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나는 심장이 없어~, 나는 심장이 없어~.”

“안녕하십니까. 주인님 저는 감정을 제거한 완전체 G로봇입니다.”

주말이면 즐겨 보는 개그프로그램 인기코너가 있다. 특히 아이들이 즐겨 본다. 로봇보다 더 로봇 같은 개그맨의 연기에다 인간과 로봇 사이를 오가는 코믹한 대화까지.

아마도 위 코너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5분 남짓 펼쳐지는 설정이 머지않은 시일에 우리 모두가 함직한 일상을 다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우리의 미래다. 방 청소에서부터 간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재가 등장한다. 감정을 제거한 ‘완전체’라고는 하지만 남녀 이성 간의 감정 표현도 점점 강해진다. 이제는 감정이 제거된 것이 아니라 진정 감정을 스스로 불러일으키는 AI의 모습이다. 서늘한 감까지 든다. 어쩌면 인간이 만들었지만 그 인간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기계인간의 자가발전이랄까.

위 프로는 단순한 휴식을 넘어 이런저런 물음을 던진다. 바야흐로 4차 혁명이라고 하지 않던가. 4차 혁명은 무엇인가. 과연 실체는 있는가. 독일 제조업계 혁신 프로그램에 한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세계가 4차 혁명의 눈에 진입한 지 오래라는 주장도 있다. 백가쟁명식 주장이 한창이다.

4차 혁명에 대한 우리나라의 대응이 안일하다는 비판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우리나라만큼 4차 혁명이 ‘앞선’ 나라도 없다는 반론도 있다. 배를 만드는 조선업이나 기계장치산업 기계화 정도가 세계 최상이라는 게 반론의 논거다. 우리가 직접 보지 못하는 산업현장은 사실 일상에서 크게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늘 있었던 그분들(노동자)이 사라진 곳을 볼 때마다 ‘올 것이 오는구나’라는 걱정이 밀려온다. 늘 찾았던 은행창구가 사라지고 식당에 무인주문기(키오스크)가 등장한다.

이런 모습이 우리나라를 4차 혁명 대열에서 ‘앞선’ 주자라고 평가하는 유일하고 절대적인 요소일까. 그저 로봇으로 대변되는 기계가 우리 주위에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인간의 노동을 점점 더 많이 대신하는 것이 4차 혁명의 원래 모습일까. 고민 끝에 내린 필자의 답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4차 혁명은 세상을 바라보는 사고전환의 과정이어야 한다. 이전과는 다른 생각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 전체 구성원을 어느 범위까지 넓힐 것인가. 소유개념을 포함한 이른바 권리개념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개그프로그램에서 본 로봇을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로봇은 그저 인간 생활을 편리하게 하는 수단과 도구에 불과하다는 데 아무런 의심을 품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유럽에서는 이미 로봇을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하려는 인식 전환이 벌어지고 있다. 인간과 동일한 권리의무 주체까지는 아니더라도 앞으로 발생하게 될,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하는 인간과 로봇 사이의 권리분쟁에 대비하는 모습이다. 그때는 로봇이 지금의 로봇이 아닐 테지만.

이러한 세계관의 변화는 점진적이지만 계속돼 왔다. 반려동물에게 상속을 한다든지, 산과 자연은 물론 도롱뇽과 돌고래의 자기보호권을 인정하는 전제에서 이들을 위한 소송대리를 한다는 뉴스도 나온다. 처음에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해외토픽으로 여겼지만 이제는 “그럴 수도 있다”는 공감대가 커지고 있다. 이런 흐름은 인간만이 우리 사회의 주인이라는 도그마에서 벗어나는 과정이다.

과거를 돌아보자. 불과 1세기 전만 하더라도 대부분 문명국을 자처하는 사회에서 안타깝지만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권리주체로 보지 않았다. 아동 또한 그러했다. 계급이라는 이름으로 구분도 엄격했다. 외모는 인간이지만 일을 대신해 주는 가축 이상도 아닌 비참한 지경의 노예가 있었다. 이들은 전혀 사회 구성원이 될 여지가 없었다.

오늘날은 도저히 상상하기 어렵지만 당시에는 용인됐다. 역사는 매번 세계관을 넓혀 가는 과정이 바로 ‘혁명’이었음을 말해 준다. 노예에서의 해방, 여성의 정치참여,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 소외자를 위한 통신매체의 적극적인 제공 같은 과정은 크고 작은 ‘혁명’으로 이름 지워졌다. 그리고 인간의 삶은 상대적으로 나아졌다.

우리 모습은 어떤가. 과거 이른바 선진국이 거쳤다는 아주 오래되고 기초적인 혁명조차 제대로 이뤘는지 의문이다. 로봇과 함께하는 세상을 제대로 맞기 위해서라도 노동자와 여성을 주체로 인정하고 함께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나. 할 일이 많은 우리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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