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총탄 없는 전쟁이다. 타협의 여지가 없다. 숙의와 대화가 끼어들 틈조차 찾기 힘들다. 이해관계의 날 선 충돌이 일상의 풍경이다. 당사자들은 절박하다. 기간제 교사와 강사들은 물론 임용고시생과 발령대기교사 및 현직 교사, 학부모에 이르기까지 목까지 할 말이 차올랐다. 서로를 향한 서슬 퍼런 힐난과 견제 속에 교육공동체는 진작에 무너지고 있다. 찬반을 떠나 지난 정부 교육정책 피해자들끼리 어쩌자고 이 지경이 돼 버렸는가. 정규직 일자리를 향한 질주가 모든 가치를 압도하는 목표가 돼 버렸다. 내가 위원으로 참여한 교육부 정규직 전환 심의위원회를 질타하는 강도가 핵폭발 직전이다. 양극화와 불평등이 초래한 한국 사회의 민낯을 매일 쏟아져 들어오는 메일·문자폭탄을 통해 확인하며 씁쓸하다. 그예 묻는다. 출구는 있는가.

있다. 노동조합이 답이다. 헌법 33조에 버젓이 국민기본권으로 자리 잡고 있으면서도 무력화된 노동 3권이 활로다. 자본주의가 지속가능한 사회경제체제로 유지되려면 총노동과 총자본 간 대등한 역관계가 필수다. 노조야말로 임금을 비롯한 분배와 노동권을 사이에 두고 대표성을 가진 노사 당사자들 간 합리적인 대화와 교섭으로 타협과 상생을 도모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이 길을 통해 적대와 선명성 경쟁만이 난무하는 불모의 흥분을 극복할 수 있다. 이 길 위에서 노동현실을 개선할 구체적인 방도와 대안을 마련하고 실현해 갈 수 있다. 이 길의 굽이굽이마다 노사를 비롯한 이해당사자 간 첨예한 갈등이 전향적인 노사관계 형성으로 귀착되는 사회적 경험을 축적해야 한국 사회를 바꿀 수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삼성 무노조경영. 노골적인 위헌경영이다. 한국 사회 슈퍼갑이면서도 사회적 책무는 도외시한 채 천문학적 이익만 편취해 가는 재벌 일가를 제어하고 응징해야 한다. 헌법과 노동법을 묵살해 온 못된 관행을 혁파해야 한다. 재벌개혁은 노조의 힘이 뒷받침돼야 실행 가능하다. 삼성전자서비스 비정규 노동자들을 선봉으로 삼성 무노조경영 철옹성이 허물어지고 있다. 연이은 노조 결성으로 노동인권 불모지대 삼성의 동토에도 일터 민주화의 봄이 오고 있다. 촛불시민혁명으로 무소불위의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된 이후 숨죽여 온 삼성그룹 노동자들이 분기하고 있다. 뇌물죄·횡령죄·국외 재산도피·범죄수익은닉·위증 등 저지른 죄로 보면 이재용 부회장 1심 선고 양형은 엄중처벌 수준이 돼야 마땅하다. 무노조 경영도 처벌감이다. 민선 교육감이 노조 결성을 응원하면서 전무후무한 조직화를 달성한 학교 비정규직 사례 확장판이 삼성그룹에서 재현될 때 한국 사회는 진정한 변화의 전기를 맞을 것이다.

노조는 합법적인 유일 임금교섭기구다. 유노조 사업장이 늘어나는 만큼 노동자 간 임금격차도 줄어든다. 차별도 상당 부분 해소된다. 특히 비정규직과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삶의 질을 대폭 향상할 수 있다. 공무원시험 합격과 대기업 입사에 목을 매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 항아리형으로 노동자들의 임금 수준이 가운데로 모아지면 어느 일터에서든 노동자로 살 만한 사회가 된다. 공공부문과 민간부문 모두 적정한 임금과 복지 수준의 정규직 일자리 중심으로 두텁게 고용구조가 만들어지면 정규직을 향한 무한경쟁 질주를 멈출 수 있다. 약육강식 정글이 상생 공동체로 바뀌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최대 생산계급인 노동자들의 자주적 단결체인 노조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촛불시민혁명 이후 한국 사회가 당면한 핵심과제인 불평등을 극복하려면 노조 조직화를 통한 새로운 사회 건설만이 대안이다. 최대 사회적 약자인 미조직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노조 결성을 통해 개선되지 않고선 고용안정과 차별해소는 불가능하다. 최저임금 대폭인상 후속조치도 노조 조직률 제고와 맞물리지 않으면 실효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기능이 마비된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를 비롯한 사회적 대화를 복원시킬 필요조건이기도 하다. 양질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또한 노조를 매개하지 않고선 지속가능한 모델로 안착되기 어렵다.

학교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둘러싼 첨예한 갈등 양상 속에서 홍역을 치르며 합리적 공론의 장이 얼마나 중요한 사회적 자산인지 절감한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현장에서 미제로 적폐가 된 모든 문제가 중앙으로 집중되는 만큼 난제가 되기 십상이다. 정규직화가 진전되는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온 힘을 쏟아야겠지만 일거에 해결할 수는 없다. 현장에서 이해당사자 간 협의와 교섭이 숙성되지 않은 노동 문제 해결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난망할 수밖에 없다. 노조할 권리의 지속적인 대폭 신장이야말로 노동존중 사회를 앞당기는 지름길이자 근본적인 문제해결의 열쇠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namsin196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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