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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존중 사회? 국제노동기준부터 지키자 ①] 노조 가입·설립 어려워 … 26년간 되레 멀어진 노동기본권공무원 해고자와 법외노조로 본 'ILO 핵심협약 위반' 현실
   
▲ 지난 17일 전국공무원노조와 전교조가 광화문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ILO 핵심협약 비준을 요구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정부도 노동계도 "노동존중 사회"를 외친다. 수십 년간 적폐가 쌓인 한국 사회.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려면 손봐야 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툭하면 글로벌 스탠더드를 외치는 한국 사회에서 노동만큼 국제기준과 거리가 먼 분야도 드물다. 실제 한국 노동지표는 국제노동기준을 한참 밑돈다. 노동존중 사회로 가려면 국제노동기준부터 지켜야 한다. <매일노동뉴스>가 네 차례에 걸쳐 기획기사를 준비했다.

1. 노동기본권 국제노동기준
2. 좋은 일자리 국제노동기준
3. 노동존중 사회는 노동존중 도시로부터
4. 노동전문가 릴레이 인터뷰

전국공무원노조 희생자원상회복투쟁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조창형(58)씨는 해고자다. 경기도 수원시청 공무원이었던 조씨는 2004년 11월 지부장으로 노조파업에 동참했다. 단 하루 결근했는데 그에게 돌아온 것은 해임이었다.

조씨는 지난 17일 공무원노조와 전교조가 청와대 인근 분수대 앞에서 개최한 기자회견에 참석해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요구했다.

ILO 핵심협약 비준은 단순히 공무원노조만의 구호가 아니다. 파업에 참가한 때부터 지금까지 13년간 조창형씨 개인과 공무원노조에 일어난 일을 보면 그렇다. 국제노동기준 중에서도 가장 기본인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한국에서 그의 삶과 노조의 존립은 요동쳤다.

'노동 1.5권' 반대파업으로 해고당해
해고자 가입했다는 이유로 법외노조?


조씨가 파업한 때는 2006년 1월 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공무원노조법)이 시행되기 전이었다. 당시 공무원들이 설립한 노조는 인정받지 못했다. 사용자인 정부·지방자치단체와 교섭할 권리도 없었다. 그런 가운데 시행을 앞둔 공무원노조법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정부가 준비한 법안에 따르면 5급 공무원 이상은 노조에 가입할 수 없었다. 6급 중에서도 상당수가 가입이 금지될 것으로 예상됐다.

단체행동권은 아예 없었다. 단체교섭권에 대해서도 노동계 반발이 거셌다. 정부 정책이나 법률은 교섭대상이 아니었다. “노동 3권은 고사하고 1.5권밖에 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한국 정부가 비준하지 않은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87호)은 모든 노동자들이 노조를 설립하고 가입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 핵심이다. 노조활동을 이유로 한 차별·해고를 막고 단체교섭을 촉진하는 내용의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원칙 적용에 관한 협약(98호)도 노조할 권리를 보장한다.

그러나 정부가 마련한 공무원노조법은 노조가입에 상당한 제약을 뒀다. 공무원노조는 정부가 마련한 공무원노조법 철회와 노동 3권 보장을 요구하며 파업을 했고, 조창형씨도 참여했다. 조씨는 벌금형에 그쳤지만, 당시 공무원노조 핵심 지도부는 체포·구속됐다. 공무원들의 정치행동이나 집단행위를 금지한 국가공무원법·지방공무원법을 위반했다는 것이었다.

ILO 핵심협약 중 강제노동 폐지에 관한 협약(105호)은 정치적 견해 표명이나 파업 참가를 제재하기 위해, 또는 노동규율을 위해 강제근로를 시키는 행위를 금지한다. 정치활동이나 집단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강제노역이 부과되는 징역형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국가공무원법·지방공무원법은 105호 협약과 충돌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외면된 결사의 자유 협약

조창형씨와 전국공무원노조의 고초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공무원노조법을 거부해 법외노조로 남아 있던 전국공무원노조는 법내노조 활동을 선언하고 2010년 설립신고서를 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보완을 요구한 끝에 설립신고서를 반려했다. 공무원노조는 지금까지 법외노조로 남아 있다.

노동부는 조씨를 비롯한 해고자를 조합원으로 받아들인 노조규약을 문제 삼았다. “근로자가 아닌 자의 노조가입을 허용했기 때문에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과 공무원노조법에 위배된다”는 이유였다.

노동부의 이런 행위 역시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노조에 가입하고, 규약을 만들 수 있도록 한 ILO 87호 협약과 상충한다. 조창형씨는 “ILO는 모든 공무원들이 노조활동을 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는데, 우리는 그렇지 않은 법을 바꾸기 위해 파업을 했다”며 “그런데 파업을 이유로 해고를 당했고, 나와 동료들이 해고자라는 이유로 우리 노조가 법외노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답답해했다.

가장 기본적인 국제노동기준 ‘ILO 핵심협약’

ILO는 1998년 ‘노동에 있어서 기본적인 원칙과 권리에 관한 선언’을 채택하면서 모든 회원국이 존중하고 실현해야 할 8개 핵심협약을 선정했다. 회원국이 비준하지 않더라도 성실하게 실현할 의무가 있다는 뜻이다.

이 중 우리나라가 비준한 협약은 △취업의 최저연령에 관한 협약(138호) △가혹한 형태의 아동노동 철폐에 관한 협약(182호) △동일가치 노동에 대한 남녀노동자의 동등보수에 관한 협약(100호) △고용 및 직업에 있어 차별대우에 관한 협약(111호)이다.

반면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87호)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원칙 적용에 관한 협약(98호) △강제노동에 관한 협약(29호) △강제노동 폐지에 관한 협약(105호)은 비준하지 않았다.

ILO는 핵심협약 중에서도 결사의 자유와 관련한 87호 협약을 가장 중요시한다. “개별적·집단적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도구로, 회원국이 제공해야 하는 모든 다른 협약에 대한 전제조건”으로 본다. 국제노동기준에서도 기본 중 기본이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87호 협약을 포함해 4개 협약을 비준하지 않고 있다. 공무원 해고자 조창형씨와 전국공무원노조 사례만 봐도 87호 협약에 어긋나는 우리나라 법·제도가 노동기본권을 얼마나 가로막고 있는지 보여 준다.

공무원노조뿐만이 아니다. 2013년 법외노조가 된 전교조, 여러 차례 반려 끝에 겨우 설립신고증을 받은 청년유니온 사례도 있다.

105호 협약은 정치적 입장 발표나 노조파업을 막기 위한 강제노동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파업을 형법상 업무방해죄로 처벌하는 우리나라가 반드시 비준해야 할 협약으로 꼽힌다.

29호 협약은 모든 형태의 강제노동을 금지한다. 29호 협약에 위배되는 대표적인 법률은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 이동을 제한하는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외국인고용법)이다. 최근 이주노동자들의 잇단 사망으로 사업장 이동제한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비준 못한다”던 정부 1년 만에 분위기 반전
노동전문가들 “제도개선 앞서 비준부터 해야”


ILO는 98년 8개 핵심협약을 정한 뒤 미비준 국가에 '비준 전망'과 '미비준 이유'를 연례보고서로 받고 있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 8월 연례보고서에서 87호·98호 협약과 관련해 “공무원 단결권과 관련한 국내 법조항이 ILO 협약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아 당분간 비준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29호와 105호 협약에 대해서는 “의무 군복무제도와 남북 간 대치상황으로 비준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ILO 가입 25주년을 맞아 핵심협약 비준 요구가 높은 상황이었는데도 비준불가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정부 분위기가 크게 바뀌었다. 문재인 정부는 4개 핵심협약 비준을 국정과제에 포함시켰다. “국내 제도를 먼저 바꾼 뒤 비준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던 노동부는 “비준과 제도개선을 병행해야 한다”는 쪽으로 돌아섰다.

정부와 정치권이 강한 의지를 보여야 한다는 주문이 적지 않다. 윤효원 인더스트리올 컨설턴트는 “지금 상황에서 법을 먼저 바꾸고 난 뒤 비준을 하자는 주장은 민주주의를 하지 말자는 말과 같다”고 말했다.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여러 조건을 따지지 말고 비준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며 “비준한 뒤 협약과 법·제도가 충돌하는 문제는 기술적으로 풀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학태 기자

 

"ILO 핵심협약, 대화테이블부터 마련해야"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절차와 관련한 쟁점은 비준과 국내 법·제도 개선 중 무엇이 먼저냐다. 정부는 ILO 핵심협약과 충돌하는 국내법이 많기 때문에 ‘선 제도개선 후 비준’을 주장해 왔다. 반면 노동계는 “정부 의지가 중요하다”며 ‘선 비준 후 제도개선’을 요구했다.

비준을 먼저 하든, 법 개정을 먼저 하든 핵심협약에 맞춰 내용을 바꿔야 하는 국내법은 광범위하다. ILO 87호·98호 협약과 관련한 법률은 노조법과 공무원노조법·교원노조법이다. 근로자나 공무원·교원이 아닌 자의 노조가입을 금지하는 조항과 정부가 노조설립신고를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하도록 한 조항을 개선해야 한다.

이 밖에 △노조 임원 임기와 자격 규정 △노조 규약과 노사 단체협약에 대한 행정관청의 시정명령권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합법파업의 범위 조항을 포함해 노조법은 전면개편 수준의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불법파업을 업무방해죄로 처벌하는 형법 조항도 개정해야 한다.

강제노동 관련 협약은 국가공무원법·지방공무원법에서 시작해 남북이 대치하는 한국 사회에서 민감한 법들이 줄줄이 연관돼 있다. 국가보안법·병역법·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까지 손봐야한다. 김근주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비준과 제도개선 우선 순위를 따지기에 앞서 (ILO 핵심협약 비준 안건을) 최대한 빨리 노사정 대화테이블에 올려야 한다”며 “정부가 현실론을 거론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논의를 빨리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핵심협약 비준과 관련해 또 다른 쟁점은 국회 동의가 필요한지 여부다. ILO나 국내법을 살펴보면 반드시 국회 동의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대통령이 비준서에 서명한 뒤 ILO 사무총장에게 보내면 효력이 발생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비준한 ILO 협약을 보면 제각각이다. 국회 동의를 받은 적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윤효원 인더스트리올 컨설턴트는 “국회가 동의를 흔쾌히 해 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대통령이 먼저 비준을 하고 국민과 노동계가 국회를 압박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학태 기자

ILO 핵심협약 비준 미룬다?
국제 망신에 국제사법재판소 회부될 수도

한국 정부는 1998년 국제노동기구(ILO) 고위급대표단에 핵심협약 비준을 약속했지만 지금까지 지키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 또는 국회가 핵심협약 비준을 계속 미루면 ILO는 어떤 제재를 가할 수 있을까.

ILO는 회원국가에 벌금을 부과하는 방식은 취하지 않는다. 그런데 결사의 자유 사안과 관련해서는 감시·감독체계가 갖춰져 있다.

결사의 자유위원회는 회원국가가 협약을 비준했는지와 무관하게 협약 원칙에 어긋나는 행위를 제재한다. 국가의 노사 어느 한쪽이 제소를 할 수 있고, 결사의 자유위는 이를 검토한 뒤 해당 국가 정부에 권고안을 내고 실행을 요구한다.

한국 정부는 ILO에 가입한 뒤 결사의 자유위에 10여 차례 제소당했다. 결사의 자유위 권고를 무시하는 경우에는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하는 방법이 있다. 국제사법재판소 결정마저 이행하지 않으면 ILO가 무역제재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최근에는 국제기구들이 자유무역협정(FTA)과 ILO 협약 비준을 연계하는 사례가 많다. 예컨대 한-EU FTA 협정문은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과 그 외 협약들을 비준하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협약을 비준한 국가가 국내 법·제도 개선을 포함해 협약을 이행하지 않으면 ILO 총회 기준적용위원회 안건에 회부한 뒤 권고안을 낸다. 한국 정부는 98년 비준한 고용 및 직업에 있어 차별대우에 관한 협약(111호) 이행문제로 세 차례나 권고를 받았다.

김학태 기자



 

김학태  tae@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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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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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준협약 2017-08-22 23:13:50

    깊은 취재를 하셨네요. ILO 비준을 이야기하지만 그 내용의 깊이를 충분히 알수있는 내용입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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