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다솜 노무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서울에 터를 잡은 지 3년이 조금 넘었다. 처음 생활 근거지였던 신림동 고시촌은 집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는 작은 동네였다. 그곳에서 나를 놀라게 한 건 바로 ‘마을버스’의 존재였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 사이로, 저 넘어 언덕에도 여기저기 버스가 다니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내 고향 지역에는 그냥 시내버스만 있었을 뿐 마을버스는 없었고, 버스가 주거밀집구역으로 들어오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마을버스 이후 또다시 나를 놀라게 한건 바로 ‘승차감’이었다. 시내버스 승차감도 그다지 좋지는 않았으나 마을버스는 내 경험을 훨씬 뛰어넘었다. 정말이지 터프한 운전실력을 보여 주는 기사님의 뒤통수를 가느다란 눈으로 몇 번이고 쳐다봤었다.

알면 보이고, 보이면 이해하게 된다. 노무사가 되고 나서 버스업계 노동실태를 알게 됐다. 버스 기사님의 뒤통수를 쳐다보는 나의 눈은 어느새 짠해져 있었다. 버스기사의 노동조건은 매우 열악하다. 특히 마을버스는 더욱 심각하다. 일주일에 72시간 이상을 근무하는 경우도 있다. 그에 비해 월급은 최저임금 언저리에 머무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사업장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을버스 기사들은 권리구제에 소극적인 경우가 많다. ‘문제 인물’로 찍히지 않고 몇 년만 참고 고생하면 시내버스로 취업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시내버스 노동조건이 좋은 상황은 결코 아니다. 최근 알게 된 시내버스 기사는 장시간 운행과 휴게시간 미준수에 대해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접수했다가 수차례 보복성 징계를 받고 결국 해고됐다. 이 운전기사가 고용노동청에 진정을 접수한 계기는 동료 기사의 죽음이었다. 사측의 무리한 배차로 휴게시간도 없이 운전을 하다 보니 조금이라도 빨리 운행을 마치고 쉬기 위해 신호를 위반하는 사례들이 빈번했고, 결국 한 달 사이 3건의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당사자 중 한 명이던 동료기사는 사직서를 제출했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지만 이 운전기사의 진정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시 노동청은 특별한 법 위반 사항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통지했다.

버스업계에서 장시간 근무가 당연시되는 것이 비단 공익성 때문만은 아니다. 노동청이 법 위반 사항이 없다고 사건 처리결과를 통지할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근로기준법 덕분(?)이다. 현행법상 운수업은 근로시간 및 휴게시간의 특례(59조) 적용 대상에 해당해 1주 12시간을 초과해 연장근로가 가능하며, 근무시간 도중에 부여하는 휴게시간도 변경할 수 있다. 해당 특례조항은 공익적 필요성에 의해 1961년에 신설돼 현재까지 유효하게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공공의 편의와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는 이유로 장시간 운행을 강요하는 것은 버스기사의 건강과 생활을 위협하게 되고, 이는 곧 사고 위험을 높인다. 결국 승객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게 돼 공익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공익을 지키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공익은 어느 한 사람만 노력한다고 해서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대중교통수단을 소유하고 운영하는 사용자도 노동자가 안전하게 운행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공공의 안전을 보장하도록 그 책임을 다해야 한다. 따라서 오직 노동자에게만 의무와 책임을 지우고 장시간 노동을 조장하는 근로시간 및 휴게시간 특례 조항은 폐지돼야 한다.

며칠 전 시내버스 운전기사가 신호대기 중에 급성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비참한 현실에 휴대전화를 잡은 손끝이 시큰거렸다. 현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시내·시외버스운송업을 근로시간 특례업종에서 제외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또다시 누군가가 운전대 앞에서 허망하게 눈을 감아선 안 된다. 장시간 노동으로 버스노동자와 시민 모두의 안전을 위협해 왔던 반세기의 적폐를 청산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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