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제3공화국 때까지 우리나라 공무원 봉급은 민간기업보다 훨씬 못했다. 60년대 강남 개발 때 정부가 개발자금을 마련하려고 공무원들에게 강남 땅을 100평·200평씩 반강제로 불하해 줬다. 박봉에 시달리던 말단 공무원들에게 땅을 불하한 정부는 봉급에서 달마다 땅값을 떼어 갔다.

생계가 어려웠던 말단 공무원들은 쥐꼬리만 한 봉급에서 상당한 이자와 원금을 달마다 정부에 상환해야 했다. 상당수 공무원이 그 땅을 민간에 되팔았다. 50년이 지난 지금 와서 생각하면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쥐고만 있으면 몇 년 안에 몇 배로 땅값이 치솟을 텐데 정신이 나가지 않으면 땅을 팔지 않을 듯한데 상당수 공무원이 그랬다.

그때만 해도 아직 부동산 불패 신화는 실현되지 않았고, 해마다 10% 이상의 인플레 물가 속에 당장 먹고사는 게 시급했던 하위직 공무원에겐 먼 나라 이야기였다.

내년 최저임금이 시급 7천530원으로 결정되자 지난주 여러 언론이 9급 공무원 기본급이 152만원인데 내년 최저임금이 157만원이라는 게 말이 되냐고 높은 최저임금 인상률에 한껏 시비를 걸었다.

이런 보도의 바탕에는 공무원은 반듯한 월급쟁이란 신화가 깃들어 있다. 그러나 이 신화는 채 50년도 안 된 최근의 우연한 일이다.

사실 메이저 언론사 기자들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메이저 언론사 기자라 하면 상당한 고액연봉자지만, 70년대 말까지만 해도 당시 한국 최대 언론사였던 동아일보 기자가 박봉에 생활고를 못 이겨 일가족 모두 연탄불을 피우고 자살하기도 했다.

사실 70년대까지 언론사에는 호봉테이블도 없었다. 사장이 기분 내키면 촌지 주듯 돈을 세지도 않고 기자들에게 쥐여 주기도 하고, 몇 달씩 월급이 안 나오기도 했다.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 장군은 이런 기자들의 어려운 살림살이를 정확히 꿰뚫어 봤다. 그래서 서울 은평구 일대에 기자들을 위한 주거시설을 지어 집단 이주시켰다. 지금도 거기 지명이 ‘기자촌’이다.

지금 너도나도 공무원과 공기업을 신의 직장이라고 부른다고 그들이 원래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사실 수십년 전만 해도 공공부문 노동자는 형편없는 월급에 업무 자율성이 하나도 없는 직업이었다. 선거철만 되면 만월표 고무신과 빨랫비누를 들고 가가호호 방문해 집권여당을 찍어 달라고 주민을 어르고 달래는 게 이 나라 공무원들의 일상이었다.

이렇게 박봉이다 보니 면서기조차 주민등록등본 한 통 떼러 온 주민에게 담뱃값을 촌지로 받았다. 내가 어릴 때 출생신고하려면 담배 두 갑이 협정가격이었다. 만약 그 돈을 주지 않으면 하루 종일 서류를 떼 주지 않았다. 그 돈마저 없는 서민들은 아이를 낳고도 1~2년씩 출생신고를 못해 실제 나이와 주민등록상 나이가 차이 나기 일쑤였다.

또 어떤 신문은 최저임금 결정 다음날 기사에서 자기 집 가사도우미에게 최저임금 때문에 월급을 더 받아야겠다고 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푸념하는 한 직장인의 얘기를 실었다. 미안하지만 가사노동자는 최저임금 적용 대상이 아니랍니다.

무식한 기자들이 이렇게 갑과 을의 전쟁을 을과 을의 전쟁으로 만들고 있다. “편의점 사장이 월 200만원도 못 버는데 알바가 150만원 가져가는 게 맞냐”고 피를 토하는 기자들에게 묻는다. 지난해 CU가 편의점 사장과 알바들 노동으로 올린 당기순이익만 2천억원에 달한다는 사실을 알기나 하냐고. 점주들에겐 최저임금보다 자고 나면 오르는 임대료와 본사의 갑질이 더 무섭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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