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영국 변호사(전 민변 노동위원장)

지난 5월25일 문재인 대통령이 수사권 조정을 전제로 ‘인권경찰’ 구현 방침을 마련하라고 지시하자, 경찰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 다음날 “앞으로 집회 현장에 경찰력·살수차·차벽을 배치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명박근혜 정권하에서 권력의 호위병인 양 국민의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제한하고 금지했던 경찰이 가장 먼저 코드 맞추기에 나섰다. 경찰은 국민의 인권, 그 핵심인 집회와 시위에 대한 대응에서 실제로 달라진 것일까? 아니 달라지고 있는 것일까? 정권교체 이후 집회 신고와 관련한 두 가지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11조4호는 국회의사당·법원·헌법재판소·대통령 관저, 외교기관이나 외교사절의 숙소 등에 해당하는 청사 또는 저택 경계에서 100미터 이내에서는 집회 또는 시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정하고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포괄적인 집회 금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으로, 위 조항에 단서규정을 달아 외교기관이나 외교사절 숙소의 경우에는 해당 외교기관을 대상으로 하지 않거나, 대규모 시위로 확산될 우려가 없거나, ‘외교기관의 업무가 없는 휴일에 개최되는 경우’로서 외교기관 등의 기능이나 안녕을 침해할 우려가 없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집회 또는 시위가 금지되지 아니하는 것으로 개정돼 운영되고 있다.

지난달 8일 ‘사드저지전국행동’에서는 ‘인권경찰’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같은달 24일 토요일 오후 4시부터 사드 배치 저지 평화실현 국민행진을 목적으로 ‘인간띠잇기’ 행사를 위해 주한 미대사관 앞길(세종대로)와 뒷길(종로소방서)로 행진하겠다고 서울지방경찰청장에게 신고했다. 그런데 경찰은 집시법 11조4호의 외교기관에 해당하는 미대사관의 기능과 안녕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미대사관 뒷길 전부에서 행진을 금지하고 앞길인 세종대로 진행방향 6개차로 중 미대사관에 가까운 하위 3개 차로 행진을 제한했다.

주한 미대사관은 월~금요일에 한해 업무를 하며 토요일과 일요일을 휴일로 정하고 있다. 또한 지난해 늦가을부터 올봄까지 이어진 광화문 촛불집회와 미대사관을 대상으로 한 사드관련 집회에서 사드 배치 저지 구호가 단골로 등장했지만 미대사관의 기능과 안녕을 침해하는 일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따라서 미대사관을 대상으로 토요일에 개최하기로 신고한 행진은 외교기관의 업무가 없는 휴일에 개최되는 경우로서 그 기능과 안녕을 침해할 우려가 없는 때에는 100미터 이내 장소에서의 집회 또는 시위 금지 규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그럼에도 토요일에 미대사관 부근에서의 행진을 100미터 이내의 집회 또는 시위 금지 규정을 적용해 제한하거나 금지한 것은 법적인 근거가 없는 자의적인 경찰 행정처분으로 그 자체로 위법이다. 위 제한통고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사건에서 서울행정법원 역시 같은 이유로 미대사관 뒷길 전부에 대해 행진을 금지한 것은 과도한 집회의 자유 제한으로 행진을 허용하라고 결정했다(서울행정법원 2017.6.23.자 2017아11659 결정).

지난 8일 8·15 범국민행동 추진위원회에서는 해방 32주년을 맞아 8월15일 공휴일에 '주권회복과 한반도 평화실현'을 위한 행동의 일환으로 서울광장에서 집회를 하고 을지로와 세종대로사거리 등을 거쳐 미대사관 앞길과 뒷길을 지나 율곡로와 경복궁사거리 등을 돌아 세종대왕상 앞으로 행진하겠다고 서울지방경찰청장에게 신고서를 접수했다. 그런데 경찰은 8월15일 공휴일에 개최되는 행진임에도 위 6월24일자 행진 때와 똑 같은 이유(외교기관에 미대사관의 기능과 안녕을 침해할 우려)로 미대사관 뒷길 전부에서 행진을 금지하고 앞길인 세종대로 진행방향 6개 차로 중 미대사관에 가까운 하위 3개 차로의 행진을 제한한다고 통고했다. 이미 법원에서 집회와 시위에 대한 과도한 제한으로 위법하다는 취지의 결정을 받았음에도 동일한 제한 처분을 반복하고 있다. 주한 미대사관은 6월24일자 사드반대 인간띠잇기 시위에 대해 우리 정부에 공식 항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힘센 자의 항의 앞에서 통제 위주의 국내법 규정조차 위반을 반복하는 경찰, 박근혜 정권하에서 국정농단에 항의하는 청와대 방향 행진을 법원의 허용결정에도 불구 반복적으로 제한하고 금지한 행태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정권과 미국에 불편한 집회와 시위를 제한하거나 금지하는 경찰의 반인권적 행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경찰은 바뀌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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