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속도와 방향. 둘 중 무엇이 더 중요할까. 이 물음은 멀리 탈무드에서부터 최근 경영서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흥미를 끈다. 대부분 ‘방향’이 ‘속도’에 우선한다고 결론을 맺는다. 동의한다. 그리고 이런 생각도 해 본다. 옳은 방향이 제대로 된 속도를 만난다면. 제때(적시)를 만난다면. 그 결과는 더 큰 성공이 되지 않을까. 그 어렵다는 양궁 10점 과녁 맞히기도, 세계적으로 우뚝 선 기업의 성공 이야기에서도 이러한 요건들이 맞아떨어졌을 때 나온 결과임을 확인할 수 있다.

정부 정책도 그럴 것이다. 우리 정부가 힘 있게 추진하는 노동정책을 위와 같은 기준에서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번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정책은 그 무엇보다 방향이 좋다. ‘바람직하다’라는 평가가 아깝지 않다. 그 이면에 인간존중·노동존중이 있는 소득주도 성장 기조는 우리나라 역사상 사실상 처음이지 않은가.

속도도 크게 나무랄 수는 없다. 비정규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정부 정책에 대해 너무 성급하다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그동안 묵히고 묵힌 숙제인 터라 너무 나무랄 수 없다. 차별과 불평등을 해소하겠다는, 그야말로 인류보편적인 정의를 세우겠다는 의지 아니겠나. 하루라도 빠르면 빠를수록 좋을 따름이다.

그리고 사족이 아니길 바라며 첨언을 한다면, 노동정책에서 방향과 속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이해관계 당사자의 동의와 자발적인 합의다. 특히 노동은 더욱 그러하다. 관점에 따라서는 우리 사회를 자본주의라 평가하고 ‘자본’과 ‘노동’ ‘노동’과 ‘자본’의 대립과 관계의 연속이라 보지 않던가. 그렇다면 노동자와 사용자가 바로 그 이해당사자가 아닌가.

앞서 확인됐듯이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정책의 이해관계 당사자는 누가 뭐라 하더라도 노동조합과 노동자가 아닌가. 지난 10년, 아니 정부수립 이후 계속된 자본의 노동 우위를 바로잡겠다고 했다. 사람과 노동자를 중심에 두겠다고 하지 않았나.

비유컨대 필자 나름으로는, 정부와 노동자의 관계는 배와 물의 관계라 정의하고 싶다. 노동자 중에도 조직된 노동자의 가치는 값지다. 왜냐하면 흩어진 물이 아니라 배를 띄울 수 있을 만큼의 역량을 가진 우리 사회의 유일한 조직은 바로 노동조합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정부가 노동조합을 옆에 두고 의지해야 방향과 속도를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싶다.

우리 정부가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배를 띄울 수 있는 ‘물’이라 존중한다고 믿었다. 특히 양대 노총은 문재인 후보의 당선을 위해 열과 성을 다했다. 5월1일 노동절에 대통령은 한국노총을 찾아 ‘노동존중’ 정부 출범을 선언하기까지 했다. 그날로부터 100일쯤 되는 오늘까지 양대 노총은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힘을 보태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그런데 요즘은 의심이 든다. 간혹 ‘이럴 수가’ 하는 실망이 들 때도 있다. 방향과 속도에 반대할 수 없는, 정말이지 빼어난 정책이지만 거기에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없기 때문이다.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부터 이달 발표한다는 노동정책 매뉴얼까지. “과연 노동조합이 있었던가” 하는 비판이 심심치 않게 일고 있다.

모든 정책이 그렇지만, 노동정책에 현장노동자들은 매우 민감하다. 정부는 모르지만 노동자와 노동조합이라면 다 아는, 그런 아주 미시적인 부분에 대해서 현장노동자들은 매우 민감하다. 그런데 정부는 그런 디테일을 빼먹기 십상이다. 노동조합과 노동자가 함께했다면 반드시 챙겼을 문제들이다.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이긴 하지만, 정규직으로 전환될 공공기관 소속 비정규 노동자들은 혹시 정년이 60세로 줄어들지나 않을지 걱정한다. 정규직인데 뭔가 문제냐고 반문하지만 그들에게는 70세 정년이 정규직보다 중요하다. 최저임금이 7천530원으로 인상되고 근로시간 특례제도 폐지가 예정된 데 대해서도, 자동차노련 간부는 “지역을 고려했어야 했는데, 우리한테 물어보면 좋았을 것을”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우리 정부는 갈 길이 멀다.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고 하지 않던가. 배를 띄울 수 있는 노동자와 특히 조직된 노동자들과 함께하길. 그래야 끝내 갈 수 있지 않겠나.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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