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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의사든 손쉽게 직업성 중독 보고할 수 있어야최민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 최민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대학병원 내과 교수로 일하는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소화기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던 20대 노동자가 급성 전격성 간염으로 입원했다는 것이다. 전격성 간염은 어떤 원인에 의해서든, 이전에 간기능이 정상이었던 사람이 갑자기 간기능이 저하돼 혈액 응고장애와 간성 뇌병증이 나타나 사망에 이를 수도 있는 경우를 말한다. 또 다른 한 명은 그만큼 심하지는 않지만 역시 급성 간염 증상을 보여 함께 입원해 있다고 했다.

무수히 다양한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일이었던 데다, 두 명이 동시에 간염 증상을 보여 주치의사도 화학물질에 의한 독성 간염을 의심하고 있었다. 사용물질 목록 중 이전에 집단 간손상 보고가 있었던 'HCFC-123'이라는 물질이 가장 의심된다고까지 했다. 그런데 이 환자에게 무엇을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막막하다는 것이다. 치료 외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의논하거나 보고해야 할 행정적인 절차는 어떻게 되는지 물었다.

치료는 일반적인 치료와 다를 게 없지만 직업성 중독이 의심될 경우 해당 환자를 치료하는 것 외에도 해야 할 일들이 있다. 먼저 직업성 중독이 맞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정확히 어떤 물질을 사용했는지, 어떤 환경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를 했는지, 노출 경로는 무엇이었으며 노출량은 어느 정도 되는지 따져 봐야 한다.

이런 확인은 질병 원인을 밝히고, 노동자가 산업재해보상을 받는 데 직접적으로 필요할 뿐 아니라 동료 노동자들의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서도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이런 일을 임상의사가 모두 할 수는 없다. 직업병 중에서도 특히 급성 중독성 질환 발생이 의심될 때 주치의사가 고용노동부 각 지청이나 안전보건공단 등 공공기관에 신고하면 해당 사업장에 대한 조사와 추가 피해를 줄이기 위한 예방조치가 가능해진다.

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에 의심 사례를 전달했고, 다행히 재빨리 당국이 산업재해 신청이나 동료 노동자 예방활동을 돕기로 했다고 한다. 공단은 할로겐화합물소화약제(HCFC-123)에 의한 독성간염 발생경보’를 발행하고, 소화기 제조업체들의 안전보건관리 실태를 점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미 수년 전부터 HCFC-123 소화기의 안전성 문제가 소방 관련 언론과 연구자들에 의해 꾸준히 제기돼 왔고, 외국에서는 생활 공간에서 사용이 금지된 소화기라는 내용은 여기서 다루지 않겠다. 치료를 담당하는 주치의사가 직업병을 의심한 뒤 보고되는 과정을 보자.

두 명의 환자가 함께 발생해 독성 간염이 좀 더 쉽게 의심됐다. 담당 전공의가 부지런하게 조사해 의심 물질을 특정해 냈다. 내게 연락한 의사는 직접 담당 환자가 아닌데 환자 치료 과정에서 협진이 요청돼 우연히 상황을 알게 됐다. 평소 직업병이나 노동자 건강에 관심이 있었다. 그는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쉽고 편하게 물어볼 수 있는 직업환경의학전문의를 친구로 두고 있었다. 노동부 지청 등을 통한 공식적인 절차 대신 고위 담당자에게 직접 연락을 할 수 있었다. 이런 여러 차례의 우연이 겹쳐 발병 열흘 만에, 비교적 매우 빠르게 대책이 마련됐다.

메탄올 중독으로 젊은 노동자들이 시력을 잃는 끔찍한 사고가 세상에 알려진 지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임상의사가 직업성 중독 환자를 만났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매뉴얼이 전혀 수립돼 있지 않다. 체계적으로 자료를 수집·분석·관리하는 것은 질병 확산을 예방하기 위해 꼭 필요한 체계다. 예를 들어 법정 전염병으로 진단되면 진단명을 입력함과 동시에 질병발생신고서식이 팝업창으로 뜨고 반드시 신고하도록 프로그램이 설계돼 있다. 직업병도 지역별로, 질병별로 다양한 방식의 직업병 감시체계가 구축·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의사 자율에 맡겨져 있고, 전국적이고 보편적인 감시체계는 일부 질병에만 해당돼 현장 임상의사들이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직업성 암과 급성 직업성 중독 사건, 직업 관련 선천기형 등 빠른 대응이 필요하고 사회적 의미가 큰 질병에 대해서는 보편적인 중앙 감시체계를 수립해야 한다. 의사의 법적 의무로 두지 않더라도, 건강보험신청 자료나 119 이송기록 등 다양한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자동보고체계를 수립할 수 있을 것이다. 메탄올 중독 사건 뒤에는 메탄올 사용사업장을 찾아가고, 소화기 사고 뒤에는 소화기 제조사업장만 따라다니는 방식의 접근 말고, 급성 중독 질환 예방을 위한 큰 틀의 대책이 필요하다. 아무것도 모른 채 일하다 시력을 잃고, 생명을 잃은 노동자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최민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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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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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전인 2017-08-24 21:52:51

    최교수님도 이 근로자가 결국 조금전 사망한 사실을 알고 계시겠죠..
    아마도 큰 파장이 예상되는데 정부가 어찌 대처할 지 궁금하네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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