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보면서 필자는 대통령의 답변보다 기자들의 질문을 더 신경 써 들었다. 4년 넘게 연출된 회견장에 병풍 역할만 했던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열린 공간을 얼마나 활용하는지 보고 싶었지만 실망이었다.

모두 15개의 질문이 나왔지만 모두가 예상 가능한 질문이었다. 북핵·코드인사·공영방송·적폐청산·지방분권·소득주도성장론·퍼주기 복지·한일관계·지역공약·한미 자유무역협정(FTA)·탈원전을 소재로 한 질문은 한결같이 두리뭉술했다.

지독하게도 질문을 받기 싫어하던 전직 대통령이 촛불정국 때 준비된 원고를 읽고 나서 기자들 앞으로 다가서자 흠칫 놀라던 기자들이 하루아침에 변할 수는 없다. 대통령 기자회견 연출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전 대통령들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 그랬다. 중앙지·방송·지역지·뉴스 에이전시·인터넷 언론·외신 순으로 적당히 구색을 맞췄고, 질문 주제를 다 정해 놓고 하는 것이었으니.

기자 입에서 “대통령님, 떨리지 않으십니까?”라는 말보다 그 다음에 이어진 “저는 이런 기회가 많지 않아 지금도 떨리고 있는데”라는 애드리브가 더 황당했다. 기자는 ‘질문하는 사람’이라는 명제는 한국에서 겨우 걸음마를 떼기 시작했다. 트럼프에게 좌파언론이라는 말도 안 되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굽히지 않고 손을 들어 질문하는 CNN 기자들 정도만 됐으면 좋겠다.

살충제 달걀을 놓고 여러 매체가 기사를 쏟아 내고 있다. 살충제가 나온 7곳 농장 중 6곳이 친환경 농산물 인증을 받은 곳이라서 국민 분노는 더하다.

이 지경이 된 원인을 분석하면서 조선일보(17일자 3면)는 농림축산식품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엇박자’에 초점을 맞췄다. 달걀 생산단계는 농식품부가, 유통과 소비단계는 식약처가 관할하는 이중구조 때문에 통합 컨트롤타워가 없어서 이 지경이 됐다는 거다.

같은날 조선일보는 사회면(10면) 톱기사로 ‘정부 인증마크의 배신’에 집중했다. <가습기 살균제서 계란까지 … 정부 인증마크의 배신>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이 기사는 핵심을 짚어 나가는 듯하다가 갑자기 “검증 안 된 정보가 난무해 문제를 더 증폭시키고 있다”며 온라인에서 떠도는 살충제 해독 사례들의 문제점을 소개했다. 돌나물과 미나리가 좋다거나 베이킹소다로 달걀을 닦으면 해독된다는 검증 안 된 정보들의 문제를 지적했다.

중앙일보는 같은날 2면에 <64개 민간업체서 ‘친환경 인증’ 전담 … 매년 수천건 부실 적발>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이번 사태를 낳은 원인에 접근했다. 정부가 친환경 인증업무를 민간위탁하면서 이런 문제가 발생했다는 거다. 친환경 인증업무는 1999년 제도를 시작할 때 농림부 산하 국립농산물관리원이 전담했지만 정부가 2002년부터 민간업체에 조금씩 위임해 올해 6월부터는 64개 민간업체에 인증업무가 100% 넘어갔다. 인증 수수료로 먹고사는 민간업체는 문제가 있어도 인증을 남발할 수밖에 없다.

조선일보는 이날 중앙일보와 같은 내용을 취재하고도 제목을 ‘정부 인증마크의 배신’이라고 모호하게 달았다. 달걀 파동은 공공부문 업무를 마구 민간위탁하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잘 보여 준다. 결국 공공부문 민영화로 국민과 선량한 달걀생산 농가가 피해를 뒤집어쓴 셈이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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