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2019년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4개를 비준하고 관련 국내 법·제도를 개선할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정부는 ILO 핵심협약 8개 중 4개를 비준하지 않고 있다.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87호)과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원칙 적용에 관한 협약(98호)은 국내 노동기본권 보호와 밀접하다. 비준과 법·제도 개선 선후를 떠나 수십 년간 쌓인 노동적폐를 드러내는 작업이다. 노동법·노사관계 전문가들로부터 ILO 핵심협약 비준 방안과 전망을 들었다.
 

이광택 한국ILO협회장(국민대 법대 명예교수)

협약취지 반하는 제도 너무 많아, 빨리 준비해야
이광택 한국ILO협회장(국민대 법대 명예교수)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100대 국정과제에 ILO 핵심협약인 29호·87호·98호·105호 비준을 추진한다고 돼 있다. 행정부 권한으로 핵심협약 비준을 추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통령 의지가 가장 중요한데, 이를 국정과제에 명시한 것은 고무적이다. 매우 늦은 감이 있다. 진작 이뤄졌어야 했다.

핵심협약 비준은 간단한 과제가 아니다. 단결권을 보장하고 강제노동을 금지하는 핵심협약을 이행하려면 전 부처 차원의 준비가 필요하다. 고용노동부가 앞장서 면밀하게 대비해야 한다. ILO가 우리 정부에 수차례 권고한 내용을 검토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비준과 조치 이행을 병행해 나가야 한다.

단결권 문제와 관련한 87호·98호 협약 이행은 시급한 현안이다. 전교조·공무원노조는 실업자가 조합원에 가입돼 있다는 이유로 미신고 노동단체 상황에 놓여 있다. 조합원 자격은 노조가 판단하는 것이지 정부나 법이 정해 주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는 스스로 선택한 단체에 가입할 권리가 있다. 전교조·공무원노조 사태는 정부가 만들었다. 시급히 원상회복해야 한다. 국내 법·제도에 노동자 단결권을 침해하고 강제노동을 강요하는 갖가지 제도가 뒤죽박죽 섞여 있다. 쉽지 않은 과제인 만큼 협약 비준을 서둘러 준비할 필요가 있다.

 

김근주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

노사정 대화 테이블 올리고 정부 의지 밝혀야
김근주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

결사의 자유와 관련한 핵심협약은 노사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강제노동 관련 협약은 징병제를 포함해 여러 가지 법이 걸려 있다. 지금까지 정부는 비준을 부정해 왔다. 하지만 이제는 긍정적인 기조로 추진하는 듯하다.

협약을 먼저 비준하느냐, 아니면 국내법을 먼저 바꾸느냐의 문제가 있다. 협약을 먼저 비준하더라도 후속절차로 법을 바꿔야 한다. 강제노동 관련 협약처럼 여러 제도가 걸려 있다면 정부의 비준의지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비준을 먼저 하는 경우 여러 갈등이 불거질 수 있다. 정부가 ILO의 기술적 지원을 받아 비준을 한 뒤 이행하는 것도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선 비준이냐 후 비준이냐가 아니다.

ILO가 국제 노사정 파트너기구인 만큼 핵심협약을 비준하는 과정에서 정부 의지도 중요하고 노사 의지도 중요하다. 노사 간 협의체가 됐든,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가 됐든 대화 테이블에 올려 놓고 정부가 의지를 밝혀야 한다. 공무원노조와 전교조 문제에서 사용자는 정부다. 지금까지 소극적이었던 정부의 핑계를 막기 위해서라도 빨리 대화 테이블에 올려야 한다.


 

권영국 해우법률사무소 변호사

2019년 비준은 늦어, 지금 당장 비준해야
권영국 해우법률사무소 변호사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은 노동자들의 교섭권과 파업권, 심지어 단결권까지 제약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단체행동권을 행사해도 공장은 여전히 잘 돌아간다.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로 인해 노조를 만들어도 회사에서 과반수노조를 만들어 교섭권을 박탈해 버린다. 교섭권이 없는 노조는 파업도 할 수 없다. 비정규 노동자들은 노조를 결성하는 순간 계약해지를 당한다. 사용자의 이러한 만행을 관리·감독·처벌해야 하는 고용노동부와 검찰 역시 노동권을 제약하는 데 일조해 왔다.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는 내용의 법·제도 개혁이 가능할까. 국회 의석 분포를 보면 쉽지 않다. ILO 핵심협약과 상충하는 국내법을 개정한 뒤 협약을 비준하자는 것은 사실상 비준하지 말자는 얘기다. 적어도 대한민국이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당당하려면 국제적인 규범 정도는 지켜야 한다.

정부는 2019년 ILO 핵심협약을 비준한다는 계획이라고 한다. 2년이나 늦출 이유가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 반대세력 목소리는 커진다. 국민 지지도가 높을 때 개혁을 하지 못하면 2년 뒤라고 비준이 가능하겠나. 노동자들의 무권리 상태를 시급하게 시정하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고 그에 맞춰 국내법을 개정해 나가야 한다.

 

이승욱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핵심협약 비준, 하려면 제대로 하자
이승욱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ILO 핵심협약 비준은 오늘날 국제환경에서 당연한 것이다. 다만 최근 노동계를 비롯해 일각에서 ILO 핵심협약과 관련해 ‘선 비준 후 입법’ 의견을 내고 있어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다.

첫째, ILO 핵심협약과 국내법의 핵심적인 내용이 상충하는 상황에서 ILO 핵심협약을 우선 비준하기는 어렵다.

둘째, ILO 핵심협약상 원칙은 우리나라가 체결한 자유무역협정(FTA) 중 한미 FTA를 비롯해 7개국과 체결한 FTA에서 노동기준으로 명시돼 있다. 핵심협약 비준이 단순히 국내 노사관계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셋째, 우리나라에는 ILO 핵심협약을 포함해 국제노동기준을 담당하는 노동부 내 전문인력과 기구가 다른 나라에 비해 현저하게 부족하다. ILO 등 국제노동기준 관련 분쟁을 체계적·전문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조직이나 인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황이다.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려면 최소한 그에 걸맞은 조직과 인력을 뒷받침해야 한다. 넷째, ILO 핵심협약에 관한 제대로 된 연구가 축적돼 있지 않다.

우리나라가 법 개정을 포함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 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플랜을 갖춘 뒤 비준해야 한다. 비준을 먼저 하고 대책을 나중을 마련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ILO 핵심협약 비준만 하면 모든 노동문제가 해결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도 위험하다. ILO 핵심협약 비준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우리나라 노동권을 향상시키는 수단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조경배 순천향대 교수(법학)

노사 합의는 불가능, 비준은 정부 주도로
조경배 순천향대 교수(법학)

핵심협약 비준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노조법은 군부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 끊임없이 개악돼 왔다. 3자 개입금지나 정치활동 금지 조항이 폐지되기는 했지만 전체적인 틀은 노동통제 중심이다. 노동 3권을 복원하고 노동자들에게 돌려주는 것이기 때문에 기존 시스템에 익숙한 경영계가 크게 반발할 것이다.

협약 비준을 위해서는 노조법을 전면적으로 바꿔야 한다. 그런데 노동부 관료들이 적극적일지 의문이다. 대통령이 의지가 있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정부도 의지가 있어야 한다. 노조법이 87호·98호 협약에 반하게 된 것은 정부 탓이 크다. 그동안 국회에 책임을 미뤘지만 법을 개악한 주체는 정부였다.

노사정 대화로 비준하는 것은 어렵다. 합의가 이뤄질 수 없는 사안이다. 협약을 반드시 비준하고 법을 개정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정부가 주도적으로 캠페인을 해야 한다. ILO 회원국 대부분이 핵심협약을 비준했기 때문에 명분도 좋다.

노조법 중 부당노동행위 조항을 제외하고는 모두 바꿔야 한다. 노동자 보호를 위해 만든 법인데도 부당노동행위 제도를 제외하고는 노동자에 대한 통제와 형벌 위주의 내용을 담고 있다. 특수고용직 문제를 포함해 노동 3권을 가로막는 모든 제도를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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