겨 두고 나머지는 전면적으로 삭제해야 마땅하다. 노동자를 ‘근로자’라고 규정했다고 노예로 취급되는 것이 아니다. 노예로 취급하는 법이 있기에 노동자는 이 나라에서 사용자 처분에 따라 결정되고 복종해야만 하는 노예로 존재해 왔다. 노사협의회야말로 이런 노동자 지위를 그대로 보여준다. 사용자에 복종하기 위한 협력만 있을 뿐, 노동자가 회사 경영에 참여해서 결정할 지위는 없다. 협력은 사업장 노동자들의 노동기준을 정하는 데까지 포함되는 것이니 이 제도가 도입된 이후 이 나라 노동자들에게 노사협의회는 사용자가 노동자권리, 노동조합을 할 자유를 빼앗는 기능을 해 왔다. 취업규칙·법정근로시간·통상임금·노동기본권·노사협의회 등에 관한 우리 노동법제를 나는 노동적폐라고 들었다. 노동운동이 자신의 자리에서 말해야 할 노동적폐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김기덕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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