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지현(성균관대 학생행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근로시간 특례업종을 26개에서 10개로 줄인다. 노선여객자동차운송사업은 특례에서 제외하기로 합의했다. 환노위는 28~29일 고용노동소위(법안심사소위)에서 관련 안건을 다룬다. 노동자 희비는 엇갈린다. 아예 특례제도를 폐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노동·시민·사회단체가 노동시간 특례제도 문제점과 폐해를 지적하는 글을 보내왔다. 네 번에 나눠 싣는다.<편집자>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 사이에서 ‘워라밸’이라는 신조어가 유행이다. 일과 삶의 균형(work-life balance)이라는 뜻이다. 취업을 준비하는 친구들로부터 “나는 월급보다 워라밸이 중요해”라고 말하는 걸 들을 때마다 일 이외의 자기계발을 위한 여가시간과 휴식시간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을 새삼 실감한다. 쉬지 않고 누군가와 경쟁하며 살아온 우리 청년들에게 워라밸은 예비직장인으로서 요구할 수 있는 최소한일지도 모르겠다. 돈을 많이 주지 않아도 좋으니, 나 스스로를 돌볼 시간을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2017년 한국 청년들에게 워라밸은 먼 세상 이야기다. 야근은 기본이고, 해 뜨기 전 출근해 해 뜨는 걸 보며 퇴근하는 직장이 많다. 야근으로 일이 끝나지 않으면 주말출근도 해야 한다. 한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직장인 1천486명을 대상으로 야근 현황을 조사한 결과 78.9%가 야근을 한다고 응답했고, 평균 야근 횟수는 주 4일이었다. 야근을 하는 이유는 업무가 너무 많아서, 업무 특성상 어쩔 수 없어서, 야근을 강요하는 분위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혼자 몇 인분어치 일을 하고 막차를 타고 집에 가거나 혹은 회사 수면실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 다시 출근해야 한다. 잠이 부족하지만 회사에서 졸지 않으려고 고카페인 잠 깨는 음료를 들이킨다. 이런 장시간 노동이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어쩌면, 살아남는 것이 기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런데 걱정은 이미 현실이었다. 많은 청년들이 직장에서 ‘과로사’로 목숨을 잃고 있다. 드라마를 만들면서 6개월 동안 단 하루 쉬었다는 tvN 신입PD의 죽음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줬다. tvN 신입조연출사망사건대책위원회가 받은 방송산업 실태 제보는 더 충격이다. 촬영할 때 하루 3시간 자면 많이 잤다고 비난받고, 하루에 1시간밖에 자지 못해 운전을 하다 중앙분리대를 들이받는 일이 너무 흔하며, 방송국에서 죽음은 너무 우스운 것이라는 제보들이 쏟아졌다. 스태프들은 부족한 수면시간과 스트레스 탓에 각종 질환에 시달린다.

방송산업만이 아니다. 넷마블에서 게임을 개발하던 20~30대 청년들이 연달아 돌연사하면서 게임산업의 심각한 초장시간 노동 역시 만천하에 알려졌다. 게임 출시가 다가오면 강제로 야근과 주말출근을 시키는 소위 ‘크런치모드’가 업계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실시되고 있다. 한 번 출근하면 퇴근하지 못하고 회사에서 2박3일 혹은 3박4일씩 책상에서 쪽잠 자며 일했다는 증언들이 곳곳에서 나온다. 마감 도중 직원들이 쓰러지고, 회사에 앰뷸런스가 왔다 가는 일은 다반사다.

게임산업과 방송산업 모두 청년들이 선망하는 직종이다. 그럼에도 기업은 ‘내 게임을 발매하고 싶다’ ‘내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청년들의 꿈을 이용하는 것도 모자라 목숨까지 앗아 간다. 초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청년들의 과로사는 청년들이 꿈꾸는 직장이란 한국 사회에서 불가능하다는 절망감을 불러일으킨다. 여가시간은 고사하고 목숨마저 내걸고 일해야 한다. 이런 사회에서 어떻게 청년들이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초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과로사 문제는 곧 청년세대 전체의 생존과 지속가능한 미래의 문제다.

지금 국회에선 근로기준법 59조(근로시간 및 휴게시간의 특례) '특례업종'을 다시 정하는 논의가 진행 중이다. 근기법이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최소한의 권익을 명시한 법이라는 것을 모르는 청년은 없다. 노동시간 특례업종은 근기법의 기본적인 방향성에 위배된다. 세상에 합법적으로 야근하고 특근해도 되는 일은 없다. 방송산업처럼 특례업종으로 적시된 업종은 물론이고 특례업종으로 지정되지 않은 게임산업에서도 지속적인 과로사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야근과 특근, 업무시간 외 업무지시가 만연한 한국 노동현실에서 회사가 합법적으로 더 일을 시킬 통로를 만들어 주는 것이나 다름없는 조항이다. 근기법 59조가 남아 있는 한 청년들은 언제 어떻게 직장에서 과로사할지 모른다.

휴가 한 번 제대로 못 가 보고, 하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 하나 제대로 해 보지 못하고 직장에서 생을 마감하는 청년들의 뉴스로 언제까지 가슴 아파해야 할까. 저게 내 미래일지도 모르겠다는 불안과 절망을 언제까지 느껴야 할까. 청년들은 일터에서 ‘목숨을 내걸고’ 일하고 싶지 않다. 과로사 없는 세상, 청년도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첫걸음은 근기법 59조의 축소가 아닌 전면 폐기에서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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