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우람 기자
“기본권 보장의 최후 보루인 사법제도와 사법부를 노동자 생존권을 짓밟는 겁박의 도구로 이용하는 원고의 청구를 바로 이 법정에서 물리쳐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자 권리를 수호해 주시기를 재판부에 간곡히 청하는 바입니다.”

지난 19일 오후 서울 신림동 서울대 법과대학 3층 모의법정. 재판부를 경계로 마주 앉은 6명의 예비 법조인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간혹 판사가 던진 기습적인 질문에 말이 꼬이기도 했지만 표정만큼은 사뭇 진지했다. 패기 넘치는 법리 공방이 법정 안을 가득 메웠다. 파업에 대한 회사의 손해배상 청구가 왜 옳은지, 왜 잘못됐는지를 놓고 설전이 펼쳐졌다.

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손잡고)와 양대 노총·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가 이날 서울대 법대에서 ‘3회 노란봉투법 모의법정 경연대회’를 열었다. 전국 로스쿨 재학생으로 구성된 15개 팀이 대회에 참여했다. 서면심사로 본선에 오른 8개 팀이 경연에 나섰다.

'업종 전환' 반대파업은 합법일까 불법일까

주최측은 경연대회를 위해 가상의 ‘동화산업 주식회사’를 등장시켰다. 동화산업은 제조업에서 부동산개발업으로 업종 전환을 결정했고, 반도체산업노조 동화산업지부가 이를 반대하는 파업을 한 것으로 가정했다. 회사는 지부 간부에게 20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노사 갈등 상황에서 2노조 설립을 통한 기존 노조 와해 전략이 담긴 회사측 문건이 발견됐다.

본선 2차 A조 경연에서 참가번호 3005번(이화여대=김한라·노다은·조나현)이 순서에 따라 원고를, 3014번(고려대=강서진·이정선·김수연)이 피고를 변호했다.

손배청구와 파업의 정당성 여부가 쟁점으로 등장했다. 김수연 참가자는 “원고의 청구는 소권 남용으로 그동안의 판례는 오로지 상대방을 괴롭힐 목적으로 소를 제기하는 것을 기각해 왔다”며 “원고가 노조와 조합원들의 경제적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상황에서 피고들이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을 청구한 것은 다분히 악의적”이라고 비판했다.

이정선 참가자도 “파업 사업장을 보호하는 것은 근로자의 임금과 일할 권리를 사용자가 일체 박탈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며 “2015년 단체협약 교섭에서 업종전환을 교섭 대상으로 합의한 회사가 이를 이유로 한 파업에 손배를 청구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라고 지적했다.

원고측 주장도 만만치 않았다. 김한라 참가자는 “원고의 업종 조정 및 그에 따른 구조조정은 긴박한 경영상 필요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므로 일일이 노조와 모든 사항을 협의할 수 없다”며 “그럴 경우 구조조정 의미 자체가 사라지며 장기적으로 서서히 변화하는 흐름이라는 사실을 노조측에 미리 고지했다”고 반박했다.

최우수상 충남대 "기울어진 운동장 바로잡을 것"

A조 경연에 앞서 법과대학 205호에선 B조 2차 본선이 열렸다. 참가번호 3009번(이화여대=황혜진·장하얀·조현주)은 원고, 3001번(충남대=서범진·고혁준·이수열)이 피고측에 섰다.

고혁준 참가자는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피해 일반에 대한 구체적인 증명이 있을 경우에만 손해배상 청구에 대한 헌법적 권리를 인정한다”며 “회사가 200억원의 손해를 입었다고 하면서 산정기준도 밝히지 않고 있는데 이는 과실상계”라고 비판했다.

조현주 참가자는 “문서에 기재된 내용이 대부분 실행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서류가 존재한다는 이유로 부당노동행위를 저질렀다는 반노조 의사가 있다고 추정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노조의 불법 행위는 자연인의 행위를 매개로 이뤄지므로 파업을 주도한 주체적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참가자들이 경연룰에 따라 원고와 피고측을 각각 한 차례씩 변론했다. 점수는 △문제의 이해도 △변론의 적정성 △법정 태도를 기준으로 매겨졌다.

참가번호 3001번에게 최우수상(국회의장상)이 주어졌다. 3014번은 우수상(국회 환경노동위원장상)을 탔다.

이수열 참가자는 “진보를 위해 노력하는 많은 현장의 활동가들을 만나 즐거웠다”며 “선배들이 그랬듯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는 법조인이 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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