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태현 공인노무사(민주노총 법률원 충북사무소·호죽노동인권센터)

A씨는 2009년 생산직 사원으로 입사한 지 3개월이 안 된 시점에 현장에 설치된 작업용 계단을 내려오다 발을 삐끗해 인대파열로 산재요양을 받게 됐다. 50여일의 치료를 마치고 업무에 복귀했지만 10개월여 후 작업 도중 손이 협착되는 사고로 치료를 위해 9개월여의 휴업기간을 가져야만 했다. 그는 이 사고로 손가락 일부를 잃기도 했다. 그 후에는 별다른 사고 없이 자신의 맡은 바 업무를 잘 수행해 왔다.

그런데 지난해 초 요통이 계속돼 찾은 병원에서 ‘추간판 탈출증’ 진단을 받게 됐다. 마뜩잖아 하는 관리자의 표정에도 불구하고 산재신청을 했고, 업무상질병으로 인정받아 장기간 치료 뒤 같은해 11월 회사에 복귀할 수 있었다.

치료를 모두 마치고 회사에 복귀하는 날부터 문제가 시작됐다. 회사는 그를 원직복직시키는 대신 공장장과 관리직 사원들이 근무하는 사무실로 출근하도록 조치했다. 안전교육을 시킨다는 명목으로 하루 종일 회의용 테이블에 앉아 있게 하고, 안전과 관련한 책을 던져 주면서 매일 독후감을 써내라고 지시했다. 사무직 직원들이 근무하는 사무실에서 특별히 수행해야 할 업무도 없이 그렇게 두 달을 지냈지만 새로운 업무를 부여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지난해 말 회사는 속내를 드러냈다. 세 번의 산재 경력을 끄집어내며 사직을 하는 게 좋겠다고. 이를 거부하자 회사는 3개월 대기발령을 명했다. 독후감을 써내라는 지시도 없고, 아무것도 하지 말고 사무실에 그냥 앉아 있으라는 것이 그에게 내려진 지시의 전부였다. 어느 날은 회장님 눈에 띄면 안 된다며 아무도 없는 강당에 가 있으라거나, 새해 시무식에 참석할 수 없다며 회사 경비실에 딸린 민원인 접견실에 가 있으라는 지시를 받고 난방도 되지 않는 공간에서 한겨울 추위를 견뎌야 했다. 회사는 이미 그를 직원으로 보지 않고 있었던 셈이다.

연장된 대기발령 기간에도 사직 종용은 계속됐다. 계속 버티다 결국 해고되면 퇴직금도 대폭 줄어들 것이므로 사직을 받아들이는 게 좋다는, 회유인지 협박인지 모를 충고도 이어졌다. 실제로 대기발령 기간의 임금은 산재 치료를 받기 전에 지급받던 임금의 절반 이하로 줄어든 상태였기 때문에 대기발령 기간의 임금만으로 퇴직금을 산정한다면 대폭 감소될 수 있었고, 실제로 회사는 그렇게 했다.

A씨는 회사의 사직종용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고, 자진사직을 받아 내기 위한 대기발령 기간은 3개월 뒤 또다시 연장됐다. 그러다 자진사직이 도저히 현실화되기 어렵다고 판단한 회사는 ‘신체·정신상의 장애나 질병으로 인해 직무를 감당할 수 없다고 인정될 때’ 또는 ‘대기발령을 받은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직무를 부여받지 못한 때’ 직권면직을 할 수 있다는 취업규칙 규정을 동원해 강제퇴출(해고)을 강행하고야 말았다.

그에게 내려진 대기발령 지시는 업무상 필요성이 있었다거나 산재 치료를 마치고 복귀한 노동자를 배려하기 위해 부여된 것이 아니다. 정당한 대기발령 사유도, 해고에 이를 만한 사유도 없음은 너무도 자명하다. 무려 7개월여의 대기발령 기간은 ‘일터 괴롭힘’이 횡행하던 시기였다. 집단따돌림이 공식적·비공식적으로 조장된 시기이며, 병력이나 장애를 이유로 차별이 자행된 시기일 뿐만 아니라 그야말로 강제퇴출을 위해 온갖 종류의 갑질이 저질러진 시기일 뿐이기 때문이다.

A씨는 아마도 부당해고 판결을 받고 다시 복직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복직한다고 하더라도 타임루프에 갇힌 것처럼 또 다른 2016년 11월이 시작될지 모른다. 그래도 그는 복직할 것이다. 최근 사회적으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일터 괴롭힘에 대한 법·제도적 규제장치가 조속히 마련돼 A씨가 또다시 겪을지 모를 불합리한 시간이 최대한 단축되길 바란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