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한반도 위기가 예사롭지 않다. 일부 군사전문가들은 한반도 전쟁 가능성마저 점치고 있다. 정부는 "한미동맹을 기본으로 전쟁 위기에 대응한다"는 입장이다. ‘동맹’이라고 표현하긴 했지만 "미국의 대북 전략에 한국도 참여한다"는 것이 현실에 가까운 의미일 것이다. 당장 한반도 평화위기의 계기 중 하나인 사드 배치만 봐도 그렇다.

한미동맹은 우리나라 보수세력에게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다. 보수언론들은 한미동맹에 문제를 제기하는 정치세력에겐 가차 없이 ‘종북’ 딱지를 붙인다. 친박세력은 지난겨울 박근혜 탄핵 기각 집회에서 아예 성조기를 자신들의 정치적 상징으로 가져다 썼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런 조건을 의식한 탓인지 집권 초부터 반복적으로 한미동맹 강화를 이야기한다. 한미동맹, 다른 말로 친미(親美)는 한국 사회 주류 질서에서는 정면으로 도전받지 않는다.

이유가 무엇일까. 필자는 한국의 친미는 군사동맹으로 표현되는 자본주의 재생산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자본주의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제도인 화폐제도가 미국 달러 없이는 구조적으로 불안정해진다. 한국은행이 발행하는 원화는 형식적으로는 한국은행의 부채증서다. 즉 원화 가치는 근본적으로 한국은행이 부채를 상환할 자산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물론 현실 경제에서 화폐 가치는 보다 복잡한 변수를 통해 결정되지만, 한국은행이 보유한 자산의 가치와 완전히 분리될 수는 없다. 그런데 한국은행은 자산의 90%를 외국자산으로 가지고 있다. 그 자산의 70%가 달러 자산이다. 한국은행 회계로 보면 우리나라 원화는 미국 달러를 담보로 발행되는 중앙은행권이라 할 수 있다.

선진국 화폐와는 많이 다르다. 미국·일본·영국·유로는 중앙은행 자산의 대부분을 자국 국채로 채운다. 국채는 국가 자산과 국민의 미래 세금을 담보로 발행되므로, 결국 중앙은행이 자국에서 생산하는 국부(國富)를 토대로 화폐를 발행하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 중앙은행은 자국의 부가 아니라 미국이 만들어 낸 부의 일부를 점유해 화폐를 발행한다.

그래서 한국은행이 보유한 달러 자산이 부족하거나, 미국경제가 불안정해지면 우리나라 화폐도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1997년 외환위기가 대표적이다. 97년 경제위기는 외환보유고 고갈로 대외채무 결제를 할 수 없게 된 것이 일차적 원인이지만, 동시에 한국은행 자산 부실로 우리나라 원화가 가치를 상실한 것이 중요한 원인이었다. 화폐가 없으면 자본주의 경제도 없다. 따라서 한국 자본주의는 미국 경제에, 미국 달러에 의존해서만 재생산될 수 있다. 한국 자본가들과 경제관료들이 근본적으로 친미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둘째, 우리나라 경제성장 역사가 친미 역사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재벌부터가 그렇다. 삼성 같은 1세대 재벌들은 미국 원조자금과 무상원조 물품을 독점해 성장했다. 50년대 삼성은 미국 원조자금으로 일본에서 설비를 들여와 미국 원조품인 원당을 재료로 설탕을 생산했다. 그렇게 번 돈으로 국내 다른 기업들을 인수합병해 오늘날 삼성그룹을 만들었다.

현대처럼 중화학공업으로 성장한 2세대 재벌 역시 마찬가지다. 박정희는 베트남전 참전을 계기로 미국에서 엄청나게 많은 차관을 가져올 수 있었고, 재벌들은 그 돈으로 조선·화학·기계·전자·자동차 기업을 세웠다. 재벌들이 오늘날 규모로 성장하게 된 계기인 80년대 중후반의 3저 호황 역시 미국이 일본의 엔화를 강제로 평가절상하며 만들어진 것이다.

97년 이후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도 미국과 재벌이 이해를 공유한 사례다. IMF가 제공한 구제금융은 한국 정부에 의해 직간접적으로 재벌 경쟁력 강화에 사용됐다. 규제가 철폐된 한국 자본시장에서 미국 금융자본들은 헐값에 나온 기업들을 사고팔면서,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등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의 주식을 거래하면서 큰 이득을 얻었다. 재벌들에게 미국은 그들의 역사 자체다.

셋째, 우리나라 경제 엘리트들이 미국에서 배운 것을 토대로 경제를 운영한다. 대부분의 학문이 그렇지만 경제학과 경영학은 미국 중심성이 아주 강하다. 미국에서 시장 근본주의 경제학을 배운 경제전문가들은 그들이 배운 것 외에는 경제학으로 인정하지도 않을 정도다. 이들에게 경제란 미국의 시장을 한국에 이식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최근에는 정부가 소득주도 경제를 주창해도 이것이 미국 주류경제학이 아니니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식으로 비판하는 경제학자들이 많다.

요컨대 한국의 친미는 경제적 토대가 분명한 지향이다. 한미동맹은 군사적임과 동시에 한국 자본주의가 미국과의 관계 속에서만 작동한다는 경제적 진실을 포함한다. 한반도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사드 같은 군사적 현안과 함께 한국 자본주의에 대한 문제제기를 동반해야 한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jwhan77@gmail.com)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