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한국 경제의 생체실험… 소득주도 성장’. 23일 중앙일보 논설주간이 쓴 ‘중앙시평’ 제목이다.

칼럼은 자본주의 근간을 부정하는 ‘소득주도 성장론’에 대한 전면 공격이다. 칼럼은 규제완화와 노동개혁으로 경제성장을 도모하기 딱 좋은 골든타임인 지금, 세계 11위 경제대국인 한국에서 결코 성공할 수 없는 생체실험이 진행되고 있다고 반박한다. 칼럼은 소득주도 성장은 성공 가능성이 낮고 부작용이 큰 비현실적 이론인데도 문재인 정부 경제실세에 의해 새 정부 경제정책 근간으로 추진돼 위험천만하다고 진단한다.

칼럼은 문재인 정부의 진짜 경제실세로 김동연 경제부총리도, 장하성 정책실장도 아닌 홍장표 경제수석을 지목했다. 칼럼은 홍장표 수석이 2년전 부경대 교수로 한 포럼에 나와 했던 발제문을 근거로 들었다.

2년 전 발제문엔 ‘노동가치 존중’을 바탕으로 한 비정규직 정규직화, 최저임금 인상, 공무원 일자리 늘리기, 통신료 인하,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기초연금 인상, 법인세 최고세율 인상, 소득세 인상, 생활임금제, 상생 임금교섭, 대·중소기업 성과이익 공유제,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지수 도입이 언급됐다고 했다.

사실 이 정도의 얘기는 신자유주의 실패 이후 최근엔 주류 경제학에서도 자주 언급됐다.

이명박 정부 초기였던 2009년 12월 한국노동연구원이 주최한 ‘국가 고용전략 대토론회’에서 두 번째 발표자로 나섰던 한국은행 장동구 박사는 당시 ‘성장, 임금과 고용 간의 관계’라는 발제문을 통해 해방 이후 우리 정부가 반세기 이상 굳건히 지켰던 “성장이 이뤄지면 일자리와 분배는 저절로 창출된다”는 금과옥조를 무너뜨렸다. 장 박사는 성장의 고용유발 효과가 줄어들어 고용 없는 성장 시대를 맞아 성장과 고용의 동반 확대라는 선순환 고리의 시발점을 성장이 아닌 고용에서 찾고자 했다. 1970~2008년까지 40년 가까운 시계열적 분석을 통해 성장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보다, 고용이 성장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는 사실을 밝혔다. 분석 결과 고용이 1% 늘어나면 장기적으로 성장률이 약 2%포인트 높아졌다. 이 모든 게 주류경제학 틀 속에서 이뤄졌다. 홍장표 경제수석 역시 이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인물이다.

그런데 중앙일보 칼럼은 홍장표 수석이 말하는 소득주도 성장론이 시장을 부정하기 때문에 포스트 케인시안을 넘어 김수행 교수와 같은 마르크스 경제학에 기반을 둔 ‘운동권 경제학’이라고 진단했다. 이 때문에 어느 선진국도 소득주도 성장을 경제모델로 삼지 않는다고 했다.

홍장표 수석은 96년 김영삼 정부가 노동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만들었던 사회적 합의기구인 노사관계개혁위원회(노개위)에서 노사정 대화와 타협을 이끌었던 서울대 배무기 교수의 제자다. 배 교수나 홍 수석 모두 마르크스 경제학이니, 운동권 경제학과는 거리가 멀다.

중앙일보는 새 정부 경제실세를 운동권 경제학자로 매도하면서까지 ‘임금이 오르면 생산비용이 올라가 오히려 투자가 줄고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고전에 병적으로 집착한다. 이런 집착을 통해 중앙일보가 지키려고 하는 게 뭘까. 적어도 ‘국민경제’는 아닌 듯하다.

홍 수석의 2년 전 발제문은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가 남유럽과 동유럽을 강타할 때 상대적으로 충격이 덜했던 북유럽의 경로를 따랐을 뿐이다. 이를 두고 ‘운동권 경제학’이라고 낙인찍을 순 없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