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경남경마공원(렛츠런파크 부산경남)에서 두 달 사이 두 명의 마필관리사가 세상을 등졌다. 경주마를 관리하는 마필관리사는 산업재해를 자주 당하는 업종이다. 말에 차이고, 밟히는 일이 허다하다. 말 못하는 짐승이야 몸에만 상처를 내지만 사람에게 차이고 밟히면 마음에 병을 얻고 만다. 마사회를 비난하는 유서를 남긴 고 박경근씨, 극심한 스트레스로 원형탈모까지 겪었다는 고 이현준씨가 그랬다. 반복되는 마필관리사 죽음, 막을 방법은 없을까.


죽음의 마사회,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국회 환노위)

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국회 환노위)

국회의원으로서 국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어디까지일까. 지난 2일 고 이현준 마필관리사의 죽음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면서 든 생각이다. 오열하는 유족들의 절규를 듣는 내내 좌절감과 국회의원으로서의 역할에 대한 탄식이 스스로 새어 나왔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고 시급한 민생문제의 불을 끄겠다고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민생119팀을 꾸려 대응했다. 마필관리사들이 처한 환경이 너무나 열악했다. 민생119팀의 주요 의제로 삼아 부산경남경마장 현장조사를 했다. 고용노동부도 근로감독을 실시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마사회를 수차례 압박했지만 노력이 부족했나 보다.

고 박경근 마필관리사의 희생으로 어렵게 만들어 낸 지난달 30일까지의 협의에 마사회는 끝까지 불성실하고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했다. '마사회-마주-조교사-마필관리사'로 이어지는 다단계 착취구조가 문제 근원임에도 장막 뒤에 숨으려는 마사회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국민을 대상으로 한 사행사업을 통해 연 8조원을 버는 마사회가, 정작 말을 관리하는 마필관리사들은 죽음으로 내몰면서, 누구의 배를 불리고 있는지 철저히 조사할 것이다.

우선적으로 논의되고 있었던 ‘마필관리사 직접고용 구조개선 협의체’를 작동시켜 고용·임금·복리후생·노조활동 보장·해고자 복직·위로금 등 우선 조치사항을 진전시켜야 한다. 지금까지 여러 주체들의 지난한 노력이 뒷걸음쳐서는 안 된다. 민생119팀·을지로위원회 등 더불어민주당은 모든 힘을 모아 마필관리사 고용구조를 개선하고 마사회를 개혁해 낼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고용구조 그대로 두면 죽음의 레이스 계속된다
석병수 박경근열사대책위원회 위원장

석병수 박경근열사대책위원회 위원장

한국마사회 고용구조 자체에 상당히 심각한 문제가 있다. 마사회가 늘 얘기하는 선진 경마시스템은 미국과 호주처럼 국가가 아닌 민간기업이 경마시행처 역할을 한다. 한국은 국가(공기업)가 운영하는 체제임에도 다른 나라의 민간기업들이 하는 방식대로 운영하려고 한다.

마필관리사 사용자는 조교사지만 실질 업무지시는 마사회에서 받는다. 마필관리사들은 성과급 비중이 높아 임금이 매번 들쑥날쑥한다. 고용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죽음의 레이스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경쟁 속에서 스트레스와 우울증이 발생한다. 이 구조를 마필관리사들이 깰 수 없기 때문에 우울증이 더욱 심해진다.

박경근 열사가 돌아가시고도 마사회는 책임이 하나도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마사회에 귀책사유가 없기 때문에 보상이나 제도개선을 하나도 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재 마사회 경영진은 잘못된 구조를 만든 사람들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고 나서 마사회장만 바뀌었지 국정농단에 직접적으로 개입한 사람들은 여전히 마사회 핵심 수뇌부 위치에 있다. 이 사람들이 그대로 있는 한 개선 여지가 없다. 정부가 직접 나서서 마사회 내부 적폐 인사부터 청산해야 한다.


산재·고용불안으로 죽음에 내몰린 마필관리사
신동원 전국경마장마필관리사노조 위원장

신동원 전국경마장마필관리사노조 위원장

서울(과천) 경마장의 경주마를 훈련하고 관리하는 마필관리사는 한국마사회 직원이었다. 1993년 개인마주제로 전환되면서 서울경마장조교사협회 소속으로 신분이 전환됐고, 부산경남·제주경마장은 개장 때부터 조교사(개인사업자)가 마필관리사들을 고용했다. 마필관리사 산업재해율은 전국 평균의 25배를 웃돌지만 사고 건수는 좀처럼 줄지 않는다. 고용주인 조교사협회나 개별 조교사가 산재문제 해결을 위한 권한이나 예산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마필관리사들은 과도한 연장·휴일근무를 하고 부당한 업무지시를 감내한 채 열악한 처우 속에서 일하며 산재사고 후에도 충분히 치료받지 못한 채 복귀해 일을 해야만 했다. 문제해결의 실질적 권한을 가지고 있는 마사회는 개별 노사관계에서 발생한 문제라며 강 건너 불구경하듯 했다. 그러는 사이 올해만 서울과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4명의 마필관리사가 죽음을 택했다.

마사회는 조교사 개별 고용구조가 세계적인 추세고 선진 경마시스템이라고 주장한다. 경마공원의 개별고용은 노조활동을 무력화하고 단체협약도 체결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마필관리사들은 열악한 노동조건을 그저 감내해야 했고 그렇게 13년을 버텨 오다 한계점에 다다른 것이다. 해고는 살인이라고 했다. 언제 살해당할지 모르는 불안한 하루를 견디다 못해 결국 자살을 선택한 현실에 안타까움을 넘어 두려움마저 느낀다.

마사회가 마필관리사 직접고용에 대한 법률적·제도적 의무를 떠나서 마필관리사들의 높은 산재율과 고용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고용구조개선에 지금이라도 적극적이고 책임 있게 나서야 한다. 그것이 공기업의 역할이다.


마사회가 책임주체로 나서라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두 명의 마필관리사들이 같은 사업장에서 연이어 목숨을 끊었다.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고 결심할 때는 일하는 곳에서 받는 업무스트레스나 압박감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떤 변화나 개선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막혔을 때도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사실상 죽음으로 호소하는 것이다. 두 분의 마필관리사들도 노동자로서 사실상 어떠한 권한도 갖지 못한 마필관리사들의 처지를 비관해 죽음으로 호소한 게 아닌가 싶다.

다단계 하청구조로 운영되는 경마장에서 마사회는 경마시행으로 매년 수조원의 이익을 내고 있지만, 경마시행을 위해 일하는 마필관리사들은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갖기 힘든 구조다. 노조로 뭉쳐 있긴 하지만 조교사와 마필관리사가 개별적으로 고용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마사회는 사용자 개념을 왜곡해 마필관리사들의 근로조건과 고용문제에 책임을 지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마사회-개인마주-조교사-마필관리사'로 이어지는 다단계 고용구조를 없애고 마사회가 직접 마필관리사를 고용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마사회는 반드시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수렴해 고용구조를 개선하고 노동자들의 권리 증진을 위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마사회가 책임주체로 나서야 한다.


저열한 간접고용이 사회적 타살 불러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

마사회 마필관리사 두 분의 잇따른 자살은 공공부문의 간접고용 활용방식 중 가장 저열한 방식이 초래한 사회적 타살이다. 마필관리사는 (마사회-개인마주-조교사-마필관리사로 이어지는) 개인도급으로 포장된 다단계 하청구조의 말단에 위치해 있다. 마사회의 직접 지휘감독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경마장의 필수 상시업무인데도, 열악한 고용 지위로 인해 높은 노동강도를 감수하면서도 저임금과 고용불안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더구나 우리 사회의 비정규직 활용 관행이 그렇듯 최소한의 존중도 받지 못하고 신분적 차별의 극한을 경험하게 된다. 이제까지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의 무풍지대였듯, 새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과정에서도 배제될 위험성이 크다. 마사회는 주말 개장 등의 특수성을 주장하며 전체 인력의 90% 이상을 비정규직으로 활용하면서, 비정규직으로라도 최소한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15시간 미만 단시간 고용과 다단계 하청구조를 고집해 왔다. 비정규직 활용의 불가피성을 과장하고 가장 저열한 방식으로 악용하는 구조를 바로잡는 데까지 나아가야만 10여년간 줄곧 반복됐던 비정규직의 사회적 타살을 멈출 수 있다. 새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은 무기계약직 차별 해소와 간접고용 해결만 아니라, 정규직 전환에서 배제되는 다단계 하청과 단시간 노동 남용·악용까지 포괄해서 구축돼야 한다. 이에 앞서 신분적 고용차별 구조를 중층화해서 운영한 마사회 구성원의 통렬한 반성이 전제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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