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자동차 노동자 2만8천여명이 제기한 통상임금 차액 반환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둔 가운데 노동계와 재계의 기싸움이 팽팽하다. 재계는 기아차 소송에서 패소하면 생산거점을 해외로 옮기겠다며 재판부를 압박하고 있다. 노동계는 “당연히 지급해야 할 노동의 대가를 가지고 국민과 사법부를 협박한다”고 반발했다.

자동차산업협회 “해외로 생산거점 옮길 것”

국내 5개 완성차업체로 구성된 한국자동차산업협회는 10일 성명에서 “기아차가 통상임금 소송에서 져 인건비 부담 3조원을 질 경우 회사 경쟁력에 치명타를 입게 될 것”이라며 “기업은 국내생산을 줄이고 인건비 부담이 적은 해외로 생산거점을 옮기는 방안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이날 현대차·기아차·삼성중공업·현대중공업 등 통상임금 소송을 하고 있는 35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원은 이들 기업이 소송에서 지면 8조3천673억원의 추가비용이 발생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기아차 노동자 2만8천여명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야 한다”며 2011년 제기한 통상임금 차액 반환소송은 17일 서울중앙지법 1심 판결이 예정됐다가 31일로 연기됐다. 역대 통상임금 소송 중 소송 참가자 규모로는 최대다.

노동자가 승소하면 회사측이 지급해야 할 금액이 역대 최고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노사정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노동자들의 소송 청구액은 7천억원이지만 2012~2014년 체불임금까지 요구하는 13명이 제기한 대표소송 결과까지 감안하면 추가비용이 3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게 기아차 사측 분석이다. 재계가 유리한 판결을 이끌어 내려고 사법부를 노골적으로 압박하는 배경이다.

정기상여금 통상임금 인정받을 듯
쟁점은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 여부


재계가 기아차 소송에 긴장하는 것은 현대차·현대중공업 같은 다른 기업 통상임금 판결보다 노동자들의 승소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1·2심에서 노동자들이 사실상 패소한 같은 계열사 현대차의 경우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2013년 12월 통상임금 산입범위 관련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르면 재직자들에게만 지급하거나 일정 기간 이상 근무한 직원에게만 주는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 통상임금 인정요건 중 업적이나 성과, 기타 추가적인 조건과 관계없이 사전에 확정돼야 하는 ‘고정성’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이유다.

현대차 상여금 지급 시행세칙에는 “두 달 동안 15일 미만을 근무한 자에게는 상여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규정이 있다. 반면 기아자동차는 정기상여금 지급조건에 이런 규정이 없다.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으로 인정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남은 쟁점은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통상임금 범위 확대로 사용자가 임금을 추가로 지급할 때 신의칙을 위반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에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명시·묵시적 합의가 있고, 통상임금 범위 확대로 사용자가 임금을 추가로 지급했을 때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이 있거나 기업 존립이 위태로우면 신의칙 위반에 해당한다.

기아차 사측은 '신의칙 위반'을 기대하는 눈치다. 올해 2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6% 감소하고,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이 각각 47.6%와 52.8% 줄어든다고 주장하면서 "소송에서 지면 적자기업이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기아차가 조선업 불황과 누적된 수주감소를 이유로 노동자들이 패소한 현대중공업 같은 기업과 비교대상이 될 수 없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금속노조 “국민과 사법부 협박하나”

금속노조는 이날 논평을 내고 “통상임금 범위 확대에 따른 차액은 현대차그룹이 노동자들에게 당연히 지급해야 할 노동의 대가인데도 자동차산업협회가 국민과 사법부를 협박하고 있다”며 “기업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고 체불임금으로 일자리 창출기금을 조성하는 대화테이블에 앉기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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