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지난달 19일 대통령과 여야 대표 회담 때 24시간 뉴스를 한다는 한 종편을 켜 놓고 작업을 했다. 좌우의 균형을 맞춘답시고, 여야에 약간씩 경도된 정치평론가 둘을 불러 놓고 긴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둘 중 한 명은 내 고향 친구였다. 얼마 전 재보궐선거에 나서려고 고향에서 열심히 선거 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고향 지키는 친구들에게 들었던 터다. 맞은편 패널은 교수였다.

청와대 상춘재를 찾지 않은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얘기를 하면서 한 패널이 “참 서민적이죠”라며 앵커에게 동의를 구했다. 앵커도 맞장구를 쳤다. 그날 홍 대표는 청주 수해 복구현장을 방문해 복구작업을 도왔다. 홍 대표의 드레스 코드는 장화와 빨간 점퍼였다. 오른손엔 삽을 들었다. 정치인들의 서민 코스프레는 지겹도록 봐 왔는데 또 그랬다.

주거니 받거니 물이 오른 뉴스룸의 대화는 “오늘 홍 대표는 잠시 사진만 찍고 가는 봉사가 아니라 하루 종일 수해 복구에 나설 계획”이라는 데까지 발전했다.

다음날 아침 조선일보 6면에는 <청와대 회동 대신 수해현장 찾은 홍준표, 삽 들고 1시간 복구작업 도와>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그러면 그렇지’ 지들이 어떻게 하루 종일 삽질을 해?

전날 TV에서 홍 대표의 어설픈 삽질을 보면서 필자는 여름 홍수 뒤 푹푹 찌는 날씨에 점퍼를 걸친 채 하는 삽질이 결코 오래가지 못하리라 예상했다. 반팔 티만 걸쳐도 땀이 비 오듯 하는 판국에 점퍼라니. 그 어설픈 삽질을 찍고 있는 카메라 기자도 한심했으리라. 이렇게 시시껄렁한 잡담이라도 늘어놓지 않으면 그 많은 보도시간을 어떻게 채울까 생각하니 불쌍하기도 했다.

이날(7월20일) 두 신문에 실린 서로 다른 사진은 두 신문의 확연한 관점 차이를 대변한다. 한 사진은 한겨레신문 13면에, 다른 하나는 조선일보 경제섹션 2면에 실렸다. 두 사진은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의 기자회견을 담았다. 한겨레 사진은 박기영 협회장이 기자회견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는 사진을 담았고, 조선일보 사진은 회견 도중 협회 관계자들이 최근 불거진 프랜차이즈 갑질에 허리 굽혀 사과하는 사진이었다.

두 신문의 기사 제목도 달랐다. 한겨레 기사 제목은 <프랜차이즈협회 “공정위 갑질조사 중단해 달라”>였고, 조선일보 제목은 <프랜차이즈협 “반성합니다”>였다.

협회는 이날 공정거래위원회의 불공정 관행 근절대책을 “모두 수용하고 반성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러면서도 협회는 “불공정 관행을 자정하도록 3~5개월 정도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도 프랜차이즈 갑질 문제로 몇 차례 법 개정도 했지만 고질병처럼 고쳐지지 않았다. 이처럼 프랜차이즈 갑질 문화가 어제오늘 얘기도 아닌데, 협회는 또 시간을 달라고 했다. 10여년 이상 곪아 온 문제를 3~5개월 준다고 자정이 가능할까. “연 매출 200조원의 삼성전자가 10만명을 고용하지만, 100조원의 프랜차이즈 산업은 124만명의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하던 프랜차이즈협회장의 말은 협박처럼 들리기도 한다. 협박 여부를 떠나 두 일자리는 그 질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다. 프랜차이즈에서 일하는 124만명은 대부분 최저임금 선상에 놓여 있고, 그마저도 가맹본부가 아닌 가난한 점주들이 고용하는 다단계 하청구조에 다름없다.

고개 든 한겨레 사진과 고개 숙인 조선일보 사진은 한국 주류언론의 간격을 보여 준다. 이 간격은 가맹본부의 막대한 이익의 근원을 추적하다 보면 지금보다 훨씬 더 커질 수 있다. 시각의 차이를 보여 주는 간격의 확대야말로 언론 다양성의 지표가 된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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