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애림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해고는 살인이다!”

2009년인가 금속노조 집회에서 이 구호를 처음 들었을 때 너무 섬뜩하다고 느꼈던 기억이 있다. 그렇지만 이후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정리해고 반대투쟁이 처절하게 짓밟히고 해고당한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잇따라 목숨을 잃는 것을 보면서 현실이 구호보다 섬뜩하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해고는 일차적으론 생계에 위기가 닥친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대부분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수년간 혹은 수십 년간 일했던 일터에서 잘리게 되면, 자신의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듯한 트라우마를 겪게 된다. 오랜 시간 복직투쟁을 했던 노동자들이 트라우마로 병을 얻어 허무하게 요절하는 경우도 여럿 봤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이 잔인한 ‘해고’라는 이름조차 인정되지 않는 노동자들이 있다. 통계청 통계로도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차지하는 비정규 노동자 대부분은 일터에서 잘려도 ‘해고’로 인정받지 못한다. 기간을 정한 근로계약을 맺은 경우 법원은 “근로계약기간을 정한 경우 근로관계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기간이 만료하면 사용자의 해고 등 별도의 조치가 필요 없이 당연히 종료된다”는 견해를 고수해 왔다. 즉 근로계약서에 근로계약 기간이 몇 달이나 1년으로 쓰여져 있는 경우 사용자는 해당 노동자를 재계약하는 방식으로 계속 사용할 수도 있고 계약기간 만료를 이유로 부담 없이 자를 수도 있는 자유를 누린다.

물론 법원도 “단기의 근로계약이 장기간에 걸쳐 반복해 갱신됨으로써 그 정한 기간이 단지 형식에 불과하게 된 경우”나 “근로자에게 소정의 절차에 따라 재계약될 수 있으리라는 정당한 기대권이 인정되는 경우” 같은 예외적 경우에는 사용자의 재계약 거절을 해고로 살피는 사례도 있다. 그러나 이는 정말 예외적 경우다. 사용자는 이러한 예외조차 피하기 위해 2년마다 비정규직을 교체하거나 “계약기간만료시 당연 퇴직한다”는 문구를 근로계약·취업규칙에 명시한다. 노동자에게 사직서 제출을 요구하기도 한다.

또 다른 경우는 용역업체 변경시 용역노동자의 고용승계 거절 사례다. 파견·용역·사내하청 등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소속 용역업체만 바뀔 뿐 동일한 원청 사업장에서 동일한 업무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다 노조가 결성되거나 인건비 삭감 압박이 발생하면 새로 들어온 용역업체가 고용승계를 거절하는 경우가 빈발한다. 이 역시 간접고용 노동자들에게는 해고에 다름 아니지만, 법적으로는 새로운 용역업체가 이전 용역업체 소속 노동자의 고용을 승계할 의무가 인정되지 않는다. 정부가 용역근로자 보호지침 등을 통해 공공부문에서 용역노동자 고용승계를 권장해 왔지만, 강제력을 갖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250만명 이상으로 추산되는 특수고용 노동자 역시 ‘계약해지’를 당할 뿐 ‘해고’로 인정받지 못한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이 문제시되기 때문에 어느 날 갑자기 사용사업주로부터 잘려도 갑과 을 사이의 계약해지일 뿐 노동법상 해고로 다툴 수조차 없다.

근로기준법 23조는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 등을 하지 못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자본에 의해 경직된 규제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 이 해고로부터의 보호규정은, 그러나 4인 이하 사업장 노동자에게도, 900만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도 적용되지 않는다.

해고로부터의 보호는, 노동자가 일터에서 일상적인 모욕과 차별과 비인간적 처우를 감내하지 않고 헌법 32조가 천명한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노동조건을 주장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이 된다. 비정규직 해고를 ‘해고’로 인정하고 보호하는 법·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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