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영 기자
이은영 기자

“다른 사람들은 주 40시간 일한다는데 저는 3일 동안 45시간 일했어요. 어제 같이 일하는 동생에게 ‘형이 내일 국회의원 만난다’고 하니까 그러대요. ‘그런다고 뭐가 바뀌겠어요’라고….”

공항 지상조업 노동자들의 장시간·중노동 현실을 전하던 박민재씨의 목소리가 떨렸다. 항공기 지상조업업체 ㈜샤프에비에이션케이에서 일하는 박씨는 이내 흐느끼기 시작했다. “제발 반짝 일회성으로 찾지 말고, 지속적인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박씨의 말에 덩치 큰 노동자가 책상에 머리를 박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비행기 그림자 외에 그늘을 찾기 힘든 공항 활주로에서 일해서인지 얼굴이 까맸다. 맞은편에서 이야기를 듣던 이정미 정의당 대표의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서울 한낮 기온이 35.2도까지 치솟은 지난 4일 이 대표가 인천공항을 방문했다. 공항 지상조업 노동자 장시간 노동실태를 점검하기 위해 샤프에비에이션케이 노동자들을 만났다. 샤프에비에이션케이 노동자들은 활주로에서 항공기 유도·수화물 처리·기내청소·캐터링·항공기 정비와 급유 같은 지상조업을 한다.

“일하다 쓰러져도 다시 일해야”


샤프에비에이션케이와 기업노조인 우리들의샤프케이노조가 지난달 26일 합의한 ‘연장근로에 관한 특례 합의서’에 따르면 제주공항 지상조업 노동자의 월 연장근로 한도는 170시간이다. 연장근로를 가장 낮게 제한했다는 김해공항도 93시간이다. 김해공항과 인천공항을 제외한 제주·김포·청주·군산·대구공항의 지상조업 연장근로 한도는 모두 100시간이 넘는다.

수화물 처리업무를 하는 조현씨는 지난달 연장근로만 120시간을 했다. 2013년 샤프에비에이션케이에 입사했다가 퇴사 후 지난해 재입사한 그는 “연차를 사용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조씨는 “10명이 해야 할 일을 8명이 하는 상황에서 한 명이라도 빠지면 남은 동료들이 너무 힘들어진다”며 “허리가 아픈 동료가 있지만 쉽게 병가를 못 내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비행기 한 대가 공항에 도착할 때마다 조씨가 처리해야 하는 수화물은 150~160개다. 작업을 시작하자마자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된다.

노동자들은 “월요일에 출근해 수요일에 퇴근하는 2박3일 근무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공운수노조 샤프항공지부(지부장 김진영)에 따르면 인천공항 근무조는 첫날 오후 1시에 출근해 밤 10시까지 9시간을 일한 뒤 공항 내 컨테이너에서 잠시 눈을 붙인 다음 이튿날 오전 6시에 다시 출근한다. 밤 10시까지 일한 노동자들은 다음날 새벽 6시부터 밤 10시까지 근무한다. 3일간 41시간 일하는 스케줄이다. 지부 관계자는 “2박3일 근무 스케줄에 추가 연장근무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개인시간이 없는 것은 물론 잠자는 시간조차 부족한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공항 지상조업 노동자의 한 달 평균 노동시간은 292.8시간이다. 연간 노동시간으로 환산하면 3천513시간. 2015년 전국 노동자 평균 노동시간 2천228시간을 1천300시간 가까이 웃돈다. "족쇄를 찬 것이나 다름없이 착취를 당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제주공항에서 일하는 A씨는 “이틀 전 동료가 땡볕에서 일하다 쓰러졌다”며 “인원이 없다 보니 잠깐 쉬고 현장에 나와 밤늦게까지 일했다”고 전했다.

고용창출 우수기업 이면에 '노동자 쥐어짜기'

하루 최대 17시간 노동이 이어지다 보니 이를 버티지 못하고 현장을 떠나는 노동자가 부지기수다. 김진영 지부장은 “항공정비 업무의 경우 신입 직원이 현장에 투입돼도 오래 버티면 일주일”이라며 “업무가 고되고 임금이 적다 보니 회사를 그만두는 직원이 많다”고 설명했다.

김 지부장은 “샤프가 고용창출 우수기업으로 뽑힌 이유는 고용을 많이 창출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그만두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샤프에비에이션케이는 2012년과 2013년 고용노동부 선정 ‘고용창출 100대 우수기업’에 뽑혀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뽑으면 나가고, 다시 뽑으면 또 나가는 구조가 대통령표창을 받은 비결이다.

지부는 노동자들을 쥐어짜는 장시간·중노동을 가능하게 한 주범으로 근로기준법 59조 근로시간 특례조항을 꼽았다. 공항 지상조업은 표준산업분류표상 운송업에 포함돼 연장근로 특례를 적용받는다. 지난달 3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여야는 노선버스운송여객사업을 근로시간 특례업종에서 제외하고 법령상 26개 근로시간 특례업종을 10개 이하로 축소하기로 합의했다. 지금까지 논의대로라면 항공운송업은 특례업종에 남게 된다.

지부 관계자는 “샤프항공은 특례조항이 어떻게 악용될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 주는 현장”이라며 “노동자들의 인권과 건강을 해치는 부적절한 수단으로 활용되는 특례조항을 폐기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정미 대표는 “연장근로를 포함해 최대 주 52시간만 일해도 먹고살 만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며 “근기법 59조 폐기를 위해 국회의원들을 설득하고, 장시간 노동에 따른 공항 지상조업 노동자 문제를 국정감사에서 심도 있게 다루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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