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헬조선’은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단어 중 하나다. 그러나 그 용어에 대해 개념적으로 규정하거나 파악하려는 노력은 별로 없었다. 그런 맥락에서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상에서 헬조선을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진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런 논쟁을 통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즉 사회와 국가가 누구에게는 지옥이고 누구에게는 천당인지, 그리고 그 원인은 무엇인지가 보다 명료하게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18일자 CBS노컷뉴스 기사다. 기사 큰제목은 <“징징대지마” vs “베이비부머의 오만” 헬조선 논쟁 가열>이고, 부제는 “이병태 교수 ‘청년들 빈정거림에 화난다’ 맹비난에 박찬운 교수 반박”이다. 기사 본문을 추려서 옮긴다.

“한국 사회를 ‘헬조선’이라 부르는 젊은이들에게 ‘당신들의 그 빈정거림과 무지에 화가 난다’며 맹비난을 가한 이병태 카이스트 IT경영대학 교수의 SNS 글을 두고, 사회적 약자·소수자 인권신장에 매진해 온 한양대 법학대학원 교수가 강한 비판을 쏟아 냈다. 박찬운 교수는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어느 유명대학 교수란 분이 젊은이들에 대해 쓴 글인데 SNS에서 상종가를 치고 있었다’고 운을 뗐다. 그의 이야기를 내가 아주 짧게 요약해서 말하면 이렇다. ‘너희들이 대한민국을 헬조선이라고 욕한다지? 이 나라가 어떤 나라인 줄 너희들이 아니? 너희 선배들이 피땀 흘려 만든 곳이야. 너희들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아? 이 철없는 것들아, 징징대지 마라.’ 거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옳소!’를 외치고 있었다.”

그런 글과 그 글에 동조하는 사람들에게 박찬운 교수는 이렇게 반박했다.

“이분은 70년대 후반 학번으로 나와 비슷한 연배다. 그는 어린 시절 어렵게 살았지만, 굴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해 좋은 대학에 들어갔고, 미국 유학을 해 박사가 됐고, 드디어 국내 유수대학 교수가 됐다. 우선 우리 세대 중 상당수(이 땅에서 어느 정도의 사회적 지위를 누리는 사람들)는 한민족 5천년 역사에서 가장 행복한 세대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대학 학번으로 이야기하면 70년대 학번과 80년대 초반 학번을 대체로 베이비부머라고 부른다. 이들은 어린 시절 대부분 어려운 가정에서 자라면서 공부했다. 그래서 아름깨나 있는 사람 누구에게나 소싯적 애절한 이야기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성장의 대가를 톡톡히 받고 산 사람들이다. 매년 10%에 가까운 고도 성장기에 대학을 다니지 않았는가. 누구나 공부를 하면 금수저가 될 수 있다는 꿈을 안고 살았던 것이다. 이 시대 학번은 이미 은퇴를 했거나 조만간 본격적으로 은퇴를 하게 된다. 그들 중 상당수는 은퇴 후에도 큰 걱정이 없다. 젊은 시절 고생담은 그저 추억일 뿐.”이라고.

이 반박 글이 지적하듯이 부모 자식 세대 사이에 마주하는 현실이 현격하게 다르다. 젊은 세대에게 현실은 전혀 낙관적이지 않다. 젊은 세대들이 지옥 같다고 인식하는 현실의 구체적 양태가 어떠한지에 관해서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3포·5포·7포·N포세대론이 하나고, 수저계급론이 또 다른 하나다. 이런 담론들은 청년 세대들에게 현실이 절망적이라는 것과 그렇지만 계급을 초월해 똑같이 절망적이지는 않고 하층계급 청년들에게만 그러하다는 것, 즉 세대 문제가 순수한 연령 차이 문제가 아니라 계급문제와 긴밀하게 연관돼 있음을 시사한다.

제국주의가 약소국을 지배하는 자본주의 현 단계에서 민족적 예속은 계급지배의 한 형태가 된다. 그와 비슷하게 현 시기 자본주의 종말 국면에서는 세대적 차등 역시 계급지배의 한 형태가 돼 있다. 그리스나 스페인에서는 평균 실업률이 25%인 반면 청년실업률은 50%대로서 청년은 심하게 차별받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헬조선 문제는 그 성격에 있어서 범자본주의적인, 그리고 한국에서 가장 심한, 세대별로 차별화하는 노동계급 지배의 문제다.

헬조선을 빚어내는 구조적 원인들에 대해서도 논의가 많지 않다. 그와 연관이 있는 논의로서 6·10항쟁 기념일을 계기로 촛불혁명의 원인이 무엇인가라는 토론이 있었다. 촛불혁명의 원인=헬조선으로 등치할 수는 없지만 청년세대들의 압도적 다수가 촛불혁명을 지지한 것을 보면 그 둘 사이에 긴밀한 상관관계가 있음 직하다.

청년세대가 지금 대한민국 현실을 지옥과 같다고 인식하고 대다수가 촛불혁명을 지지한 것은 어떤 관념적 요인에서 연유하기보다 자신들의 현실적 삶에서 연유한다. 그 현실의 근본 구조는 해방공간 외부에서 강요된 식민지적 자본주의 사회구성체다. 그 위 층위에 5·16 반혁명을 통해 박정희와 이병철 등이 수립한 박정희 체제가 있다. 그 지배체제의 물적 토대는 독점재벌이고, 그 상부구조는 파쇼국가다. ‘민주화 이행’은 이 체제를 타파하지 못했거나 안 했으며, 그 결과 박정희 체제는 형태만 바뀌어 온존됐다. 군사파쇼는 민간파쇼로 완화됐고, 독점재벌의 지배력은 더욱 강화됐다. 한편 이렇게 박정희 체제가 변형하며 온존되는 것과 맞물려 자본축적 패러다임이 국가 주도에서 세계화된 독점재벌 주도로, 즉 신자유주의·세계화 모델로 전환됐다. 그 결과 사회는 더욱 양극화됐다.

2008년 이래 세계 자본주의는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대의 대불황에 빠져 있다. 자본은 이 위기에서 탈출하고자 노동계급에게 더 많은 착취를 강요하고 있다. 노동시간 연장과 연금개악 등 노동개악이 추진되고 있고, 이를 위해 국가폭력이 마구 사용되고 있다. 이런 추세 속에서 이명박근혜는 파쇼통치를 점차 강화했다. 박정희 시대로의 회귀였다. 이와 같이 헬조선에는 외세가 강제한 식민지 자본주의 사회구성체, 5·16군사정변으로 반공태세를 재정비·강화한 박정희 지배체제, 사회양극화를 심화시킨 신자유주의·세계화 자본축적 패러다임(모델), 세계 경제 대불황이라는 자본축적 위기에 따른 정치·경제의 반동화 정세 등의 네 층위가 중첩돼 있다. 촛불민중은 이 네 층위 가운데 박정희 체제를 비롯한 그 상층의 3층위를 집중적으로 문제 삼았다.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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