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항래 (협)은빛기획 대표

언제부터인가 노년·죽음·장례에 대한 관심이 시나브로 상승해서 이런 주제를 다루는 책들을 열심히 닥치는 대로 읽고 있다. 노인복지관을 수시로 출강하는 통에 나름의 인식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신간 안내에 이런 류의 책 소개가 있으면 열심히 챙긴다. 그런다고 죽음을 이해할 수 있기는 하겠는가. 내게 누군가 “어떤 죽음이 좋은 죽음이냐”고 묻는다면, 대략 ‘잘 사는 것이 잘 죽기 위한 준비’라는 막연한 생각을 되뇔 것이다. 그런데 틀림없는 건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그 사회·공동체의 질, 품격과 무관하지 않다. 좋은 죽음이 좋은 삶의 잣대고, 좋은 죽음이 좋은 삶을 만든다.

이런 관심과 무관하지 않은 작업 하나는 두 해 전 경기도교육청의 ‘단원고 약전 편집기획위원’으로 4·16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교사들의 약전(略傳)을 펴낸 일이었다. 사업 기획 자체를 내가 냈다. ‘스러진 청춘들, 돌아올 수 없는 이들의 꿈·재능·에피소드, 삶의 궤적을 기록으로 남기자. 교육적인 사업이고, 유족들에게도 큰 위로가 될 것이다. 동년배 청춘들의 삶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글은 주 독자층이 될 청소년들에게도 자기를 돌아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교육적인 사업이기도 하다.’ 이런 제안은 우여곡절 끝에 경기도교육청 사업으로 채택돼 1년 동안 140여명의 작가들이 함께 하는 방대한 작업, ‘4·16 단원고 약전 쓰기’ 사업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이 작업을 함께 한 작가들 중 한 명, 개인적으로는 매년 몇 차례씩 이런저런 명목의 술자리에 어울리는 친구 박일환 선생님이 있다. 중등학교 국어교사가 직업이다.

내가 아는 그는 내면이 뜨거운 사람이다. 가끔 술자리에서 격하게 사회적 견해를 토로하는 걸 경험한 내게 남은 인상이다. 그러나 겉으로는 조용하고 한없이 어진 교사다. 그는 시인이다. 20여년 동안 여러 권의 시집을 펴냈다. 문단에서 왕성한 작품생산 역량을 보이는 작가 중 한 명이다. 그가 책 한 권, 그것도 소설책 한 권을 들고 나섰다. <바다로 간 별들>(우리학교·사진).

4·16 참사를 전후한 시기를 배경으로, 안산의 중고등학교를 무대로 10여명의 동년배 청소년들이 겪는 자잘하거나 엄청난 사건과 성장통을 다루고 있다. 그 고등학교에 진학한 몇몇, 그 배에 타게 된 친구들, 그들과 여러 추억을 간직한 더 많은 친구들의 기억과 감정선들이 담담하게 꼼꼼히 펼쳐지는 소설이다. ‘사람은 왜 태어나면 반드시 죽는 걸까? 신이라는 존재가 정말 있다면 왜 이런 슬픔을 인간들에게 내리는 걸까? 내 친구들이 무얼 그리 잘못했기에 이렇게 무서운 벌을 내리는 걸까?’ 주인공인 고등학교 2학년 청소년의 독백은 이 소설이 있게 한 질문이고 문장을 끌고 가는 힘이다.

우리는 그 어떤 질문에도 뚜렷한 답을 갖고 있지 않다. 지난 수십만, 수백만년 동안 인간이 물어 왔고 그 물음이 우리 인식의 지평 저 밑바닥에 살아 있을 것이지만, 아직 우리는 답을 모른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물어야 한다. 어쩌면 우리 존재의 동력이 그것, 그 물음인지도 모른다.

먼저 간 이들, 우리 곁의 사람들, 그들 누구도 나와 무관하지 않고, 그들이 나를 구성한다. 이 소설이 그런 존재의 근원을 청소년들의 시선으로 살펴 준다. 작품은 지금 이 시대를 함께 사는, 어쩌면 미래 우리 사회 주인공일 청소년들 삶의 단면들을 꼼꼼하게 따뜻하게 보여 주기도 한다.

책을 덮으면 먹먹해진다. 그렇다고 슬픔만은 아니다. 삶은 무엇인지 돌아보게 하고, 무엇보다 그 친구들을 떠나보낸 이 땅의 민지·은지·민석이 같은 청소년들이 무슨 깨달음을 안고 자신들의 삶을 살아 내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스러진 것, 작은 것을 기억하고 불러내는 문학 본연의 숨결은 이렇게 한 시인이 쓴 소설로 펼쳐지기도 한다. 실은 박 시인이 25년 전 한 소설을 들고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작가이기도 하다. 건필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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