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서용진 공인노무사(금속노조 법률원 충남사무소)

“사업장에 노조 설립이 되려고 할 때 사업주가 이를 막으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연차휴가미사용수당은 임금이 아니므로 이를 미지급한 것이 형사처벌을 해야 할 임금체불에 해당하지 않는다.”

언뜻 보면 노동에 적대적인 경영자단체 인사가 한 발언이거나 보수언론 기사에 나올 법한 얘기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동안 노동부 사건을 진행하면서 만난 근로감독관들의 말과 글이다.

노동자들이 임금체불이나 부당노동행위를 당했다고 노동부에 진정이나 고소를 제기하면 맨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근로감독관이다. 이들은 근로기준법 102조5항에 따라 노동관계법령 위반의 죄에 관해 사법경찰관리 권한을 갖고 있어 노동경찰로도 불리는 중요한 직책의 공무원이다.

문제는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근로감독관들이 노동관계법령을 제대로 알지 못해 전문성이 매우 낮고, 노동자 권리침해를 해결하기보다는 적당한 선에서 무마하거나 합의를 종용하는 경우가 많으며, 심지어 사용자 편향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점이다.

실제로 임금체불 혹은 부당노동행위를 당해 근로감독관을 만나고 온 노동자 상당수가 근로감독관의 비전문성과 노동자 무시, 사용자 편향성에 대해 분통을 터트리는 경우가 매우 많다. 이들의 이런 행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닌 대단히 오래된 문제다.

적폐청산을 내걸고 촛불시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탄생한 문재인 정부 초대 노동부 장관의 역할은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 지난 18일 김영주 노동부 장관이 근로감독관들을 만난 자리에서 “그동안 (노동)현장에서 근로감독관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있어 온 것이 냉엄한 현실”이라고 하면서 전문성 제고와 근로감독 부서체계 정비, 인력 대폭 확충을 언급한 것은 나름의 의미를 갖는다고 본다. 본인 임기 동안 임금체불·산업재해·부당노동행위 세 가지는 반드시 해결하겠다고 했는데, 제대로 이뤄질지 지켜볼 일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문제로 지적된 근로감독관들의 비전문성과 사용자 편향성을 해결하고 임금체불·산업재해·부당노동행위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인력을 확충하거나 추상적으로 전문성 제고를 선언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있어야 한다.

우선 근로감독관들의 채용 과정을 전면 개혁해야 한다. 현재와 같이 근로감독관이 국어·영어·국사 등 일반과목 시험을 보고 채용되는 일반행정직이 아니라 노동관계법령을 중요시험과목으로 하여 별도 직렬로 채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근로감독관들이 업무 처리시 다루는 노동관계법령이 16개나 되는데, 노동법의 뼈대인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도 제대로 모른 채 4주 단기교육만 받고 현업에 투입되는 현실을 반드시 개선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노동관계법령은 대등당사자 법률관계를 다루는 민사법과 목적·연혁을 달리한다. 사용자에게 경제적·사회적으로 종속돼 있는 노동자를 두텁게 보호하려는 취지를 갖고 있다. 근로감독관들이 이런 노동관계법령의 목적·취지를 이해한 바탕 위에서 전문지식을 숙지하고 채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로, 노동자들의 처지와 노동현장을 이해할 수 있도록 근로감독관들에게 현장성 있는 노동인권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노동자들이 세계 최장시간 노동에 허덕이면서도 고용불안 때문에 위법·부당한 대우를 눈감고 일하는 현실, 노동조합 가입·활동을 막는 부당노동행위가 만연하고 심지어 노조파괴 시나리오 가동 등 중대범죄로 인해 노동자들이 죽음에 이르는 심각한 현실, 대다수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할 엄두를 못 내고 연차휴가·육아휴직 등 정당한 법적 권리조차 요구하기 힘든 현실, 일을 하다가 아파도 산재신청은 꿈도 못 꾸고 신청해도 기각되는 경우가 매우 많은 현실에 이르기까지 한국 근로감독관들이 받아야 할 노동인권 교육은 그 내용이 방대하다.

이런 노동인권 교육이 꾸준히 이뤄져야 근로감독관들이, 이미 많은 정부기관과 언론들이 충분히 보호해 주고 있는 기업들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권익을 보호하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게 될 것이다.

47년 전 1주 98시간의 살인적인 노동시간을 단축하라고 요구하고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절규하면서 분신한 청년노동자 전태일에게 없었던 것은 대학생 친구만이 아니다. 청년노동자 전태일이 보고 싶었던 또 한 사람은 노동자들의 처절한 현실을 이해하고 노동법을 제대로 알며 엄정히 집행하는 근로감독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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