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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기고-'노동자 자유이용권'이 만든 지옥도 ④] 100년 전 만들어진 국제기준, 이제는 우리도 이행하자정병욱 변호사(법무법인 송경)
   
▲ 정병욱 변호사(법무법인 송경)

노동자 자유이용권. 근로기준법이 정한 특례업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을 압축해 표현하는 신조어다. 통신·의료·광고·운수 등 26개 업종 노동자는 근로시간 특례제도 적용을 받아 장시간 노동에 시달린다. 집배원 자살이 잇따르고, 명문대학을 나와 대기업에 입사해 잘나가던 직원이 목숨을 끊고, 버스운전 노동자의 졸음운전으로 대형사고가 발생하면서 과로사와 과로자살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국회는 특례업종을 줄이기 위한 논의를 본격화하고 있다. 하지만 특례업종 가운데 일부를 줄이는 데 그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노동계는 특례업종 폐지를 요구한다. 특례업종에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이 직접 <매일노동뉴스>에 글을 보내왔다. 5회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고 이한빛 tvN <혼술남녀> PD 사망사건은 방송제작 현장에서 ‘카메라 뒤에 있는 사람’의 노동문제를 돌아보게 했다. 방송프로그램 제작 사업은 근로기준법 59조 특례조항의 “영화 제작 및 흥행업”에 해당한다.

방송제작 현실을 살펴보자. 미래창조과학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가 작성한 2016년 방송산업 실태조사보고서에 의하면 2015년 12월 기준으로 방송산업에 종사하는 종사자는 3만5천96명이다. 그러나 이 종사자에서 외주제작사 소속 노동자는 제외돼 있어 정확한 통계수치는 아니다. 2011년 당시 외주제작사 정규직은 3천101명, 비정규직은 2천822명이라는 보고가 있기는 하지만, 이 역시 프리랜서 노동자들이 제외돼 있어 정확한 통계로 보기는 어렵다.

'tvN 혼술남녀 신입 조연출 사망사건 대책위원회'는 방송제작 현장의 구조적 문제를 알아보기 위해 제보센터를 운영했다. 제보는 주로 장시간 노동, 저임금, 폭력적인 현장, 불안정한 고용형태 등에 대한 내용이었다. 제보를 토대로 통계를 냈더니 방송계 종사자들의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19.18시간이었고, 평균 휴일은 주 0.9일이었다. 월 단위로 계산하면 평균 노동시간은 약 460시간이고, 1주 평균으로 계산하면 무려 116.9시간이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우리나라 전체 노동자의 노동시간은 연간 2천57시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노동시간은 1천706시간이다. 연간 노동시간을 월 단위로 환산하면 OECD 월평균은 142.16시간, 한국 월평균은 171시간인데 방송스태프들은 OECD 월평균(142.16시간)보다 약 320시간 더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으며, 한국 월평균(171시간)보다 약 290시간 더 일하고 있는 것이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서 뇌심혈관계질환의 업무상질병 인정 여부 결정에 필요한 사항에 따르면 “뇌혈관질병 또는 심장질병 발병 전 12주 동안 업무시간이 1주 평균 60시간(발병 전 4주 동안 1주 평균 64시간)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업무와 발병과의 관련성이 강하다”고 고시하고 있다.

2008년 노동부의 '뇌심혈관계질환 과로기준에 관한 연구'에 따른 과로인정 기준에는 “단기간 동안 업무상 부담이 극심한 경우는 뇌심혈관질환이 발생하기 직전의 1주일간 근무시간이 60시간을 초과한 경우, 만성적인 과중한 업무는 뇌심혈관질환이 발생하기 직전 3개월의 근무시간이 월간 209시간을 초과한 경우”가 포함돼 있다.

방송제작 현장 노동자들은 산재보험법 기준으로 보더라도 뇌심혈관질환이 발병할 확률이 월등히 높은 상태인 셈이다. 노동부의 과로인정 기준도 훨씬 상회한다. 즉 방송제작 노동자들은 심각하게 건강권을 침해받으며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방송제작 현장 노동자들에게 근로시간 특례규정이 적용돼야 할까? 방송은 자유권의 영역이기도 하지만, 헌법의 객관적 규범질서 범주에 해당하고, 공적 책임과 공정성 및 객관성을 가지고 있다. 방송은 사회의 척도를 제시해 주고 공적 책임을 지며,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 근기법의 원칙들이 더욱 엄격하게 적용돼야 하는 산업인 것이다. 따라서 방송제작 사업 역시 근로시간 특례 규정에 해당해야 하는지는 매우 의문이다.

2012년 당시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근로시간특례업종위원회 공익위원들은 특례업종 적용기준으로 방송제작 사업은 해당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냈다. 방송제작은 공중의 불편이나 안전에 관련돼 있다고 보기 어렵고, 종업시각도 특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장시간 노동은 방송노동 종사자들의 건강권을 막대하게 침해한다. 이미 살펴봤듯이 방송제작 노동자들은 한국 월평균보다도 2배 이상의 일을 하고 있다. 이것은 근로시간 특례 조항이 근로자 보호 목적과 비교형량했을 때 연장근로로 얻을 수 있는 공익에 비해 근로자가 입게 되는 건강 및 복지에서의 불이익이 현저하게 더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방송의 특성상 반드시 근로시간 특례 규정이 적용돼야 하는 산업인지도 의문이다. 방송에도 보도·예능·오락·드라마 등 여러 분야가 있다. 더 세분화도 가능한데, 방송을 전체로 봐서 무조건 근로시간 특례 규정을 적용해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다.

국제노동기구(ILO) 창설 이후 첫 번째 협약은 무려 지금부터 약 100년 전인 1919년에 만들어진 “공업부문 사업장에서 근로시간을 1일 8시간, 1주 48시간으로 제한”하는 내용이다. 우리는 이미 100년 전에 국제적으로 정한 기준에도 벗어난 근기법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국제기준을 좀 따라야 하지 않을까.

정병욱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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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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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w가 2017-07-28 12:23:26

    돌발적인, 이벤트적인 일이 많이 일어나는 근무직종에 대해서는,' 연간 근무 제한 시간' 을 두거나, '월 근무 한도'를 두는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문제에 대해 '외면하는척'하며, '현재를 유지시키려'들겠지만, 문제의 해결은 ' 소->중->대'로 가능방향도 있다. 독일에는 '일한 시간을 저장'하는 시스템이 있다고 햇다. '일'을 "그래! 너 열정있네!"란 '말'로 보상하는게 아니라, '시간'으로 보상하는 방안이 적절하다고 본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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