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그러니까 20일 전인가. 분명히 국회 토론회였다. 국회도서관 4층에서 통상임금 토론회가 있었다. 더불어민주당·정의당 의원 3명이 주최자로 참여한 토론회였다.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도 주최자로 포함돼 현대차·기아차 등 많은 노조간부들이 토론회에 참석했다. 그날 나는 말했다. '통상임금 최근 판결 경향과 입법방향'이라는 주제발표를 하고 토론에서 ‘나쁜 입법’을 말했다. 선고를 앞두고 기아차 통상임금 사건에 관한 뉴스 기사들이 나오고 있다. 청구금액이 얼마라고 회사 경영에 심각하게 영향을 줄 거라는 등 사용자 편향 기사가 대부분이다. 청구금액을 가지고 선정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 이 나라 노동자들의 통상임금에 관한 주장과 투쟁에 관한 뉴스는 쏟아지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도 많은 노동공약을 발표하고 당선된 문재인 정부가 위 통상임금 토론회가 있던 날인 7월19일 청와대에서 발표한 국정과제 이행목록에 통상임금 문제는 보이지 않았다. 어디 통상임금뿐이겠는가. 노동자 권리를 위해 포함돼야 할 사항들이 보이지 않았다. 뭐 그 목록에 포함되지 않은 것이 관심이 낮은 것일 뿐이지 하지 않겠다는 취지는 아닐 거라고 낙관한 채 우리 노동자, 노동운동조차 이에 무관심할 수는 없는 일이다. 특히 노동자권리 입법추진에 관해서는 더욱 그렇다. 무엇이 좋은 입법이고 나쁜 입법인지 살펴봐야 한다.

2. 법을 만드는 게 제일인 국회는 수많은 법률을 제정하고 개정한다. 노동법도 마찬가지다. 20대 국회에 많은 노동법안이 발의돼 있다. 특히 촛불대선으로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과 집권 더불어민주당은 일자리 만들기와 노동존중 사회를 위한 노동공약 이행을 위해 여러 노동법안을 제출해 입법을 추진할 것이다. 이 세상에서 사람의 권리와 의무는 권력과 계약에서 나온다. 국가 권력관계와 사적 자치관계에서 형성되는 권리와 의무로 사람은 살아간다는 것이다. 법은 그것을 선언하고 있다. 노동자 권리와 의무도 그렇다. 이 세상을 초월한 꿈을 그리지 않는 한, 노동자의 꿈은 법을 떠나서 그려지지 않는다. 아무리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권력이 노동의 차지가 아니라도, 권력엔 무심할 수 있어도, 법에는 무심할 수가 없다. 이 나라 노동자들이 노동의 당 의원이 한 명도 없는 상태에서도 노동법 투쟁을 전개했었다는 것이 그걸 말해 준다. 1996년 말에서 97년 초에 총파업 등으로 거세게 타올랐던 '노개투'가 대표적인 사례다. 자신의 권리에 무심할 수 없으니 노동자는 국회 입법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노동자 권리에 무심해서는 안 되는 것이니 노동운동은 이제 문재인 정부의 입법추진을 눈을 부릅뜨고 살펴야 하는 것이다.

3. 7월19일 국회 토론회 발제를 위해 20대 국회에서 발의한 통상임금 법안을 찾아봤다. 의원 122명이 발의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대표적인 법안이었다. 여야 의원들이 망라돼 발의한 것이었다. 법안은 2015년 9월15일 노사정위원회 합의문에서 통상임금 부분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당시 합의는 한국노총까지 참여해 '노사정 합의' 형식을 갖춘 것이었다. 이러한 합의가 있자 바로 박근혜 정권은 이에 따라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밀어붙였다. 그리고 그것은 당시 19대 국회에서 노동법안으로 발의됐다. 그러다 19대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됐다가 위와 같이 20대 국회에서 그대로 다시 발의된 것이었다.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선고된 2013년 12월18일 이후 지금도 많은 사업장 노동자들은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취급받고 있다. 중간퇴직자에게 지급하지 않는 재직자 조건의 상여금이, 일정 근무일수 충족 조건의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사용자가 취급해 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직후인 2014년 1월23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통상임금 노사지도 지침'이 재직자 조건 등이 있는 경우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사업장마다 사용자들이 이런 조건을 추가한다고 노동현장은 혼란했다. 그런데 국회에 발의된 대표적인 법안은 근로기준법 시행령에 규정한 '통상임금의 정의'를 사실상 그대로 근로기준법에 가져다 놓고는, 대통령령으로 통상임금에서 제외되는 것을 정하도록 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었다. 대통령령인 시행령에 규정한 것을 법률에 가져다 규정하는 입법이 의미 있는 것이기 위해서는 시행령 규정이 제대로 된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오랜 기간 대법원 판례가 수많은 임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면서 사용해 왔던 소정근로·총근로·정기적·일률적, 그리고 고정적 등의 개념은 바로 근로기준법 시행령 정의규정에 명시돼 있거나 그 규정 해석과 무관하지 않은 거였다. 근로기준법이 통상임금을 시행령에 위임하고 있지 않은 만큼 시행령에서 이런 개념을 사용해 제한하는 것은 위법·무효라고 볼 수 있는데, 이를 법률인 근로기준법에서 규정하게 되면 이제 적법·유효라고 법적 정합성만 부여하는 것이 된다. 그렇게 되면 근로기준법 시행령에 규정하고 있는 통상임금 정의에 이 나라 노동자의 임금권리는 갇히고 마는 것이다. 재직자 조건이나 일정 근무일수 충족 조건 등 어느 하나도 노동자 권리를 위한 것으로 통상임금을 해결하지 못한 채 지금까지 제한해 온 노동자 권리에 대못을 박는 것이다. 대표 법안 외에도 더불어민주당 이용득 의원 등이 발의한 법안도 시행령 규정을 법률로 가져오는 것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 더구나 대표 법안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대통령령에 제외금품을 정하도록 위임하고 있다. 현재 근로기준법과 근로기준법 시행령은 정의규정 외에 별도로 통상임금에서 제외되는 임금(금품)을 정하고 있지 않은데, 만약 법안대로 입법된다면 어찌 되는가. 현재 법령보다 제한되는 법령이 아니라고 아무도 감히 말하지 못할 것이다.

4. 아마도 지금보다는 나쁘지 않을 거라 알고 합의하고, 발의한 것일 게다. 나는 선의라고 믿고 싶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으니 합의하고 입법하자고 했을 것이다.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했으니 그걸 반영한 입법을 하기로 합의하고 발의했을 게다. 법원 판례 수준을 입법하자고 했을 테고, 일부는 판례보다 나은 수준이라 여기고 했을 것이다. 나쁘다. 이 나라에서, 특히 노동법에서 빈번하게 판례입법이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취업규칙 불이익변경과 정리해고에 관한 근로기준법 개정이었다. 법이 명확하지 않아 법원이 판례로 해석한 것을 법으로 정리하고자 하는 것이 판례입법이다. 법을 해석해 구체적인 사건을 판단한 것이 법원 판결이다. 즉 판례는 이미 존재하는 법의 해석인 것이다. 이미 판례와 같이 해석되는 법이 있는 것인데, 굳이 판례에 따라 국회가 법을 새롭게 만든다는 것이니 쓸데없는 짓을 하는 것이고, 그 판례가 노동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면 못질을 하는 짓일 테니 나쁘다.

5. 물론 판례입법도 문제지만, 오늘 이 나라에서 추진되는 노동법안 중에는 기존 법령상 노동자 권리보다 못하게 개악되는 것이 있다.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위에서 언급한 통상임금에 관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그렇다. 시행령 규정을 법률로 가져오는 것 말고도 제외임금(금품)을 대통령령에서 정하도록 위임까지 하고 있다는데, 이것을 두고 나는 심각하게 나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오늘 문재인 정부에서 일자리 만들기 공약 이행과제의 하나인 노동시간단축 법안도 문제가 만만치 않다. 대선에서 주 52시간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하겠다고 공약했다. 현 68시간을 52시간으로 법정근로시간을 단축하겠다고 이에 관한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노동부 행정해석을 바꾸겠다고 말하기도 하고, 아예 법을 바꾸겠다고 하기도 해서 도무지 어떤 방법으로 한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지만, 52시간을 최장 근로시간으로 하겠다는 건 분명하다. 그런데 그건 기껏해야 52시간 노동제일 뿐이다. 주 40시간을 법정근로시간으로 하는 노동제가 근로기준법에 규정돼 있는데 주 52시간 노동제라니 그건 주 40시간 노동제를 폐기하는 짓이다. 법이 선언한 노동제를 12시간 연장하겠다는 것이니 법정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연장하는 것이라서 노동제에 관한 무지를 선언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6. 이상과 같이 통상임금이나 노동시간단축 등도 역시 심각하게 나쁜 입법인데, 이처럼 우리의 경우 노동자 권리에 관한 법은 나쁘거나 심각하게 나쁜 것으로 입법이 추진되고 있다. 그런데 더 나쁜 것이 있다. 이런 입법 추진에 노동자와 노동운동은 나쁜 입법이라고 적극 분노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노동자 권리를 주장하고 투쟁해야 하는 노동운동으로 보자면 말이다. 스스로 심각하게 나쁘지 않기 위해서라도 노동자 권리를 위한 입법 추진이 아닌 것을 말하고, 노동자 권리를 저해하는 것에 맞서 나쁘다고 외쳐야 노동운동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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