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창현 더불어만주당 의원이 재단법인 피플 주관으로 21일 국회 의원회관 2소회의실에서 열린 과로사 및 과로자살 방지를 위한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최근 장시간 노동과 불안정한 임금에 시달리던 두 명의 마필관리사가 연달아 목숨을 끊었다. 7월에는 안양우체국 집배원이 우체국 앞에서 분신해 숨졌다. 2013년에는 4명의 사회복지공무원이 잇따라 자살했다. 모두 과도한 업무부담에 스트레스를 겪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과로자살'이었다.

과로자살이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과로자살에 대한 인식이나 대책 마련이 미흡한 실정이다. '원래 지병이 있었다'거나 '개인적인 이유로 자살했다'고 치부하는 경향이 적지 않다.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과로자살을 고의적인 자해행위로 보고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업무상재해로 인정한다. 심지어 유가족에게 업무와 사망 간 인과관계 입증책임을 지운다. 업무상재해를 인정받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이에 프랑스처럼 유가족 입증책임을 완화하거나 일본처럼 객관적인 과로자살 인정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신창현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최로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과로사 및 과로자살 방지를 위한 토론회'에서 오빛나라 변호사(법률사무소 인정)가 프랑스·독일·일본의 과로자살 대응사례를 소개했다.

◇"과로자살, 유가족 입증책임 완화해야"=프랑스는 자살과 업무 간 인과관계 입증책임을 사용자와 건강보험공단에 부여한다. 오 변호사에 따르면 프랑스에서는 근로시간과 근로장소 내 자살사건이 발생한 경우 업무와 무관하다는 것을 사용자와 건강보험공단이 증명하지 못하는 한 업무상재해로 인정한다.

프랑스 사회보장법전 제L411-1조는 사고가 일어난 장소, 상해를 입은 날짜, 사건이 일어난 명목과 상관없이 업무 중 사고 또는 업무와 관계된 일로 사고가 일어나면 업무상재해 추정 원칙이 적용됨을 명시하고 있다. 오 변호사는 "자살행위와 노동자 업무와 인과관계만 성립하면 업무상재해로 추정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독일의 경우 자살을 업무상재해로 분류하진 않지만 회사 내 환경이 자살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기여했다는 게 증명될 경우 업무상사고나 질병 후유증으로 판단해 보상할 수 있다.

일본은 '심리적 부하에 의한 정신장해 등에 관한 업무상 외의 판단지침'을 만들어 구체적인 사건에 따른 평균적인 심리적 부하(스트레스) 강도를 표시하고, 심리적 부하 강도를 수정하는 시점에 착안해야 할 사항을 상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예컨대 일본에서 업무스트레스로 정신장해를 입거나 자살해 노동자·유가족이 산재신청을 했다면 '직장에서의 심리적 부하 평가표'를 사용해 업무스트레스를 평가한다. 심리적 종합평가가 '강'으로 나온면 산재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

오 변호사는 "우리나라에는 과로자살에 대한 객관적 인정기준이 없다"며 "자살에 영향을 미치는 업무 관련 유해인자를 분석하고 유해인자별로 어떤 경우에 어느 정도의 업무기인성을 인정해야 하는지를 객관적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과로사방지협의회에 유족대표 포함시키자"=이날 토론회에서는 신창현 의원이 올해 3월 발의한 과로사 등 예방에 관한 법률(과로사방지법) 제정안 보완점도 논의됐다. 제정안은 과로사를 방지하기 위한 국가 책무를 담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3년마다 과로사 방지대책을 수립하고 추진 성과를 국회에 보고해야 한다. 사업주는 국가가 수립·시행하는 시책에 협력해야 한다. 근로자 대표와 행정기관 대표, 민간 전문가가 참여하는 과로사방지협의회를 신설하는 내용도 있다.

윤미영 변호사(법률사무소 피플)는 과로사방지협의회 구성원에 일본처럼 '유족을 대표하는 자'를 포함시키자고 제안했다.

윤 변호사는 "과로사가 발생한 후 산재신청 또는 행정·민사소송을 하면서 과로의 실태, 근무환경의 열악함 등 재해자가 사망에 이르게 된 원인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유가족을 협의회에 참여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업주 제재규정과 함께 이를 현실에 적용할 감독체계를 정비해 과로사 예방대책의 실효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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