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폭우 속에서 수해복구 작업을 하던 무기계약직 노동자가 사망했는데 신분 탓에 순직을 인정받지 못했다. 이와 관련해 "공무수행 중 사망하면 신분에 관계없이 순직으로 처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공무원이 공무를 하다 숨지면 공무원연금법에 따라 순직으로 인정받는다. 반면 비공무원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업무상재해로 처리된다.

인권위도 '비공무원 순직 인정' 요구

공공연맹은 7일 “죽음마저 차별받는 무기계약직 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고 법·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며 “인사혁신처는 고 박종철 도로보수원의 순직을 인정하라”고 요구했다.

지난달 16일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던 청주에서 14시간 동안 도로정비작업을 하던 무기계약직 노동자 박종철씨가 쓰러져 목숨을 잃었다. 고인은 16년간 충북도청 도로관리사업소에서 일했다. 하지만 순직을 인정받지 못했다. 공무원연금법상 공무원이 아니라는 이유였다.

같은달 20일 국가인권위원회는 고인의 순직 인정을 권고했다. 인권위는 “국가는 공무 중 사망한 자가 공무원 신분인지 여부와 관계없이 고용주로서 피고용인의 재해보상을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다”며 “정부는 공무 중 사망한 비공무원의 순직 인정과 관련한 법과 제도를 개선하라”고 밝혔다. 공무원과 비공무원이 동일한 상황에서 숨졌는데도 각기 다른 법률을 적용해 처리하는 것은 국가인권위원회법과 헌법이 보장한 평등권 위반 차별행위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인권위는 “국가에 고용돼 공무를 수행하는 비공무원의 규모가 점차 커지고 있다”며 “비공무원이 공무수행 과정에서 사망할 경우 유사 논란이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지방정부 일자리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지방자치단체 인력의 20%가 공무원이 아닌 민간인 신분이다.

공공연맹 '순직제도 개선요청서' 청와대 발송

국토교통부 통계에 따르면 2010~2014년 교통사고로 사망한 도로보수원은 12명이다. 매년 두세 명이 목숨을 잃었다. 최석문 국토교통부국토관리원노조 위원장은 “공무원과 똑같이 근무명령을 받아 같은 업무를 하고 있는데 사망사고가 나면 무기계약직인 도로보수원은 순직인정은커녕 교통사고로 처리된다”며 “공무를 수행하다 사망하면 그에 걸맞은 예우를 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비공무원의 순직 인정 논란은 처음이 아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단원고 기간제 교사 2명은 공무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순직을 인정받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5월 기간제 교사 2명에 대한 순직 인정을 지시하고 “공무를 수행하다 사망한 공직자의 경우 정규직·비정규직 등 신분에 관계없이 순직으로 처리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공공연맹은 “인사혁신처는 대통령 지시에도 세월호 기간제 교사만 순직으로 인정했을 뿐 그 외 어떠한 제도개선도 추진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공무원연금법상 보상 청구가 안 되지만 제도개선은 논의하고 있다”며 “순직 인정에 따른 명예도 중요하지만 산재보험법상 유족보상 수준이 높기 때문에 강제적으로 적용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공무원연금법상 순직유족연금은 기준소득월액의 26~32.5%다. 산업재해보상 유족급여는 평균임금의 52~67%다.

연맹 관계자는 “순직이 경제적 보상 이상의 명예로서 가치가 있다”며 “신분상 차이를 이유로 죽음도 차별받는 상황은 국민 정서에 반한다”고 비판했다. 연맹은 이날 청와대에 순직제도 개선요청서를 발송했다. 공무원연금법과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국가유공자법)을 개정해 공무 중 사망한 비공무원의 순직과 예우를 보장하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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