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지난 25일 국내 최대 재벌 삼성의 실질적 총수인 이재용 부회장이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과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은 각각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박상진 전 삼성전자 대외협력 담당 사장에게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에게는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이 선고됐다.

이재용 부회장이 어떤 판결을 받느냐가 가장 큰 관심사였는데, 실형이 선고돼 국내 최대 재벌인 삼성그룹 총수로서는 처음으로 실형을 사는 기록을 남기게 됐다. 재판부는 이재용 부회장에 대해 판결하면서 뇌물공여죄와 제3자뇌물공여죄·횡령죄·재산국외도피죄·범죄수익은닉죄·위증죄를 두루 적용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의 본질은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이 부도덕하게 밀착한 것”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정경유착죄라는 것이다. 또 “대통령과 대규모 기업집단의 정경유착이 과거지사가 아닌 현재 진행형이었다는 사실로 인해 국민의 상실감은 회복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덧붙였다.

재벌(chaebol)이라는 단어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나오는 명사다. 백과사전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1. 재벌은 생산구조상 관련성에 구애받지 않는 다각화를 통해 여러 시장에 걸친 많은 계열기업을 소유하고 있으며 외형상으로는 독립돼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산하 기업들 사이의 자본소유관계 또는 임원 겸임 등을 통해 일관된 체제하에 움직이는 기업군을 형성한다. (…) 6. 일본이나 한국의 경우 국가가 재벌을 통해 공업화를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놀랄 만한 경제와 기업의 성장을 이룩한 것이 사실이나, 한편으로는 소수 재벌에게 경제력이 집중돼 효율적인 자원배분을 왜곡시키는 과점적 시장구조와 불균형 산업구조를 파생시켰으며, 부와 권력의 불균등 분배구조를 심화시키는 사회적 결과를 야기시키기도 했다.”

한편 영어 <위키피디아> 사전은 이렇게 설명한다.

“재벌은 기업복합체(conglomerate)의 한국적 유형(form)이다. 전형적인 경우 이들은 글로벌 다국적기업들로 구성돼 있고, 여러 개의 국제적 사업체들을 거느리고 있다. 그리고 이 사업체들은 모든 사안에 대해 전권을 행사하는 한 명의 총수에 의해 통제된다. (…) 재벌은 또한 한국 정치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외국 사전에 나와 있는 이런 설명들만 보더라도 재벌은 결코 경제와 사회와 정치의 진보에 긍정적인 요소가 아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는 지금까지 재벌은 매우 긍정적인 것으로 인정돼 왔다. 경제가 잘 안 되면 나라가 잘되기 어렵고, 경제가 잘되려면 재벌이 잘돼야 한다는 논리구조였다.

이런 논리로 재벌은 국가발전의 일등공신으로 특별대접을 받았다. 최대급 재벌의 총수는 아무리 법을 어기고 큰 죄를 지어도 처벌되지 않거나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삼성공화국으로 불리는 나라에서 그 삼성재벌의 총수가 실형을 선고받았다. 형량이 너무 가벼워 ‘자본무죄 노동유죄’를 실감케 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또 국가의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이 동시에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이재용의 뇌물공여죄 유죄판결에 따라 뇌물을 받은 박근혜 전 대통령도 십중팔구 실형을 선고받을 것이다. 비선실세 최순실과 비서실장 김기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것들은 모두 연인원 1천500만명에 달하는 민중이 광장으로 쏟아져 나와 반년 가까이 촛불시위를 하고 혁명을 성사시킨 덕분이다. 그 덕에 구체제하의 상식으로는 이뤄질 수 없는 일이 일어났고 또 계속 일어나고 있다.

지금도 혁명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더 많은 급진적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이름만 자유한국당으로 바꾼 정통 수구보수정당은 계속 존속할 것인가. 그럴 수도 있지만 해체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해체될 가능성이 있는 것을 현실적으로 해체시키는 것이 사회운동의 역할이다. <중앙일보> 25일자 칼럼 '강찬호의 시시각각'에서조차 스스로 수구와 단절하고 개혁하지 못하는 자유한국당은 해체하고 재구성돼야 한다고 질타했다. 물론 그 칼럼이 제시하는 대안은 ‘새로운 보수’ 혹은 ‘개혁보수’ 정당으로의 변신이지만.

국가정보원도 해체될 수 있고, 수구언론도 해체될 수 있으며, 독점재벌도 해체될 수 있다. 그 수구적인 것들은 이제 더 이상 한국 자본주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저들이 추구해 온 한국 자본주의 선진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이야기의 다른 측면이지만, 노동자·민중이, 특히 젊은 세대가 그런 비효율적이고 비도덕적인 천민자본주의 체제에 대해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고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촛불혁명은 바로 이런 배경 속에서 이뤄졌다. 혹자의 견해처럼 재벌이 촛불혁명을 일으킨 것은 아니다. 재벌은 여전히 수구적이다. 그러나 자본의 인격화인 재벌이 아니라 자본 그 자신은 부패하고 비효율적인 낡은 체제의 종식을, 그 체제의 두 축인 파쇼적 국가기구와 천민적 독점재벌의 해체를 필요로 했다. 그래서 그 체제의 동요를 방관했다. 물론 노동자·민중이 급진적으로 혁명으로 진출할까 봐 급격한 몰락에는 반대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촛불은 자본(재벌이 아니라)의 수동혁명이었다.

그러면 구체제 청산 또는 해체는 우리 노동자·민중의 해방에 도움이 되지 않는 반동적인 일인가. 그것은 자본주의를 합리화하는, 즉 효율화하고 정당화하는 측면을 가지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노동자·민중의 경제적·사회적·정치적 지위 향상을 가져오고 세력의 획기적 신장을 가능케 하기 때문에 긍정적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지금 진행 중인 그 구체제 해체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마르크스의 어투를 빌리자면 “구체제의 한 축인 천민적 독점재벌은 이제 해체돼야 한다. 그리고 해체된다.” 그 첫 번째 순서로 애비는 성매매범으로 처벌받아야 하고 아들은 뇌물죄·횡령죄로 처벌받은 삼성재벌이 해체돼야 한다.

문재인 정부 각료들은 재벌개혁에는 동의하지만 해체에는 반대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 식이면 이 정권의 미래가 어둡다. 어제저녁 성주 소성리 토요문화제에 다녀왔다. 거기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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